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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결정 이후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라
지난해 11월 국립한국문학관 부지가 서울 은평구 옛 기자촌으로 최종 결정됐다. 2016년 문학관 건립 추진에 들어간 지 2년 만이다. 2년 동안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가장 큰 이슈는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아닌 어디에 지을 것인가였다. 지자체 공모와 무산, 용산 가족공원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 등으로 부지를 선정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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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한국문학관 부지로 최종 선정된 서울 은평구 기자촌 근린공원.

부지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욕망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말과 비슷한 말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반쯤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일도 일어난다. 시작하는 데만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나 시간의 태반을 써버리는 경우 말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모두 적용될 것 같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본격적인 건립에 들어가는 데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2016년 2월 문학진흥법이 통과된 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5월 건립 부지 공모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 지자체 24곳이 신청해 과열 양상이 빚어지면서 공모는 돌연 중단됐다. 이후 문학진흥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문체부 부지인 용산가족공원을 최적 후보지로 정했으나, 이번엔 서울시가 반대했다. 미군기지 반환 이후 만들어질 용산공원에 대한 종합적 계획이 우선이라는 논리였다. 표류하던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은 지난해 5월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다시 부지 물색에 들어갔다. 문학계는 이외에 정부과천종합청사 부지 등도 물망에 올렸지만, 이 역시 정부에서 난색을 표했다. 최종적으로 옛 서울역인 문화역서울284, 파주시 출판단지 부지, 헤이리 부지, 은평구 기자촌 근린공원 부지가 후보로 올랐고, 이 가운데 기자촌이 최종 선정됐다.
국립한국문학관은 2022년 말 개관을 목표로 한다. 문학진흥법 통과 이후 부지를 선정하는 데만 2년 9개월이 걸렸다. 개관까지 남은 시간이 3년임을 생각한다면, 문학관 건립을 시작하는 데만 꼭 절반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선정을 두고 일어난 일은 한국 사회의 욕망과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로 지역 개발을 꿰하려는 지자체들의 입찰 과열, 용산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은 부동산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욕망을 드러낸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결정한 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기자간담회에서 설립추진위 인사들이 서운함과 아쉬움을 토로했던 그 순간, 은평구에선 문학관 유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살아 숨 쉬는 문학관을 만들려면

광복 이후 70년이 지나서야 지어지는 국립한국문학관의 출발이 무엇으로 채워 넣을 것인지가 아니라 어디에 지어질 것인지의 문제로 갈등을 빚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문학이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드러내고 치유하는 기능을 띤다면, 국립한국문학관 또한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문학관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지금껏 드러난 갈등과 상처를 봉합해야 할 것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은 그동안 파편처럼 흩어져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던 문학적 유산들을 복원하고, 이를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장차 한국 문학의 작가 및 콘텐츠를 지원하고 양성하는 허브 역할을 해야한다.
국립한국문학관 건설 부지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 사회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과 동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지 결정에 대한 문학계의 불만과 서운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로했다. 문학 독자가 줄고, 대중들의 삶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현재에 대한 고민에서, 국립한국문학관은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문학관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최근 발간된 국문학자 송은영의 <서울탄생기>(푸른역사)는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현재 서울의 토대가 된 1960~1970년대 서울의 변화를 김승옥, 최인훈, 박완서 등 작가 16인의 소설 110편을 분석해 설명한다. 문학을 통해 다채롭고 섬세하게 당대의 시대상을 읽어낸 이 책은 국립한국문학관이 건립된다면, 우리에게 존재하는 문학 유산을 통해 시민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할지 영감을 준다. 문체부가 새해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주요 유물을 시민들이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콘텐츠로 제작하기로 한 것도 참고할 만하다.
국립한국문학관이 자리할 터를 결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다. 최초로 지어지는 국립한국문학관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금이야말로 ‘시작이 반’이란 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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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국립한국문학관 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 이영경 경향신문 기자
사진 제공 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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