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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책 <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생의 끝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늙으면 죽는다’라는 명제는 사실이지만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너무 자주 하는 말은 거짓말일 때가 많고, 때문에 노인들의 이 흔한 중얼거림은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좀처럼 없다. 그러나 정말 쉽게 무시돼도 좋은가? 늙어가는 자의 절망과 고독, 뒤 세대와 단절된 앞 세대의 그늘을 성찰하는 일본 소설 두 권이 잇따라 나왔다. 두 소설 모두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분량이 짧으며, 저자 모두 일종의 신인상인 ‘문예상’으로 데뷔(한 명은 최연소, 다른 한 명은 최고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30대·60대 신진 작가가 노인의 막바지 생애를 전면에 내세워 풀어내는 생사의 철학을 살펴볼 기회다.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거짓<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 하다 게이스케 지음, 김진아 옮김, 문학사상

“괴로워… 그냥 콱 죽었으면….” 87세의 할아버지는 오늘도 중얼거린다. “이제 죽어야겄다. 저승사자더러 빨리 데리러 와달라고 빌고 있어, 지금.” 28세의 백수 겐토는 오늘도 이 소리를 듣고 말았다. 취준생과 사준생(死準生)이라는 극적인 대비의 두 존재가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쇠약한 할아버지는 이미 집안의 골칫덩이가 된 지 오래고, 손자는 다짐한다. “할아버지의 몸이 관장(灌腸)을 해야 할 만큼 망가지기 전에 빨리 존엄사라는 소원을 들어줘야겠다”고.
2015년 제15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NHK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방영됐는데, 원제는 <스크랩 앤드 빌드>(Scrap and Build)다. 비능률적인 노후 설비를 폐기하고, 최신으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패륜이라기보다 효도에 가깝다. “안 아픈 데가 없어, 이제 죽어야지”라는 넋두리를 손자는 진심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 몸져누웠을 때, 온종일 형광등과 천장만 바라보며 백야를 헤매는 삶의 비참함을 직접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손자는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돕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간병인 친구의 조언을 바탕으로 ‘과도한 간호’에 돌입한다. 움직임을 원천봉쇄해 신체 기능을 약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생의 의지는 대단하다. 매사에 수동적이고 의존적이지만, 고통스럽게 죽지 않기 위해 매사에 조심한다. 손자와 동갑인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TV에 나오자 “퇴물”이라며 혀를 차는 이 철없는 노인을 어찌할 것인가. 손자는 진정한 살의를 느끼게 되고, 불만은 청년실업과 국민연금으로까지 나아간다. “노인 세대의 신용카드 대금이나 대주기 위해 세금을 내는 짓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가슴속의 분노와 지금 할아버지에게 베푸는친절한 행동은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평온하게 죽고 싶어 하는 노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노인뿐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좋은 일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갈등은 최고조를 향해 달려간다. 손자의 살인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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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외롭고 홀가분한 산책<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토마토출판사

이 소설을 한 줄로 줄이면 ‘할머니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 될 것이다. 74세의 독거노인 모모코를 주인공 삼아, 남편을 잃고 고독에 진저리치던 노년이 내면의 목소리와 대화하며 스스로의 긍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늙었고, 자식과 불화하며, 더는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할 때조차 고독은 찾아온다. “길들여져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고 여겼던 고독이 미쳐 날뛴다”는 자백. 그 통증을 못 이겨 남편의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모모코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과거를 생각한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선 어느 쪽도 완전하게 살 수 없어.”
2018년 제15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속박하는 모든 것을 내던지려는 이 할머니의 독백은 발매와 동시에 아마존재팬 소설 부문 1위에 오르며 발매 한 달 만에 50만 부 넘게 팔려나갔다. 뜻밖의 인기에 대해 최근 방한한 저자는 “시대의 흐름과 맞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할머니의 느린 속도로 이어지는 철학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은 없다.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 같은 건 없다”고 되뇌는 모모코. 눈물을 터뜨리며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는 결심한다. “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은 부끄럽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저자의 고향인 도호쿠(東北) 사투리다. 일본에서도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로 꼽히는데, 소설 곳곳에서 할머니의 독특한 서정을 배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국판에선 지리적 위치가 유사한 강원도 사투리로 번역됐다. “사투리란 나의 가장 오래된 지층입니다. 혹은 가장 오래된 지층에서 나를 끌어올리는 빨대 같은 것이죠.” 그 원초적 이미지의 언어가 진심을 전달하는 데 가장 용이한 매체라 여긴 듯하다. 소설 제목도 같은 고향에서 태어난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시 <영결의 아침> 구절에서 따왔다.
저자는 남편을 잃고 소설에 매진한 지 8년 만에 이 소설을 내며 스스로 인생 2막을 열어젖혔다. “암묵적인 합의가 인간을 늙게 만든다. …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산다면 나는 의외로, 가는 데까지 갈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을 한 줄로 줄이면 이 대사가 남을 것이다

글 정상혁 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문학사상, 토마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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