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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책 <체체파리의 비법>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어느 한쪽의 유토피아
전장, 왕궁, 일터 등 근현대를 상징하는 공간들은 대부분 남성들의 것으로 여겨져왔다. 현실의 공간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장소를 상상할 때도 여성들은 줄곧 배제되었다. 이런 남성 중심의 장소와 사고 속에서 여성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과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소개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우리는 지금 이 사회가 아닌, 다른 여러 사회를 지칭할 이름들을 알 고 있다. 유토피아(utopia)는 사회의 이상향이다. 토머스 모어의 원 작에선 사유재산이 없어진 공산주의 사회를 칭하지만, 우리는 그 저 살기 좋은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고 받아들인다. 디스토피 아(dystopia)는 이상향의 반대, 헬조선처럼 악몽 같은 사회를 부르 는 이름이다. 미셸 푸코가 살고 있는 사회에 이의 제기를 하는 상이 한 장소다. 이를테면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분향소나 텐트촌을 떠올 릴 수 있다. 이곳들은 헬조선의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실제의 장 소인 동시에 주장들이 줄곧 무시되고 내쳐진다는 점에서 사회 바깥 에 존재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매력을 지칭하는 별 명이었다는 아토포스(atopos)도 있다. 장소를 나타내는 ‘topos’에 부정을 의미하는 ‘a’가 붙어 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는, 예측할 수 없 는 어떤 장소를 말한다. 롤랑 바르트는 이를 탈(脫)장소, 아토피아 (atopia)라고 부른다. 탈장소는 등록되지 않고 표류하는 장소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헤테로토피아, 아토피아. 서로 다른 네 이름에 동일하게 장소를 의미하는 단어 ‘topos’가 들어간다. 존재란 지극히 장소적이어서, 개체든 사회든 자신을 놓을 곳 없이는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장소는 존재의 환경으로, 공간으로 나타나 존재에게서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장소가 없다면 유령조차 없다.

남성들의 장소를 버리고 떠난 여성들

<체체파리의 비법>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아작

현실의 장소를 비롯해 이 장소들 중 어느 것도 여성에겐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 모두가 불행히도 남성들이 차지해버린 장소일 수 있다. 어째서 사랑의 별명인 아토포스는 하필 남성인 소크라테스에게 붙었을까. 어째서 토머스 모어는 재산을 누가 얼마큼 갖느냐의 문제만을 다뤘을까. 재산을 가진 남성의 가정을 돌봤을 여성에게도 그 유토피아는 여전히 유토피아일까. 헤테로토피아의 농성장에는 남성들만 나와 있을 수 있고, 디스토피아의 빅 브라더는 언제나 남성인 것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여성이면서 남성 이름으로 소설가의 이력을 시작한 독특한 작가이다. 그녀가 소설가가 된 1960년대 후반은 여성의 가정에서의 역할이 당연시되고, 예술가로서의 입지도 매우 좁았다. 지난 세기의 세계 명작소설이라고 해서 살펴보면, 여성 소설가의 이름이 손으로 꼽을 정도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단편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모녀는 단호히, 이 남성들의 장소를 버리는 선택을 한다. 유카탄 반도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살아나온 파슨스 모녀는 우연히 외계인들과 조우하고, 지구를 버리고 아예 외계로 떠나버린다. 재미있는 점은 외계인과 만난 사실을 남성들에게 절대로 비밀로 한다는 것이다. 이 설정은 어찌 보면 남성 일반에 대한 복수일 수 있고, 또 어찌 보면 외계인보다도 더 말이 통하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체념일 수도 있다.

전장은 여성의 장소가 아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제2차 세계대전은 남성들만의 장소가 아니었다. 여성들도 총을 들고 싸웠으며 저격병 같은 전투보직도 맡아 훌륭히 수행했다. 하지만 참전 여성들의 이름은 지워지고 전쟁의 승리는 온전히 국가와 남성들의 전리품이 되었다. 여성들의 참전 기록은 분노와 슬픔과 한이 뒤섞인 개인의 사연이 되어 묻혀 있다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 기록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스베틀라나는 수십 년에 걸쳐 여성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묶어냈다. 이는 공식적인 기록의 장소에서 배제된 역사다. 왜냐하면 전쟁 역사의 성별 자체가 남성의 것이고, 승리자와 패배자의 이야기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승리든 패배든 어떤 경우에도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 특히나 참전 여성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장소와 기록의 장소에서 일찌감치 물러나야 했다. 심지어는 가정에서조차 남편들이 그때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말라며 입을 다물게 했다.
이 책에서 여성들은 전쟁의 승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승리는 남성의 것이거나 남성들로 이뤄진 국가의 것이다. 여성들의 전쟁 이야기는 자신의 고유한 경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또 다른 생명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전장에서조차 남녀가 차별되는 끔찍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글 백민석_ 저서로 단편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공포의 세기>, 미술 에세이 <리플릿>이 있다.
사진 제공 아작,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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