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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더러운 잠> 전시 논란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논쟁에 관하여
지난 1월 20일, 표창원 의원의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곧, BYE! 展>의 전시 작품 중 한 작품이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바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해당 작품은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작품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미성숙한 논쟁들이 한동안 계속됐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전시 이후 <더러운 잠>의 이구영 작가는 “여성 혐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며 지탄을 받았고, 심지어 “국회와 국민과 여성을 모욕하고 성희롱한 작품”이라는 거센 비난과 함께 작품을 훼손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국회 의원회관에서의 전시를 도왔다는 이유로 표창원 의원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표적이 되어 곤란을 겪었다.
현 세태를 꼬집는 풍자화로 분류될 수 있는 <더러운 잠>이, 여성 혐오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작품이 파손되고 애꿎은 표창원 의원 가족을 등장시키는 각종 패러디물이 만들어지는 등의 극단적 대응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더러운 잠> 속에 담긴 풍자 읽기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올랭피아(Olympia)>(1863)에서 전체적인 구도를 차용하고, 박근혜의 목 아래 신체 부분은 조르조네(Giorgione)의 <잠자는 비너스(Sleeping Venus)>(1510)에 등장하는 여체 부분을 결합시킨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은 오브제들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해당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기력하게 잠들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과 다소 거만한 듯하면서 공격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최순실의 표정이다. 이 두 가지만 봐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데, 지배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림 속 ‘시녀’처럼 묘사된 최순실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또한 작품 속 태극기에는 최순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에 의해 국가의 주요 사안들이 좌우될 수 있었음을 시사하며, 배경처럼 담긴 세월호 침몰 모습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침몰의 진실 또한 두 사람의 행적에 가려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순실이 들고 있는 주사다발은 박근혜 대통령이 마치 프로포폴 주사를 맞은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 마취된 상태로 살아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더러운 잠>은 그 자체로 현 세태를 꼬집는 풍자화라 할 수 있다. 혹자의 주장처럼 ‘여성 비하’나 ‘모욕’을 조장하는 그림이라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체로 등장한 여체 부분이 실제 당사자의 누드도 아닐뿐더러, 공인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회 의원회관’이라는 전시 장소를 문제 삼기도 하는데,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정치와 연관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치 세태를 풍자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를 하는 데 있어, 장소가 또 하나의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다름을 인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는 사회

지난 2006년, 힐러리 클린턴의 누드 흉상이 뉴욕 섹스박물관에 전시됐다. 해당 흉상을 제작한 조각가 대니얼 에드워즈는 “힐러리의 나이와 여자다움을 포착하려 했다”며 작품 배경을 설명했고, 그는 힐러리를 성적 매력을 가진 여성으로 표현하고자 힐러리의 가슴을 내비친 모습 위에 꽃무늬를 새겨놓기도 했다. 에드워즈의 작품이야말로 힐러리를 직접적으로 성적 대상화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이 경우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 ‘섹스박물관’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이 작품 또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잠시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힐러리 측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고 해당 작품을 파손하는 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특히 정치적인 이슈가 결합되면 작품을 작품 자체로 보지 않고 변질된 해석을 더해 본질에서 멀어진 논쟁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열린 태도가 아닌,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와 예술가가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발전적 논의가 계속되고 국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차츰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 된다면 한국에서도 힐러리의 흉상처럼 여성 정치인을 직접적으로 성적 대상화한 작품도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논란은 피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2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3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글 헬레나 유_ 칼럼니스트, 번역가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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