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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선배들의 선물 같은 공간 고려대 앞 서점 ‘지식을 담다’
학교 앞에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고려대 90학번 동기 15명의 마음을 움직였다. 교재를 팔던 서점마저 문을 닫은 지 7년 만에 새로 생긴 서점,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열어준 고려대 앞의 ‘지식을 담다’ 이야기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2 고려대 90학번 동기 15명이 모여서 만든 서점 ‘지식을 담다’는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판매한다.
3 서점 내에 있는 북 카페.
4 (왼쪽부터) ‘지식을 담다’ 이동주, 김준수 공동대표.

학교 앞 서점의 부활

작년 12월 23일 문을 연 ‘지식을 담다’는 요즘 트렌드인 동네책방, 독립서점과는 결이 다르다. “독립서점들이 소규모 출판물, 한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데 비해 저희는 인문사회과학 전체를 다루려고 해요. 대학 앞에 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부활시키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젊을 때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라고 김준수 공동대표는 말한다.
대학 동기 15명이 모여서 만들었지만 운영은 공동대표 두 명(김준수, 이동주)이 전담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김준수 대표가 평상시 서점을 돌본다. 서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금방 하나로 모였으나 초기 자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계를 하자, 월회비를 내서 종잣돈을 만들자는 얘기도 나오다가 흐지부지될 뻔했으나, 딸을 모교에 보낸 이동주 대표가 발 벗고 나섰다. 15명 각자 형편에 맞게 내놓은 것이라 누가 얼마를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랑말랑한 책은 잘 안 나가요

복층 구조의 서가는 서점 이름처럼 책을 담고 있는 모양이다. 개점 당시 1,700권에서 지금은 2,300권 정도로 늘어났다. 책은 계속 들어오니 처음부터 서가를 꽉 채워놓지 말라는 조언을 반영했다. 직접 선정한 책이 1,000권, 나머지 700권은 다양한 분야에서 추천을 받았다. 베스트셀러는 마르크스 관련 책, 4차 산업혁명, 페미니즘 책이다. 인기 드라마 포토 에세이도 들여놓았지만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서점에서나 파는 책을 굳이 이곳에서 찾지않기 때문. 원하는 책이 없으면 수기로 주문도 받는다. 원칙은 자기계발서, 수험서, 영어책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
신간들 사이에서 누렇게 바랜 표지가 눈에 띄는 책장은 ‘선배가 추천하는 옛날 책’ 코너다. 선배들이 기증한 헌 책을 정가의 1/4에 판매한다. 얼마 전 84학번 선배가 한길사의 <오늘의 사상신서>를 1권에서 100권까지 통째로 기증했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십여 권이 빠져나갔단다. “80년대에 나온 귀한 책 100권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학생들이 책을 골라가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서점을 열기 전 교수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갔더니 “망한다, 요즘 애들 그런 책 안 본다”며 말렸단다. 우려와 달리 개점 이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마치 이런 서점이 문 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은 물론 동문들, 일반 시민들도 찾아온다. ‘설마 이 책을 알겠어? 이걸 누가 읽겠어?’ 반신반의하면서 책을 꽂아놓으면 귀신같이 알아보고 사가는 친구들이 있다.

스스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학생들

‘지식을 담다’는 서점 외에도 북 카페, 세미나실 등의 공간을 갖추고 있다. 12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세미나실은 한 사람당 음료 하나만 주문하면 편하게 빌려 쓸 수 있어 인기다.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할 공간이 그만큼 없다는 거겠죠. 우리가 이곳을 연 이유가 있으니 영어공부나 취업 스터디는 하지 말았으면 했어요. 걱정과는 달리 여기서 자본론, 조선후기 정치사회, 젠더 트러블을 공부하더라고요. 기성세대는 젊은 학생들이 취업준비와 고시준비로 시간을 보낼 거고 삶이 암울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들이 알아서 책을 보고 토론하고 있는 거예요.” 보통 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공간 활용을 위해 독서토론 모임을 만든다고 하는데, 여기는 굳이 나서서 모임을 만들지 않아도 잘 돌아갈 거 같단다.
“기성세대가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렇지, 20대는 책도 많이 읽고 토론하면서 인생에 대해 고민할 시기잖아요. 공간을 열고 보니 젊은 친구들은 다 그렇다고 예단할 게 아니었더라고요. 앞으로는 ‘어떨 것이다’라고 예측하지 않으려고 해요.”

선배가 열고 후배가 채운다

서점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인지라 방학인 1월과 2월은 워밍업 기간으로 삼았다. 3월 개강을 하면 책 팔고 공부하는 것을 뛰어넘는 행사를 많이 하려고 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뒤편 야외공간까지 개방할 예정이다. “학생들을 위해 작지만 좋은 강연을 유치하고 싶어요. 학교 출신 유명인들이 많으니 좋은 취지에 동참해달라고 부탁을 해보려고요.” 개강을 앞두고는 서점에 포스트잇을 비치해 두고 SNS와 연계해 새내기를 위한 도서 추천을 받는다. 추천 도서 목록이 완성되면 학생들 대상으로 비평대회도 개최하려고 한다. 책을 통해 졸업생과 재학생이 소통하는 공간, 지역 주민에게는 열려 있는 문화공간으로 차츰 채워나간다는 계획이다.
“우선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서점은 적자구조일 수밖에 없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공간은 선배들이 열었지만, 젊은 후배들이 채워주면 좋겠어요. 고민이자 앞으로의 바람입니다.”

글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지식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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