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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광화문 거리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시민의 공간
도시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며 변해갑니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앞 거리 모습도 50여 년 동안 많이 바뀌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는 조선시대 때 ‘육조(六曺)거리’로 불렸습니다. 광화문 앞에 주요 관아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는 광화문을 등지고 바라보면 중앙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고, 양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운데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 양쪽으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1> 서울 시민회관.

세종문화회관 이전의 시민회관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4월에 개관했습니다. 그전에는 그 자리에 서울 시민회관이 있었습니다. 1961년 완공된 시민회관은 1972년 12월 2일 문화방송 개국기념 ‘10대 가수 청백전’이 열리던 도중 무대 조명장치 누전으로 불이 나 소실됐습니다. 이 사고로 53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후 1974년 세종문화회관을 짓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시민회관에서는 가수들의 공연이 주로 열렸습니다. 미8군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가수들이 시민회관 개관 후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문화 향상은 등한시하고, 흥행에만 치중한다는 비판도 일었습니다. 개관 1년 후인 1962년 한 신문에 시민회관 관계자가 쓴 칼럼이 눈에 띕니다. 이 칼럼에는 “시민회관을 염려해주고, 시민문화 향상을 위해 걱정하는 충정에 대해서는 감사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시민회관은 그들이 걱정하듯이 시민회관으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쇼’만을 위해 개관해왔던가. 개관 이래 오늘까지 시민회관은 시민을 위한 행사와 시민문화 향상을 위한 공연을 ‘보이콧’하고 ‘쇼’만을 위해 제공한 일은 없다. 국가의 큰 행사나 다름없었던 ‘국제음악제’를 비롯해 ‘아시아영화제’, 미국 ‘알빙무용단’, ‘스트로스 사중주’, ‘슈트라우스의 비엔나 음악의 향연’, ‘마리아 앤더슨 독창회’ 등이 허다히 시민회관에서 베풀어졌다. 심지어 화폐개혁 직후에는 시민들이 돈이 없을 것을 생각하며 여러 날 무료 영화 상영을 하기도 했다"는 해명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 1>은 1964년 시민회관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광화문 앞에 서서 바라보면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주변에 2층 건물들만 오밀조밀 붙어 있던 당시에는 시민회관이 웅장하게 느껴집니다. 당시 학생들이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하며 벌인 6·3항쟁 직후라 계엄군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2> 반공회관.

혁명의 목소리와 함께 잠든 반공회관

KT 광화문 사옥 자리에는 반공회관이 있었습니다. 반공회관은 1958년 2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여자경찰서 건물을 개수해 개관했습니다. 건물 앞에 맥아더 장군 동상 모형이 전시된 이곳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연구와 반공 출판물 등이 간행됐습니다. 또 회관 내 전시실에는 각종 반공 사진과 군에서 제공한 전리품 등이 전시됐습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 앞 경찰의 발포로 흥분한 시위대는 자유당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한 반공청년단의 본거지인 반공회관에 불을 질렀습니다. 건물은 모두 불에 탔지만 맥아더 장군 동상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는 맥아더 장군 목에 ‘공산 침략의 격퇴자’라는 작은 현수막과 함께 화환도 걸렸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 상황을 전달받고, 4·19 혁명이 반미 데모가 아니었음을 판단했다고 합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은 인천상륙작전 7주년에 맞춰 1957년 9월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당시 이 동상 제막을 위해 1,000여 평의 광장이 만들어졌고, 인천역부터 광장까지 3km 구간의 도로가 포장됐습니다. 1958년에는 경복궁 안에도 같은 모양의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졌고, 이어 반공회관 앞에도 비슷한 모양의 동상이 설치됐습니다.
<사진 2>는 불타기 전 반공회관의 모습입니다. 건물 외벽에 내건 현수막에 쓰인 ‘반공없는 통일없고, 통일없는 평화없다’라는 표어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진 김천길_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_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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