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5월호

두산아트랩 2021 박인혜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합창을 넘어 떼창으로

두산아트랩2021 박인혜판소리 <오버더떼창:문전본풀이>

오페라는 성악과 관현악으로 구성된 음악극으로, 방대한 규모의 종합예술이다. 넓은 무대를 채운 화려한 세트 가운데 눈부신 조명이 비추는 오페라가수가 멋진 아리아를 부른다. 아름다운 노래와 더불어 주인공으로서 뿜어내는 오라Aura는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오페라의 주역 가수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오페라가수들이 한데 모인다면 훨씬 더 극적이고 웅장한 소리로 채워지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생각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페라가수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난 만큼 각자의 음악적 개성 역시 다르기 마련이라, 하나의 일치된 소리를 추구하는 합창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숨기고 개성을 감출 때 비로소 아름답게 조화된 합창 음악이 탄생할 수 있다.
서양음악과 국악은 서로 다르지만 오페라를 판소리로 치환해 보자. 규모는 다르나 오페라 주인공이 아리아를 부르듯, 소리꾼은 고수와 단둘이서 무대를 오롯이 소리로 가득 채운다. 몇 시간에 걸쳐 홀로 판소리를 완창하는 소리꾼의 역량과 힘은 단순 비교가 어렵겠지만 오페라가수의 무대를 압도한다고도 할 수도 있겠다. 또한 같은 판소리와 대목을 부른다 하더라도 어떤 소리꾼이 부르느냐에 따라 감칠맛이 달리 우러나듯 소리꾼의 음악적 개성이나 취향·해석이 저마다 다르고 강하게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소리꾼이 모여 ‘합창’을 한다는 것은 한때 음악을 공부한 나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관심거리였다. 특히 3월에 열린 판소리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이하 <오버더떼창>)는 ‘판소리 합창 가능성 탐구’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기에 국악?판소리로 이루어진 합창이 어떻게 풀이되고 해석될지는 상상으로만 그저 가늠해 볼 뿐이었다.
여러 음을 갈래로 나누거나 포개는 화성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음악과는 다르게, 판소리는 ‘시김새’라 하는 특유의 구성진 가락과 단선율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고루 잘 섞일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합창에 그리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각색·작사·작창을 맡은 박인혜 소리꾼은 조화를 이루기 위한 ‘합창’이 아닌 판소리를 위한 ‘합, 창’으로 관객을 마주했다. 또한 힘찬 추임새와 함께 흥을 돋우는 고수의 북뿐만 아니라 화성적 악기인 가야금과 양금을 편성해 소리꾼들의 소리를 더욱 풍성하고 수려하게 꾸며줬다. 결국 소리하는 소리꾼 한 사람 한 사람의 음악적 개성을 극 안에서 자유로이 드러내며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판소리의 재미와 매력을 저버리지 않았고, 이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판소리와 합창에 대한 유쾌한 반전이었다.
본공연 내용인 ‘문전본풀이’는 집안 곳곳마다 살고 있다는 가택신의 유래와 내력을 담은 제주도의 전승 신화 이야기다. 박인혜 소리꾼의 새로운 실험과 시도는 현대적 느낌을 물씬 풍기지만, 그럼에도 옛이야기를 주제 삼아 판소리의 전통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비록 쇼케이스로 진행돼 모든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내용보다 ‘판소리 합창 가능성 탐구’에 대한 시도를 더욱 주목할 수 있었다. 박인혜 소리꾼과 함께 합창하는 소리꾼들은 앙상블을 이루며 때로는 합창으로서 자유로운 화성을 만들기도, 등장인물의 역할을 맡기도 하는 등 판소리가 담아내는 이야기의 윤곽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냈다. 이는 오직 홀로 이야기를 이끌고 인물의 서사를 풀어가는 전통 소리꾼의 역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력을 지닌 한 명의 ‘배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두운 객석 사이로 흥이 오가며 관객들의 마스크 너머 조심스럽지만 자연스레 추임새가 흘러나왔다. 이는 틀림없이 판소리에서 느낄 수 있던 그것이었다. 한 명의 소리꾼, 한 명의 고수가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한바탕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전통 아래 지켜온 판소리의 철칙과도 같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리꾼들은 판소리의 전승과 보전을 담당하는 전통적 사명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발굴하는 창작자로서의 사명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물론 판소리의 현대적 작창과 해석, 여럿이 함께 소리하는 합창의 형식 등 다양한 시도는 이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박인혜 소리꾼은 이번 공연을 통해 전통을 따르는 대신 이를 창작의 도구로 삼아 관객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판’과 ‘소리’를 선보였다. 그러한 점에서 <오버더떼창>은 ‘여러 소리꾼이 함께 소리하는 판소리 합창’이라는 단순한 틀에 갇히지 않았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에서 합창이라는 성악 장르를 교향곡을 구성하는 하나의 악기로서, 음악적 효과를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편성했듯 <오버더떼창>에서 엿볼 수 있던 소리꾼들의 판소리 합창은 제목에서 표현한 ‘떼창’이라 일컫는 국악 장르의 색다른 확장이라 분명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산아트랩 2021 박인혜<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일자 3월 25일(목)~3월 27일(토)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원작 <문전본풀이>

각색·작사·작창 박인혜

드라마투르그 이경화

음악 박인혜·심미령·조봉국

출연 박인혜·이다연·양승은·이예린·한아윤·황지영

조명디자인 김건영

음향디자인 정새롬

민지홍 두산아트센터 무대감독으로 일하며 공연 종사자·미술 애호가·성악 전공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예술의 특별한 풍요로움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Get2twins@gmail.com |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