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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조 린치 감독의 <메이헴> 성실할수록 실성할,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개편 시즌이 되면 편집장들이 지지부진하고 인기 없는 코너를 도려내듯, 내가 내 인생의 편집장이라면 지금 당장 ‘직장’이라는 코너를 폐지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기개발을 이루며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유유자적한 삶으로 내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목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직장 생활은 일상이고 생존이고 사투이다.

직장이라는 아수라장

어느 날, ID7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충동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폭력·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영화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저지른 폭력·살인은 질병으로 인한 행위라는 이유로 무죄선고를 받는다. 데릭(스티븐 연)이 근무하는 법률회사에도 바이러스가 퍼져 빌딩 내 사람들이 감염된다. 질병 통제국은 해독제를 살포하고 약효가 나타나는 8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빌딩을 폐쇄한다. 마침 억울하게 해고당한 데릭은 회사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멜라니(사마라 위빙)와 함께 앙갚음을 하기로 한다.
영화의 제목 ‘메이헴Mayhem’은 대혼란·아수라장을 의미하는 단어다. 영화 제목처럼 조 린치 감독은 업무 공간인 오피스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얼핏 분노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피 칠갑 난도질 영화처럼 보이지만, <메이헴>이 담고 있는 정서는 직장인의 비루함과 고단함에 대한 공감이다. 어쩌면 가장 약자인 사람들이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한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의 짜릿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리고 <메이헴>이 가진 정서적 장점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쌓인 인간관계, 그리고 수직적 상하 관계를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공감 가능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영화의 도입부, 거대 법률회사에 변호사로 취직한 데릭이 열정 가득한 신입사원으로 출근하는 장면에서 시작, 일상이 반복되며 점점 지쳐가는 모습은 우리와 닮았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온갖 더럽고 짜증나고 부패한 일을 처리해 주는 곳이다. 아이러니는 데릭이 일하는 법률회사가 분노 바이러스로인한 살인 혐의를 무죄로 주장했다는 점이다.

복수는 나의 것

모두가 악인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악인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경쟁하고 생존해야 하는 삶 속에서 이미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잔인한 복수를 꿈꾸거나, 스스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메이헴> 바탕에는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수직 관계가 주는 불안과 공포가 깔려 있다.
서열에 따라 높은 곳에 위치한 나쁜 상사들을 한명씩 처단하기 위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전용 카드와 암호가 필요한데, 그 코드를 얻기 위한 과정은 <큐브>의 생존 단계처럼 퍼즐 맞추기의 재미를 더한다.
데릭은 자신의 전용 머그잔이 없어졌다며 찾아헤매는데, 짐을 싸서 떠나는 순간, 그가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나쁜 상사에 의해 깨진 그 머그잔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비교적 짧은 86분 러닝타임에, 조 린치 감독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삶의 고단함에 대한 공감과 나쁜 상사에 대한 복수극이라는 두 가지 정서를 품고 주춤거리지 않고 마구 달린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장면도 굳이 개의치 않고, 복수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간다.
<메이헴>이 보여주는 잔인한 살해와 복수 장면은 심각하지 않고 경쾌해서 죄의식 없이 즐길 수 있다. 조 린치 감독은 쉽게, 함부로 버려지는 약자들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뒤통수를 내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메시지를 힘주어 전한다. 영화를 본 직장인들이라면 <메이헴>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은 직장 상사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메이헴>의 관람을 추천 받을 그 혹은 그녀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꼭 반성하시길.

<메이헴>(2017)

감독 조 린치

출연 스티븐 연(데릴 역), 사마라 위빙(멜라니 역)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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