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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서거 100주기 맞는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 세기의 천재,
팔방미인 작곡가

김연아 선수의 카리스마가 빛난 최고의 연기로 <죽음의 무도>가 손꼽힌다. 어린이날이면 단골로 공연되는 <동물의 사육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품이다. 기교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는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잘 연주한다. 첼리스트라면 첼로 협주곡 1번 Op.33에 도전해볼 만하다. 이 곡들의 작곡가는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다. 프랑스의 대작곡가이면서 당대에 손꼽히는 피아니스트·오르가니스트 생상스가 올해 서거 100주기를 맞는다.

앨범 <TheMastersoftheRoll,CamilleSaintSaens>2015년7월17일발매

열 살 때 베토벤을 암기한 천재

생상스의 아버지는 프랑스 내무부에서 근무한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생상스가 태어난 직후 병으로 사망했다. 세 살도 안 된 생상스는 어머니의 숙모인 샤를롯 마송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음감이 매우 뛰어났던 생상스는 세 살 때 피아노곡 작곡을 시작했다. 당시 파리 음악계는 이 제2의 모차르트의 존재를 알고 흥분했을 것이다. 일곱 살 때부터 열네 살까지 생상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스승은 카미유 마리 스타마티였다. 칼크브레너와 멘델스존의 제자였던 스타마티에게 만년의 생상스는 비판적인 견해를 표했지만, 80대까지 기복 없는 피아노 실력을 보인 데에는 스타마티의 훌륭한 레슨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생상스는 7세 때 피에르 말댕에게 작곡을, 보엘리에게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섯 살 때부터 작은 무대에 여러 번 선 생상스였지만 열 살 때의 데뷔 무대는 세상을 놀라게했다. 파리 살 플레옐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생상스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15번 K450과 헨델·칼크브레너·훔멜·바흐 등을 연주했다. 열 살 소년은 앙코르로 베토벤 32개 피아노 소나타 중 원하는 곡을 어느 것이든 암보로 치겠다고 청중에게 신청곡을 받아 화제가 됐다. 이는 빠른 속도로 전설이 돼 유럽 전역에 퍼졌다. 보스턴 신문에 게재되는 등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생상스는 1848년 13세 때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한다. 브누아에게 오르간을 배웠고 알레비로부터 작곡 기법을 전수받았다. 오르간의 명수로 불리며 1857년부터 1877년까지 당시 파리 오르가니스트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던 마들렌 교회의 오르간 주자를 맡았다(우리나라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조재혁의 음반에서 생상스가 치던 오르간 음색을 들을 수 있다). 파리 음악원 재학생의 꿈인 로마 대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성 세실 찬가>로 파리음악협회 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는 등 젊은 작곡가 생상스는 각광받았다.
이 시절 두 편의 교향곡을 썼지만 끝내 출판되지못했다. 출판된 교향곡 1번은 18세 때 작품이고 24세 때 교향곡 2번을 썼다. 가장 유명한 교향곡 3번 <오르간>은 런던필하모닉협회의 위촉으로 쓴 51세 때 작품이다.
20대 후반의 생상스는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니더마이어 음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생상스의 제자로는 앙드레 메사제·가브리엘 포레 등이 있다.
생상스는 동시대 프랑스 음악의 진흥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871년 친구 뷔신과 함께 국민음악협회를 설립했다. 프랑스 작곡가들을 격려해 신작 연주를 장려하기 위한 기구였다. 자신의 곡을 비롯해 포레·프랑크·샤브리에·드뷔시·뒤카·라벨 등의 작품을 초연하면서 소개하는 활동을 계속했다.
1888년, 5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전 세계를 돌며 연주 여행을 계속했다. 알제리와 이집트는 생상스가 사랑하던 장소였다. 생상스의 작품 중 관현악곡 <알제리아 모음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 <아프리카>,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등 제목과 내용에서 느껴지는 이국풍의 음악은 이렇게 여행을 통해서 탄생했다. 러시아에 갔을 때는 차이콥스키와도 만났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시들해진 다음에도 영국, 미국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존경받았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생상스는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행진곡도 작곡했다. 1915년 80세 때 미국 연주여행도 성공적이었다.
생상스는 다작의 작곡가였다. 오페라 13곡·발레음악 1곡·영화음악 1곡·부수음악 6곡·관현악곡 26곡·관악합주곡 4곡·협주곡 35곡·실내악 42곡·오르간곡 15곡·피아노곡 81곡·합창곡 63곡·가곡 150곡 총 437곡을 남겼다. 19세기 음악 장르 전반을 골고루 아우르는 작품들이다. 생상스는 바그너를 옹호했고, 리스트 교향시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연주했다. 자작 교향시도 썼고 오페라도 13곡이나 작곡했다(<삼손과 델릴라> 외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전통적인 빈 형식을 따른 소나타·실내악·교향곡·협주곡이다. 생상스는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을 배웠고, 멘델스존이나 슈만의 영향도 일찌감치 받았다. 그럼에도 생상스는 살롱음악이나 오페라의 전성시대였던 당대 프랑스 음악의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년에는 형식이 엄격해져 가브리엘 포레에 비견됐다. 생상스는 전 생애를 통해 독자적인 새로운 길을 추구했다기보다는 갖가지 요소를 융합하거나 기존의 양식에 순응하면서 변화를 주는데 재능이 있었다.
생상스는 30대 중반인 1870년대부터 1880년대에 걸쳐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피아노협주곡 4번·바이올린협주곡 3번·교향곡 3번 <오르간>·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등이 대표적이다. 생상스는 륄리·샤르팡티에?라모 등의 악보를 교정하고 음악평론도 하는 한편 고대 로마 극장의 양식이나 폼페이, 나폴리 벽화에 그려진 악기에 관한 출판도 했다. 시나 연극에 관한 저술도 했고, 천문학·음향학·철학 등에도 전문적 내공을 지닌 팔방미인이었다. 곳곳에 번뜩이는 천재성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에 버금간다. 어느 때보다 생상스 듣기 좋은 2021년이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K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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