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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편집자의 일 중 기쁨의 순간을 꼽으라면 새 메일이 도착했을 때다. 정확히는 작가가 쓴 새 작품을 받아 드는(열기 직전의) 순간이다. 카드 명세서나 광고, 이벤트 알림 메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롯하게 시간을 들여 지어낸 밥, 이제 막 담아내어 김이 나는 밥 같은 글을 앞에 두는 때 말이다. 그 기쁨이 더 큰 만족감으로 번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4월 한 달은 두고두고 배부른 기쁨이 있었다. [비유] 메일함의 새 메일들, 그러니까 작가의 손을 떠나온 신작 원고 파일을 열어 읽어나갈 때마다 요즈음 가지고 있던 이상한 허기가 달래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 작품들은 이제 5월호 [비유]에 실려 독자에게 전해진다. 완연한 봄 독자에게 당도할 기쁨은 은근한 빛과 애틋함이다.

지난 한 달간 독서량이 매우 적었다. 그런데 여느 때보다 간절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밀도 있는 읽기를 했다. 하나는 아반강고(아픈 반려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힐링 카페의 준말) 사이트의 게시 글들, 다른 하나는 [비유] 새 메일함에 도착한 신작 원고들이었다. 창작 코너의 편집은 내 담당이 아니라서 발행 후 만나도 무방했지만 이달은 뭔가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구급상자를 열 듯 초조한 마음이었다. 그중 어떤 시인의 시는, “친구의 품에 안긴 작은 사람의 이마에서 꽃잎은 얼마나 거대해지는지”(<영원에서 나가기>) “무엇으로 만든 이불이어야 저 작은 몸에도 무겁지 않을”(<작고 긴 정면>)지 물음을 껴안고 있었다. 그것은 꼭 멀리에서 출발해 비로소 나에게 닿은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언니야
새들의 잠은 얼마나 깊을까
새들은 한쪽 눈만 감고 반쪽짜리 잠이 든대
잠이 쏟아지도록 먹이고 싶어
불을 꺼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실컷 자고 난 새들에게 다시 따뜻한 것을 먹이고
무엇으로 만든 이불이어야 저 작은 몸에도 무겁지 않을까

새가 날아가고
가볍게 튕겨 오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우리가 보는 생명력
너무 인간적인 생각

아름다움의 이유가 그것의 약점이기도 하지요
김지연 <작고 긴 정면> 부분

인용한 시는 김지연 시인의 신작으로 [비유] 41호(2021. 5) 수록작이다. “얼었던 열매가 다시 말라가는 동안 찾아오는 새들을 / 조그맣다는 면에서는 모두 닮은 모두 다른 새들을” “몇 세기 동안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의 눈동자가 거기 있었다. 나는 이 시를 볕이 들지 않는 정북향 거실에 앉아 읽었다. 바깥은 벌써 4월인데 유난히 추워하는 노견에게 덮어줄 봄 이불을 신중히 고르다가. 요즘 나는 ‘살아 있는 것의 어려움’에 골똘해 있다. 살아 있다는 건 찬란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러한 생명의 찬란함에 매혹된다는 건 그 빛을 잃거나 잊는 순간과 언젠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한 만큼 상실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내 무릎에 앉은 작은 개를 잃어가는 중이다. 우리가 “새하얀 겨울 무를 투명해지도록 모서리가다 무너지도록 / 푹 끓인 국을 나눠 먹고는” 말끔한 얼굴이 되기를…… “계절에 맞는 옷차림을 준비하고 문을 여는 것처럼 / 문을 모두 열어두는 것처럼” 몸과 정신을 열고 다가올 늦봄, 여름과 가을, 그리고 또 한 번의 겨울을 건강히 맞이할 수 있기를…… 이 시를 읽는 동안 기도했다. 그리고 문득 화면 너머에서 애틋한 손이 흘러나와 나와 개의 이마를 쓰다듬었다고 느꼈다. 어떤 글은 “미래가 적혀 있”는 기도문이고 예언이 된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 숨 쉬는 것, 움직이는 것, 얼굴을 가진 것, 온기를 가진 것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때로 ‘살아 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의 불씨를 되살리기도한다.

남지은 웹진 [비유]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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