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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이경자의 서울 반세기, 공간을 더듬다 30 모든 일에 삼가고
다름을 존중하라

김상연 《컴퓨터 만세력》 (갑을당)

우리 집에서 갈피가 나달거리는 책 중 하나가 《컴퓨터 만세력萬歲曆》이다. 1886년부터 2050년까지, 무려 164년간의 연월일年月日 간지干支가 표기됐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편을 구상할때, 태어난 해를 정하고 나서 만세력을 뒤적거린다. 사주를 적어놓고 대강의 기질이나 성격을 예측해 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아니지만 상상력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긴 한다. 그래보았자 섣부른 무당이 작두를 타듯, 어설프고 위험하기 그지없을 테지만.
그동안 종교와 관련한 책, 그러니까 신약성서나 초보자를 위한 불경, 그리고 무당의 사설을 모아놓은 무가집巫歌集 등을 읽었다. 동학이나 강증산에 대한 책도 읽긴 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사주명리학엔 관심이 없어서 그 방면으론 무지했다. 그러다가 공자님 말씀에 하늘의 뜻, 그러니 운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른 쉰 살의 어디쯤에서 마침내 숨어 있는 사주명리학의 대가라는 분을 만나게 됐다.
서로 자신의 운명에 드리운 불행의 깊이와 불안의 진원을 몰라 허둥거리는 꼴이 비슷해서 친하게 지내던 예술가 친구가 운명을 잘 보는 “정말 대단한 분!”이 있다고 했다.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업종에서 일하는 분들과 두루 교류하고 섭렵한 뒤라 크게 흥미가 돋지는 않았다. 그런데 친구는 그가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단하면 얼마나 비싸게 받겠느냐, 돈부터 걱정하니 “돈을 받지 않고 아무나 잘 안 만나준다”고 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것도 그에 대한 믿음에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친구의 ‘그분’은 한남동에 있었다. 서울 살기를 반세기가 넘도록 나는 한남동은 잘 몰랐다. 그 동네에 갈 기회가 없었다. 바로 옆 동네가 이태원이라는 정도가 내가 한남동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 동네를 가로지르는 6호선은 개통되지도 않았을 때다.
그에게선 너무 이른 나이에 ‘허무’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지닌 거리감이랄까? 하여간 세속적인 것과의 불화가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자연뿐이라는 걸, 그가 자기 존재와 일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연에서만이라는 걸,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어렴풋이 이해했다. 실제로 그는, 지리산을 수백 번 종주했고, 나도 얼떨결에 종주를 한 번 경험해 봤다.
그날, 떨떠름한 시간이 지난 뒤에 그가 마지못한 듯 최소한의 친절을 보여 내게 말했다. 나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듣고 나서 잠깐 살핀 뒤였다. 내 사주에는 들뜸’과 ‘반항’이 특질로 보인다고 말했다. 순간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절대로 지적받고 싶지 않은 약점을 들킨 것 같아 폭삭 주눅이 들었다. 이 사주가 운이 나쁠 땐 천지사방을 분간하지 못해서 실수를 연발하고, 운이 좋아지면 그것을 가라앉히는 기운이 강해져서 균형을 잡게 된다고 했다.
이런 첫 만남 이후로 나는 거의 10년 이상 그의 제자가 되어 공부하러 다녔다. 첫 수업은 내과의사와 서양화가와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감독이 한 조로 시작됐다. 오랜 세월 동안 공부하는 자리엔 학생들이 조금씩 바뀌었다. 나는 이해력은 좀 나은 편이지만 외우는 건 백치에 가까워서 공부가 거의 된 친구들이 졸업할 때도 계속 남아 있었다.
그는 사주명리학의 광범위한 공부, 내게는 모든 것이 상징부호 같은 주역과 동양철학의 여러 갈래, 운기론이며 황제내경 같은 한의학의 기본까지 응용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사주명리학은 결국 사람이란 너와 나의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이루는 우주 삼라만상을 이해하는 공부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무턱대고 타자화했던 자연을 나와 하나라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지게 됐다.
우리가 공부하는 곳은 배산임수의 명당이란 한강진역의 남쪽. 한남동에서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남산 방향엔 리움미술관, 그 위로 하얏트 호텔과 서양식 건물과 주택과 상점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명리학 공부방은 반대편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룬 내리막길, 그 길 사이사이에 또 다른 골목을 지닌 곳. 전쟁과 광복과 미군 주둔 같은 시절로부터 한차례 ‘개발’ 되었겠지만 여전히 1970년대에서 멈춘 듯한 골목 풍경은 되레 정겨웠다. 길가엔 오래된 세탁소, 약국과 양품점과 식당이 늘어섰고 샛골목으로 들어가면 미군부대에서 나온 것이 뻔한 식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이젠 그런 정겨움은 다 부서지고 파헤쳐지고 지워졌다. 상전벽해가 된 그곳에서 나는 개발이란 것이 혹시 수치심을 감추는 것인가? 이런 상상을 했다.
나는 이제 내 사주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쩌면 선생님이 말한 공부의 끝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내가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할 부적으로 신중할 신을 써줬다. 그리고 서. 내가 그의 마음이 돼보는 것. 인간 의지로 안 되는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함으로써 ‘다름’을 존중하게 되는 것…. 이제 내게 남은 두 글자, 신과 서. 부적을 얻을 수 있게 해준 사주명리학에 감사한다.

글·사진 이경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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