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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을지로of시작하는 작가들을 위한 ‘옥탑방 문화공간’
건축자재상이 밀집한 을지로3가 경진빌딩 5층에 이색 전시공간이 들어섰다. 일용직 노동자가 머물던 ‘달방’ 3개를 개조해 2018년 2월 개관한 ‘을지로of’가 그곳이다. 허름했던 사글세방은 전시 기회에 목마른 젊은 작가를 품은 갤러리로 변신했다. 매달 독특한 3인전을 기획하며 공간을 꾸려가는 한대웅 씨와 오웅진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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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CITY>전에 참여한 여인혁 작가의 <웃고, 말하고, 반짝이며 쏘다니는 꽃>. 하얀 방에는 설치, 오브제 장르를 전시한다.

‘을지로of’를 처음 찾아오는 사람은 헤매기 십상이다. 건물 어디에도 갤러리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에 숨은 듯 운영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한대웅 씨가 “지나가다 이곳이 특이해 보여서 온 사람보다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온 사람들이 진지하게 전시를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판을 달지 않았어요”라고 설명했다. 처음 이 동네에 올 때부터 주변에 간판 없는 가게가 많았는데, 과시하는 느낌이 없어 좋았단다. 하지만 워낙 헤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작은 깃발 정도는 달 예정이라고 한다.
공동 운영자 한대웅 씨와 오웅진 씨는 아주대 미디어학과 동기로 처음 만났다. 한 씨가 뒤늦게 사진을 시작하면서 중앙대 사진학2과로 옮긴 탓에 소속은 달라졌지만, 졸업 후 작업실을 찾던 두 사람은 자연히 의기투합했다. 임대료가 낮은 곳을 찾다 흘러온 곳이 을지로의 재개발 대상지인 이 건물이었다. 을지로의 장소성에 대해 ‘예부터 장인이 많았던 곳’과 같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굳이 거창한 의미를 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 씨는 “모두가 덤덤하게 자기 일을 하는 곳 같아서 좋았어요. 오랜 전통이 있는 곳인 만큼 단단한 곳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라며 이 지역에 매료된 사연을 들려줬다.
처음 두 사람이 건물을 봤을 때는 4층만 임대할 생각이었는데, 옥탑의 낡은 방 3개가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결국 4층은 사무실로, 5층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을지로of’라는 공간 이름도 5층의 영문 표기가 ‘5F’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 씨는 “of 다음에 작가 이름이 붙으니까 그분들의 공간이라는 뜻이 되기도 해요”라며 숨은 의미를 전했다.
이들이 특히 공들인 부분은 3개의 여관방을 뼈대는 남겨둔 채 전시에 적합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일이었다. 공간을 하얀 방, 노란 방, 검은 방이라는 세 가지 콘셉트로 재구성한 후, 작가 한 사람에게 전시공간 한 곳을 약 한 달간 무료로 대관해주고 있다. 한 씨는 이러한 공간을 연 이유에 대해 “한국은 작가에게 가혹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업실이나 전시장도 돈 주고 빌려야 하고, 창작지원금도 실패할 리 없는 사람만 받는 현실이 안타까워 “서로가 서로의 구명보트가 되어주자는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곁에 있던 오 씨가 “어쩌면 함께 물에 떠내려가는 것일 수도 있죠”라며 웃음 지었다. 하지만 부족한 환경에서도 남아서 뭔가 하려는 그 마음이 예뻐 보이기에 이런 시도를 계속하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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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상, 미디어 장르를 전시하는 검은 방.

4 음악감상회를 진행 중인 힙합 아티스트 프레드(Fred).

5 페인팅, 일러스트 장르를 전시하는 노란 방.

을지로of를 구성할 때 영감을 준 것은, 한 씨가 독일 바이마르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경험한 다채로운 전시 문화였다. 파티와 전시를 함께하거나, 술집에서 좌석 없이 전시만 하는 공간도 있었다. “한 번은 도시 외곽 폐창고에서 열린 전시에 갔는데, 그 큰 공간이 사람들로 꽉 찬 게 인상 깊었어요. 학생 전시에도 관람료를 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전시가 끝나면 페스티벌처럼 함께춤추며 놀고 퍼포먼스도 하는 문화가 부럽더라고요.”
한 씨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을지로of 역시 일반 갤러리와 차별화된 공간을 자처한다. 무료 대관으로 공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관람객이 입장료 대신 맥주나 사과주스 한 병을 구입할 때마다 발생하는 수익으로 공간을 운영한다. 간혹 영화감상회나 인디 뮤지션과 함께하는 음악감상회도 연다.
공간을 열고 닫는 시간도 일반 갤러리보다 늦은 편이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3시에 열고 오후 11시에 닫는다. 전시 기간에는 두 사람이 상주하면서 전시 설명도 한다.
을지로of가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묻자, 오 씨는 “기존에 없던 대안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공간의 주인은 작품이자 작가이기에, 작가들의 작업을 아카이브하고 스테이트먼트를 남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공간 자체가 그들의 공동 작업이자 포트폴리오인 셈이다. 1년 계약으로 임대한 이 공간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만, 두 사람에겐 끝나도 끝이 아니다. 을지로of의 미래에 대해 묻자, 한 씨는 “나중에는 전시장이라는 특정 공간을 벗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바다나 숲에서 전시할 수도 있고요”라고 덧붙였다.
진행 중인 <CITY>전이 끝나면, 6월 20일부터 7월 20일까지 박정원, 권서영, 이나윤 작가의 3인전 <호텔 비나리>가 열린다. 오 씨는 “이 공간이 밤에 보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런 감정이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에겐 폭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타자화된 폭력에 대해 생각해볼 예정입니다”라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글 고경원 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을지로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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