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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정부의 ‘문화비전2030’과 ‘새 예술정책’에 대하여새로운 예술정책은 새로운 그릇에 담아야
촛불혁명의 기폭제 중 하나는 단언컨대 ‘블랙리스트’ 사건이었다. 독립 영역인 사법부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블랙리스트가 자행됐다. 이 중 가장 노골적이면서 광범위하게 자행된 분야가 바로 문화예술계였다.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게 문화예술인들의 기대가 컸던 것은 이런 면에서 당연했다. 하지만 지난 5월 16일 새 문화·예술정책이 나오자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새 정책은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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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종환 장관이 5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플렉스홀에서 열린 ‘문화비전2030-사람이 있는 문화 ’ 발표에서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문체부)

2 2016년 10월 18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규명 예술행동 및 기자회견’에 예술가들이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빠르게’ 아닌 ‘바르게’ 강조했지만

보통 새 정부 출범 1년이 되면 경제·문화·외교·정치 등 각 분야에서 평가가 진행된다. 아쉽게도 문화·예술 분야는 평가할 게 없다. 출범 1년이 다 되어서야 문화·예술 비전과 정책이 나왔다. 마치 태아를 열 달간 애지중지 품은 어머니처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민간과 오래 논의한 끝에 새 문화·예술비전과 정책을 발표했다. 산고 끝에 나온 새 비전과 정책인데 민간의 반응은 시원찮다.
오래 걸려서 반응이 좋지 않은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선거 후 인수위원회도 없이 현 정부의 임기가 바로 시작돼 어려운 여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다. 아울러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문화비전2030-사람이 있는 문화’ 기조 공개 자리에서 한 발언이, 늦어지는 정책 발표를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답변이 됐다. 당시 기자회견 자리에서, 새 정부 출범 후 반년이 지나도 새 문화·예술정책이 발표되지 않자 ‘너무 늦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도종환 장관은 “빠르게 가는 것보다 바르게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현장 예술인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이 나라의 향후 10년 청사진이 될 새 문화·예술 정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인수위원회가 있었더라도 늦어졌을 정도로 도 장관의 각오는 확고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정부가 언론을 통해 완성된 정책을 발표하고 홍보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도 장관은 “기존의 폐쇄적인 구조에서 전문가와 연구진이 논의하는 방식은 지지 기반과 추진력이 약하다”며, “이제 모두가 협력해 완성된 것이 아닌 계속 진화하는 개방형·진행형 문화비전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도 장관은 실제로 지난해 6월 부임 이후부터 문화·체육·관광 포럼이나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노력했다. 10월부터는 민간 전문가와 정책 분야별 책임연구자를 중심으로 ‘새 문화정책 준비단’과 ‘새 예술정책 수립 특별전담팀’을 구성·운영해 ‘문화비전2030’과 ‘새 예술정책’ 수립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기조를 발표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즈음이 되는 5월 16일. 문체부는 ‘문화비전2030-사람이 있는 문화’(문화비전2030)과 새로운 예술정책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새 예술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심지어 현장 문화예술계로부터 ‘박수 칠 수가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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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경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간사가 2017년 12월 20일 블랙리스트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4 지난 2월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새 문화정책 준비단 현장토론회.(사진 최성열)

자율성·다양성·창의성 담은 ‘문화비전2030

왜 이런 반응이 나온 걸까. 일단 민관 협치 과정을 거쳐 나왔다고 하는 결과물을 살펴보자. 새 정부의 문화정책인 ‘문화비전2030’은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기조 아래 자율성·다양성·창의성이라는 3대 가치를 바탕으로 총9가지 의제 37개 주요 과제를 담았다. 9가지 의제는 개인의 문화권리 확대, 문화예술인·종사자의 지위와 권리 보장, 성평등 문화 실현, 문화 다양성 보호와 확산,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 생태계 조성, 지역 문화분권 실현, 문화자원의 융합 역량 강화,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 추구를 골자로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휴일을 확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첫걸음 문화카드’를 도입해 초등학교 입학생과 부모에게 문화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예술가의 지위 및 권리 보호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고 예술가권리보호위원회를 구성하며, 최근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 금지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문화 분야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서면계약 의무 위반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 밖에 지속 가능한 남북 문화교류협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 문화교류협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 ‘새 예술정책’

‘새 예술정책’의 비전은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이다. 4대 추진 전략인 자율과 분권의 예술행정, 예술가치 존중의 창작환경 조성, 함께 누리는 예술참여 확대, 예술의 지속 가능성 확대 등을 바탕으로 8대 핵심 과제와 23개 추진 과제를 마련했다.
8대 핵심 과제의 골자는 예술표현의 자유와 예술인의 인권 보호, 예술지원 체계의 독립성과 자율성 제고, 예술가치 중심의 창작지원, 예술인의 삶을 지키는 복지, 모두에 열려 있는 예술참여 환경 조성, 소수자가 예술로 어울려 사는 사회, 공정하고 활력 있는 예술시장 환경 조성, 예술의 미래 가치 확장 등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예술지원 체계의 독립성과 자율성 제고이다.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책의 일환이다.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명칭을 ‘한국예술위원회’로 변경하고 예술지원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예술위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공공기관에서 제외하고, 위원장 호선제를 도입한다. 소위원회를 현장 예술인 중심으로 구성해 상시적 협치 구조를 마련한다. 사무처 간부직의 일부를 개방형 직위로 운영하고 심의 방식을 고도화하는 등 조직과 사업 운영의 공정성·투명성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체부는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 그동안 발표한 콘텐츠·관광·체육 등 분야별 중장기 계획들을 근간으로 국민의 삶을 바꾸고 사회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실행해나가겠다며, 정책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문화비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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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화비전2030 체계도. (문체부 제공)

문제는 문체부인데, 자기 혁신은 없다

‘문화비전2030’과 ‘새 예술정책’이 나온 날, 예술인들의 자율조합인 예술인소셜유니온(위원장 하장호)은 “최종 결과물이 나왔으니 박수 치고 기뻐해야 할 테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 단체 운영위원과 회원들이 ‘새 예술정책’ 수립을 위한 분과 활동에 참여했음에도 비판을 하고 나선 것이다.
왜 그랬을까. 논평을 살펴보면, 문체부가 발표한 정책의 세부 전략과 과제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율, 상생, 복지, 융합, 창작지원 등의 사업, 그리고 ‘세제 혜택을 통해 문화향유를 촉진’하겠다는 정책도 같다. 그렇다면 블랙리스트를 자행한 적폐 정권의 정책과 다르지 않아서 비판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이전 정부들이 내세운 문화 슬로건이나 정책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은 좋은 슬로건이었고, 세부 정책 사업들은 실행된다면 많은 현장 문화·예술인에게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다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정치 이념, 돈, 권력에 휘둘린 게 문제였다. 결국 그 사업을 추진하는 철학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이 핵심이다.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문제는 문체부 자신에게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화예술계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에 블랙리스트로 초토화됐다. 청와대로부터 시작해 문체부를 거쳐 예술위나 예술경영지원센터 같은 산하기관이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 작동 원리를 보면 청와대와 문체부가 각각 머리와 몸통이었고, 산하기관은 손과 발이었다.
그런데 문체부가 발표한 새 문화·예술정책에는 블랙리스트 실행으로 문제가 된 산하기관, 대표적으로 예술위의 독립성 강화와 기구 자체의 자율성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정작 문체부가 시행해온 비공식적인 지휘 통제에 대한규제는 보이지 않는다. 손발은 고치겠다고 하면서 몸통은 그대로다. 오염된 아랫물은 갈아엎는다면서 정작 오염물을 내려 보낸 윗물은 그대로 두겠다는 꼴이다.
그러니 예술인소셜유니온이 “블랙리스트를 작동했던 손으로 이제는 새로운 예술정책을 작동시키겠다는 문체부 관료의 구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아플 정도로 꼬집은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권고안을 냈고, 문체부는 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의 행정 체계를 진단하고 체계적인 혁신 과제를 만들어내면 된다. 현장 예술인들의 요구대로, 새 예술정책을 시작되려면 실행 주체인 문체부가 새로운 그릇이 되는 게 우선이다.

글 유연석 CBS노컷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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