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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1월호

작가의 방
서울문화재단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합니다. ‘작가의 방’에서는 지원작가들 가운데 눈에 띄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를 선정해 소개합니다.
이보람 극작가어쩌면 우리의 이야기

이보람 극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실화에 바탕을 둔 인간 사회의 문제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극작가 이보람은 지난 11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두 번째 시간>의 제작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시간>은 독재정권 시절 의문사를 당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을 모티브로 했다. ‘37년 전, 죽은 줄로 알았던 남편이 의문사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은 남편을 잃은 뒤 임대아파트에 살며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며느리라고 주장하는 의문의 여성이 그를 찾아온다. <두 번째 시간>에는 이렇게 ‘죽은 남편’과 ‘죽지 않은 남편’이라는 두 상황이 한 무대에 혼재돼 있다. 작가는 그를 통해 ‘회복할 수 없는 인간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회복할 수 없는 인간의 상처’에 관한 그의 고민은 심리학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 시작됐다. 그는 “상담심리와 임상심리 시간에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조차 나름대로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있으며, 어떻게 그 상황을 견뎌낼지 고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문제의식은 14살에 살인을 저지른 소년범의 이야기 <소년B가 사는 집>, 성폭력 용의자로 의심받는 남편의 아내에 관한 <여자는 울지 않는다> 등 전작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모두 상처를 받고 남겨진 자들이 이겨내야 할 고통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 ‘남겨진 자들’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상처받은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 낯설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 상처받은 이들의 감정이 충분히 공감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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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은 가톨릭대에서 심리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2013년 <그날>로 데뷔했으며 2014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선정됐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년B가 사는 집>(2015), <여자는 울지 않는다>(2015), <네 번째 사람>(2018), <네가 있던 풍경>(2018), <기억의 자리>(2018) 등이 있다.

구자혜 연출가듣는 방식도 소통 가능

구자혜 연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보고 인식할 수 있을까?”

‘동시대 연극’의 차세대 연출가 구자혜는 최근 몇 년간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에 관한 작품을 공연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11월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대성당>을 통해 더욱 확고해진 연출가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문학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대성당>은 시각장애인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시각적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청각이 모든 감각으로 확장되는 작품”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이중·삼중의 마이너리티를 건들고 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비주류에 관심을 보였다. 세월호와 땅콩 회항, 검열을 소재로 한 <커머셜, 데피니틀리-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2016)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구 연출가는 최근 공연한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2017)부터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단다. 세월호 실종자로 대변되는 실종된 개와 주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관심받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우리가 대변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런 ‘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셰익스피어 소네트>(2018)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연출가는 무대를 서로 바라볼 수 없는 네 구역으로 구분했는데, 각 영역에 앉은 관객은 다른 구역에서 진행되는 배우의 연기를 관람하지 못했다. 그의 연극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는 <대성당>이 시각장애인을 다루지만 장애인을 위한 연극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는 방식’이 아니라 ‘듣는 방식’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각장애인이든 비시각장애인이든 서로 연결되는 삶의 순간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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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혜는 이화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2010년 <먼지섬>으로 등단해 국립극단 조연출을 거쳐 <3월의 눈>(연출 손진책), <벌>(연출 김동현),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연출 김광보), <칼집 속에 아버지>(연출 강량원)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현재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유비호 작가꽹과리 소리로 이념 탈출

유비호 작가

“분단 상황에서도 덤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무관심 속엔 수십 년 축적된 공포가 숨어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7년 미국의 일간신문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이산가족이 돼버린 이들은 ‘살아생전에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며 자신의 불안한 심정을 표출한다. 이런 정치적 이념 대립에서 생긴 ‘공포, 무기력, 초조, 외로움’을 작가 유비호는 11월 30일~12월 16일 마포구 ‘공간41’에서 진행한 전시 <꽹과리 은하수 편지>에 담았다.
오랜 분단으로 내재된 개인의 심리 요인을 파악해 사진과 영상, 음향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작가는 개인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의 심정에 빗대 설명했다. “죽음의 세계에서 연인의 손을 잡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마음이 오르페우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작가는 어두운 공간에서 햇빛을 꽹과리로 반사해 관람객에게 비추는 미디어 작품 <꽹그랑꽹꽹꽹>(사진)을 전시의 백미로 꼽았다. “원래 농악에서 꽹과리가 리드 역할을 하는데, 이 소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빛을 깨지게 한다.” 꽹과리를 전시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데올로기에 갇힌 비극적 상황에서 뚫고 나오고 싶은 개인의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이 전시에 ‘공간-미장센’을 활용했다고 한다. 미장센은 무대 위 배치를 통해 상징을 극대화하는 것을 뜻하는 연극·영화 용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를 전시에 활용했을까.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초점을 맞췄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것을 에워싼 뉘앙스에 주목했다.” 그는 결국 이것이 관람객이 ‘느림과 비움을 통한 성찰’에 이르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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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호는 동시대 예술가, 기획자, 미디어 연구자와 함께 예술과 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연구하는 ‘해킹을 통한 미술행위’(2001), ‘Parasite-Tactical MediaNetworks’(2004~2006) 등을 공동 조직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한 미적 질문을 던지는 <유연한 풍경>(2008, 2009), <극사적 실천>(2010), <공조 탈출>(2010), <트윈픽스>(2011)를 발표했다. 2013년에는 ‘성곡 내일의 작가상’을 받았다.

박귀섭 사진작가무용가 출신의 사진

박귀섭 사진작가

“보는 사람이 다른데 느끼는 것도 다르지 않을까요?”

발레리노 출신의 사진작가 박귀섭은 지난 12월 서초동 스튜디오 에이아폴론에서 진행된 <작업실을 얕보다>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찍은 작품들은 제목이 없거나 <Shadow #2>(사진)와 같은 추상적인 제목이 대부분이다.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이 다른데, 느끼는 것도 모두 다르지 않을까? 특정한 제목이야말로 작가의 편협한 고정관념이다.”
이런 신념은 그가 걸어왔던 길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국립발레단의 촉망받는 솔리스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를 계약할 만큼 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진작가가 됐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사진은 좋은데,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약 직전에 취소되는 일이 잦았다. 아마도 박 작가의 <무제> 시리즈는 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박 작가의 ‘고정관념 탈피’는 이어지는 전시의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전작 <WHITE> 전시장에서는 하얀 두상을 놓고 관객들이 물감을 마음껏 뿌리게 했다. “모든 인간은 미색으로 태어나는데, 환경에 따라 색깔이 더해질 뿐이다.” 전시를 할 때마다 이렇게 ‘관객 참여’를 빼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다”고 답했다.
“내 사진의 비결은 무용이다. 몸을 가지고 표현해봤기 때문에 몸을 잘 담을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이 분명 있다.” 야구선수에서 무용수를 담는 세계적 사진작가가 된 조던 매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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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섭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200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2007년 뉴욕 국제발레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룩북 화보 디자이너 사진(2010), 뉴욕 소니뮤직 <리프 제닝스 5집> 표지(2015) 등을 작업했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러시아판 표지를 계약(2014)했다. 개인전 <몸짓: 찰나의 언어>(모즈 갤러리, 2017), <표현하다>(올리비아박 갤러리, 2017) 등을 열었다.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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