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열린 제7차 대학로X포럼 ‘우리의 연극현장은 누가 대표하는가?’ 현장. (대학로X포럼 제공)
연극인들, 목소리를 높이다
한국 연극계는 지난해에서야 공론화된 블랙리스트 사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 등으로 오래도록 묵인됐던 참상을 목도했다. 더욱 참담한 사실은 이 참상이 연극인과 현장의 목소리를 대표하거나 국가를 대표해 문화예술을 지원해야 할 한국연극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등이 앞장서고 동조하고 눈감은 결과라는 것이다.
2014년 3월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 배제(책임심의위원 블랙리스트) 방조, 2015년 문예기금 등 공모사업에서 블랙리스트 실행 방조, 2016년 소외계층 문화순회사업에서 블랙리스트 실행 방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선거 협조 요청 등을 비롯해 문예진흥기금 미정산 등의 문제까지 불거진 한국연극협회 정대경 이사장은 동료 연극인들에게 법적 고발을 당했고 지난 8월 21일 자진사퇴했다.
‘우리의 연극현장은 누가 대표하는가?’ 토론회에서 발의자인 김기일 연출은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 경선 참가작이었던 극단 소울씨어터의 <만주전선>이 본선 일주일을 앞둔 6월 22일에 심사에서 배제된 사태를 언급했다. “공식 절차가 아닌 정대경 이사장 개인이 전화로 심사 배제를 전하고 공연 기회, 신인상 수상 등을 언급하는 수혜적인 태도에서 한국연극협회의 ‘대표성’에 의구심이 들었다”고 발의 이유를 전했다.
김 연출은 “현재의 한국연극협회는 애매한 대표성을 취하고 있다”며 “한국연극협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며 문체부, 예술위 등 예술지원기관과 소통해왔다. 하지만 예술지원 기관과의 소통에서는 대표임을 자임하던 한국연극협회가 블랙리스트 사태, 미투 운동 등의 현안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 경우가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보자”고 제언했다.
윤한솔 연출 역시 현장의 목소리를 ‘대표해야 할’ 한국연극협회가 현장 조사에 게으르거나 무능했으며 현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거슬리는 목소리를 무시해왔는가 하면 블랙리스트 사태, 미투 운동에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왔음을 지적했다. 윤 연출은 “임원 등 일부를 위한 사조직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짚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회와 본회에 이중 회비 납입, 회비를 내는 회원으로 등록된 고인, 비공개로 진행되는 협회 주도 사업 등 ‘대표’기관으로서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이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데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2015년 아르코극장 대관 탈락, 집행위원 관련 단체 참가 등의 사태를 빚은 서울연극제, 수상 배제 논란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연극제 등에 대해 “‘그들만의 축제’라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는 회원들의 권익보다는 연극계 내 소수의 권력 유지를 위해 야합하고 있지 않은지” 반문하며 한국연극협회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재검토, 연극계 각종 단체들의 조직 쇄신과 자성을 촉구했다.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는 지난 7월 17일 정대경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브릿지경제 제공)
모든 연극인들의 권익을 위해
이진아 연극평론가의 발언처럼 한국연극협회는 연극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아니라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대물림된 친정부적이고 정권 협력적인 적폐의 산물이다. ‘대표성의 사유화’는 60여 년 가까이 이어지며 축적되고 심화됐다. 대표성을 권력화해 남용하고 집단의 권익보호 보다는 일부를 위한 사조직으로 전락했다. 그 해결의 실마리는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여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한국연극협회의 ‘대표성’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닌 ‘연극인 모두’의 권익을 위해 발휘될 때 힘을 얻는다. 연극 현장의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무시되지 않고 외부 및 기관으로 전달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 뿌리가 깊은 ‘대표성’의 문제는 어느 한쪽에서만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국연극협회의 대표성 문제는 한국 연극계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한국연극협회를 비롯한 다양한 협회들이 쇄신하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든 ‘진짜 대표성’을 지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협회들, 그들과 이미 유착에 가까운 네트워크를 형성한 지원기관 및 정부 그리고 연극인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공론화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할 때다.
- 글 허미선 브릿지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