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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이태겸 감독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존엄함의 계단

생존 앞에서 이상적인 결론은 없다. 웃음기를 지운 서로의 민낯을 보고 나서도 절대 끝나는 법이 없는 싸움이다. 그저 나 하나 똑바로 서서 버티면 될 거라는 기대, 그럼에도 꿋꿋이 잘하기만 하면 다시 기회가 돌아오리라는 낭만적 믿음은 차갑게 멀어진 동료들의 태도 앞에서 웃음기를 잃는다. 나는 그저 형평과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회사는 자꾸 효율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람인데, 회사는 나를 감가상각이 필요한 소모품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효율이 아닌 형평에 대하여

정은(유다인)은 7년간 근무한 회사에서 하청업체로 파견 명령을 받는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그녀를 불편해하고, 그녀는 이론서로 배운 현장 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1년만 버티면 본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모두 그녀를 경계하지만, 막내(오정세)는 그녀를 돕는다. 동시에 본사는 계속 하청업체를 압박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던 전태일 열사가 서거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노동 현장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여전히 괴롭다. 우리 사회는 누구를 향해 두팔을 벌리고 존재해 온 걸까. 의지할 곳도 안길곳도 없이 어두운 곳에서 서로의 굽은 등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이태겸 감독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호들갑 떨지도, 너무 낮게 조아리지도 않는 시선으로 우리가 여전히 외면하고 살아가는 노동자의 현실을 함께 바라보자고 이야기한다. 사회가 이전보다는 아주 많이 평등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부당함과 맞서 싸워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외롭다. 나와 먼 이야기 같지만,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 속,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은이 왜 권고사직을 받게 됐는지 구체적 정황은 나오지 않는다. 한때 우수사원이었고, “일을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사팀 직원의 말로 유추해 보자면 정은이 회사에서 밀려난 이유 역시 그녀의 능력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속 정은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회사에 헌신했지만 이유 없이 해고당한 수많은 노동자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하나의 얼굴이 된다.

그럼에도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일

이태겸 감독은 사무직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파견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버텨냈다는 기사를 보고 각본을 구상했다고 한다. 영화는 줄곧 현기증을 느끼는 정은의 시선을 따른다. 파견업체 직원들은 줄 하나에 의존해 송전탑을 오른다. 정은이 맞닥뜨린 그곳은 치열한 생존 현장이다. 송전탑은, 세상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홀대받는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외줄타기에 가까운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기도 한다. 노동의 효율은 언제나 기업의 가치이지만, 막상 인간의 존엄은 인정하지 않는 냉정한 현실을 담는다. 정은 역시 1년 전만 해도 하청업체를 부리는 본청 직원이었다. 본청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 하청업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하청업체서 직접 겪고서야 자신조차 그들을 부당하게 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외면하는 노동현장의 계열과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같다.
‘워라밸’을 논하기에 앞서, 직장은 사실 자신의 정체성과 가까운 곳이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이고, 가족보다 직장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직장을 잃는 것은 단순히 월급을 뺏기는 것이 아니다. 생존과 함께 정체성의 뿌리까지 뽑히는 일이다. 정은이 모욕을 견디면서 끝까지 떠나지 않고 버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정은을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외부인이라 생각하고 껄끄럽게 대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막내만은, 자신도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이지만, 정은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선의를 보인다. 차가운 세상에서 내민 그 손의 온기는 세상을 오롯이 버티는 힘이 된다.
이태겸 감독은 부당함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해결할 수도, 그 부당함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정은은 두려움을 딛고 홀로 송전탑에 오른다. 허망한 죽음 앞에 오직 나만의 생존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내는 정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아프다.
달아나고 싶은 순간에 달아나지 않는 것. 누군가는 벌떡 일어나라고 하지만 주저앉은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는 순간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이 주저앉힌 자리에서 달아나지 않는 것, 아이러니하고 슬프지만 타인이 부정하는 나를 나만은 긍정하려는 힘, 그게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인 것 같다. 세상이 나를 밀어내더라도 나는 밀려나지 않겠다는 의지, 가장 두려운 순간을 딛고 서는 그녀의 용기 앞에서 손을 내밀고 싶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1)

감독 이태겸

출연 유다인(정은 역), 오정세(막내 역),김상규(소장 역), 박지홍(승우 역)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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