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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맨홀로 보는 서울의 현대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길 위의 전령들

서울의 근대화·산업화가 시작된 이래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십만 개의 맨홀이 다양한 용도를 가지고 서울의 지표면 위에 부설됐다. 이런 맨홀들은 지하 문명과 지상 문명의 접점이라는 본래 역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려주는 지표로도 기능한다.

서울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령

맨홀은 우리 일상생활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토목 시설물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지하의 시설-수도·전기·가스·통신-을 용이하게 관리하는 데, 맨홀은 없어서 안 될 존재다. 지하에 존재하는 도시의 기반 시설과 지표면 위에 존재하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맨홀은 ‘지하 문명과 지상 문명의 접점’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맨홀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맨홀에 새겨진 다양한 패턴과 설치 주체를 나타내는 휘장, 그리고 맨홀이 부설된 위치는 우리에게 서울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수많은 20세기의 맨홀 하나하나가 실은 서울의 도시사都市史를 얘기해 주는 전령인 것이다. 그 사례를 함께 살펴보자.
맨홀에 담긴 역사를 읽어내는 대표적 방법은 맨홀에 새겨진 ‘휘장’에 주목하는 것이다. 용산구 남영동에서 확인된 수도관 맨홀에는 1918년부터 1926년까지 사용된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京城府(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의 명칭) 1기 휘장이 새겨져 있다(사진 1). 당시 경성부 기록에 따르면 이 휘장은 “확장 일로를 걷는 관리 체계 및 물품에 대한 대외적인 표지標識에 활용”하고자 제정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맨홀은 어떤 용도로 부설됐을까. 높은 확률로, 이 일대에 경성부가 직접 건립·경영한 ‘부영주택府營住宅’으로의 수도 공급이 유력한 사유로 짐작된다. 용산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이 주택들은 준공 당초부터 수도가 공급됐던,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거 환경을 갖췄다. 부영주택지 진입로에 해당하는 길목에 부설된 점, 맨홀에 새겨진 휘장의 사용 시기가 부영주택지 건설 시기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남영동의 맨홀은 식민 행정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던 시기를 상징하는 유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세계적 이벤트가 거대한 맨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 개최에 맞춰 추진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한강양안분류하수관로’ 맨홀이 바로 그것이다(사진 2). 가로 2m 세로 2m 거대한 크기의 이 맨홀은 총 연장 54.6km에 이르는 관로의 정비를 위해 한강 남쪽과 북쪽의 물가를 따라 총 908개가 부설됐다. 당초 서울의 하수처리 인프라 정비는 1990년대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컸으나,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단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강의 모습은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사람 여러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이 거대한 맨홀 또한 올림픽이 낳은 서울의 ‘도시계획유산Planning heritage’인 셈이다. 청록색의 철제 덮개에는 맨홀의 일련번호 및 부설 연도와 함께 큼지막한 팔각 모양의 서울시 휘장이 새겨져 있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의해 오래된 맨홀이 일부 교체됐으나,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도 망원·잠실·이촌한강공원 등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서울의 길 위에서는 단기檀紀(단군이즉위한 해인 서력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하는 기원) 연호를 쓰던 시기의 상수도 미터기 맨홀(사진 3),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직후까지 서울의 전기 공급을 담당했던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의 맨홀(사진 4), KT의 할아버지 격인 체신부遞信部의 ‘체’자가 새겨진 통신선 맨홀(사진 5)과 같이 과거의 특정한 시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맨홀이 아직도 무수히 발견된다. 맨홀 관리 주체들의 휘장 혹은 패턴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잘 파악한다면, 맨홀의 모양새를 단서로 서울의 도시 발달과 시가지 변천의 추적 또한 가능하다. 일상 속에서 언제나 접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를 돌아보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이미 유럽이나 미국, 가깝게는 대만과 일본 등지에서는 맨홀을 주제로 한 ‘덕후’들의 모임이 개최되고 있다. 맨홀 모양의 과자나 맨홀 무늬를 바탕으로 한 문구류, 다양한 교양서가 발간되는 등 맨홀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도시를 새롭게 즐기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이다.
마침 서울에서도 2021년 3월 20일부터 5월 16일까지, 서울로7017에서 ‘서울 맨홀’을 주제로한 전시회가 개최된다. 이외에도 SNS 상에서는 맨홀을 열심히 찍어 올리는 답사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울을 탐구하는 색다른 시선, 혹은 새로운 도구로서의 맨홀이 앞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김영준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인스타그램 @서울의현대를찾아서 운영자
참고
《경성부사》 3권, 경성부, 1941
<새로 제정된 서울시 휘장>, 《동아일보》, 1947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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