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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소프라노 임선혜긴밀히 소통하는 음악, 사회적으로 건강한 음악
유럽의 거실에서 오디오를 켜놓고 인근 공연장 시즌북을 뒤적이는 음악 팬들에게 ‘Sunhae Im’이라는 이름은 모차르트나 헨델의 오페라, 바흐의 교회음악으로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봄, 한국에서 임선혜라는 이름은 훨씬 더 다면적이다. 3월엔 브리튼이 랭보의 시에 곡을 붙인 1940년작 가곡집 <일뤼미나시옹>을 서울시향과 협연했고, 4월 4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에 출연한다. 여수 예울마루에서는 비슷한 시대 슐호프와 말러, 베르크의 근대 가곡을 노래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3월 샤롯데시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팬텀>에 그는 주연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로서는 세 번째 맡는 크리스틴이다. 최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발매한 동요 앨범 <고향의 봄>에서는 단순함 속에 청아함이 깃든 노래뿐 아니라 휘파람 실력까지 선보였다. 그는 각도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색깔을 드러내는 다면체일까.
임선혜를 가르친 은사들

“내가 고음악을 찾아간 게 아니라 고음악이 나를 찾아왔죠.” 임선혜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고음악이란 좁게는 바로크 이전, 넓게는 19세기 중반 정밀 가공 기술이 발전하고 공연장이 커지면서 악기와 연주 양식이 크게 변하기 이전의 음악을 말한다. 음악가들과 애호가들이 말하는 ‘고음악’은 대부분 그 시대의 음악을, 당대의 악기와 스타일을 되살리는 연주를 뜻한다.
그 음악이 어떻게 그를 찾아왔을까. 임선혜의 길을 만들어준 중요한 인물들이 있었다. 그는 끼가 많은 어린이였다. 가수들의 노래와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그럴싸하게 흉내 내곤 했다. 성당 성가대 지휘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가곡도 곧잘 불렀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전국 단위 성악 콩쿠르에 나가 수상하곤 했다. 뒤늦게 정한 성악의 길이었지만, 당당히 서울대에 입학했다. 푸치니에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까지 소화하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를 동경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소리가 가장 큰 학생 중 하나였죠.”
서울대에서 만난 박노경 교수는 그를 다른 눈으로 지켜보고있었다. “칭찬을 듣지 못해서 못한다고 여기시는 줄 알았어요. 내게 관심이 있으시긴 한 걸까….” 뒤에야 “선혜가 더 가볍게 노래하고 고음이 뚫리면, 자기 목소리에 맞는 역할을 하며 외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몇몇 사람에게 얘기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생님은 저를 그렇게 ‘요리해’ 나가셨어요.”
그는 자신이 질투가 많다고 했다. 라이벌을 의식하거나 ‘치고 들어오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지면 스승은 얘기하곤했다. “선혜야, 혼자보다 누가 같이 다닐 때가 좋을 때다.” 그 얘기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금도 노 은사에게 레슨을 받는다. 여전히 쓴소리를 하신다고. “이 정도만 해도 남들은 잘한다고 하겠지만,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얘기를 하겠니”라며.
그는 작년에 타계한 롤란트 헤르만 선생이 “좋은 가수는 세 번째 귀가 필요하다”고 한 얘기를 상기했다. 자기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을 뜻한다. “그런 귀가 있느냐에 따라 가수로서의 네 생명과 길이가 정해질 거야.”
카를스루에 음대에서 그를 지도한 롤란트 헤르만은 지난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84세였다. 자녀가 없는 그의 상주 역할을 임선혜가 했다. 지난해 12월 한화클래식 공연을 마치고 독일에 도착할 때까지 장례식도 미뤄졌다.

“내가 고음악을 찾아간 게 아니라
고음악이 나를 찾아왔죠.”

임선혜 20주년 콘서트 <Songs on the Breeze: 바람에 실려온 노래들>

고음악의 거장들을 만나다

밀레니엄이 막을 내리던 1999년 12월, 그는 전화를 받는다.
“필립 헤레베헤가 모차르트 C단조 미사를 지휘하는데, 예정된 소프라노가 무대에 설 수 없대. 이 곡 노래해 본 적 있어?” 없었다. 하지만 ‘있다’고 대답했다. “어디서?” “응, 한국, 서울에서.”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헤레베헤는 고음악과 교회음악의 이름난 거장이었다. 기회를 붙잡고 싶었다. “브뤼셀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악보를 달달 외웠어요.” 열흘 뒤, 헤레베헤는 베를린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리는 모차르트 아리아 콘서트 무대에 전격적으로 그를 세웠다.
수년 뒤, 헤레베헤는 오래갈 인연으로 임선혜를 이끌었다. “선혜, 알다시피 나는 오페라는 안 해. 야콥스는 교회음악도 하고 오페라도 하잖아. 그에게는 네가, 네게는 그가 필요할 거야.”
그렇게 고음악계의 또 다른 거장인 르네 야콥스와의 협업이 시작됐다. 두 사람의 협업은 바흐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돈조반니> 등 여러 오페라와 <올란도> <아그리피나> 등 헨델 오페라 같은 음반계의 찬사를 휩쓴 앨범들을 남겼다.
언젠가 필자는 임선혜에게 “두 사람 모두 ‘호기심 천국’ 같은 면이 닮았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임선혜는 2019년부터 예술의전당 매거진에 ‘소프라노 임선혜의 오페라 & 오라토리오’를 기고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에서 카라바조의 그림을,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서 ‘말하듯 노래하는’ 당대 양식의 변화를 들여다본 그의 탐구는 손대는 음반 해설지마다 뚱뚱하게 만들어 버리는 야콥스의 화려한 지적 여정과 비슷하다.
그는 웃으며 “고음악 스페셜리스트들은 대체로 ‘외골수 탐구가’ 같은 면이 있다. 야콥스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야콥스는 ‘문자중독’이다. 음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매일 각국 언어로 된 뉴스 채널을 5~6개씩 시청한다. 시사 외 다양한 분야에 상식을 갖추지 않으면 쉽게 친해질 수 없다. 한번은 인스브루크 고음악 페스티벌에서 기자들 앞에 마주 앉았는데 질문이 기대 이하라며 기자들을 혼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야콥스는 타인의 지적 탐구도 기꺼이 공감하는 지휘자다. “야콥스는 토론을 즐겨요. 내가 갖고 있는 논점이 확실하면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해볼까?’ 하고 선뜻 수용하죠.”
어린 시절 ‘책벌레’로 동서 고전을 섭렵한 임선혜도 그런 ‘탐구가’형 예술가다. 필자가 처음 본 임선혜의 무대가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이었다. 남주인공 네모리노는 1막에서 임선혜를 바라보며 “Essa legge, studia, impara그녀는 책 읽고, 공부하고, 배우지”라고 노래한다. 임선혜는 늘 책 읽고 공부하고 배운다.

“배역에 나 같은 면이 있으면 맞아서 재미있고,
다르면 나와 다른 면을 무대에서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죠.”

고음악은 소통, 연주자가 즐길 때 청중도 즐긴다

임선혜는 여러 차례 “고음악은 긴밀히 소통하는 음악이고,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음악”이라고 말해왔다. 확실히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운 중창은 ‘프리마돈나(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맡은 소프라노 가수)와 프리모 우오모(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은 남성 가수)가 소리를 질러 상대를 압도하려 했던’ 1950~1960년대 유럽 푸치니 오페라 무대의 풍경과는 다르다. “서양음악은 계속 모든 것이 커졌어요.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며 더 넓어진 공연장을 채우기 위해 소리도 커지고 음높이도 올라가고, 더 자극적이고 다이내믹한 것을 찾았죠. 혼자 무대를 압도하는 것도 재미있고 박진감 있지만, 음악가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을 때 듣는 사람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휴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연주자들이 무대를 즐길 때 청중이 비로소 그것을 느끼고 즐긴다고 확신한다. 그런 모습, 연주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즐기는 모습을 청중이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음악이 고음악의 영역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의 성격과도 닮지 않았을까. 그가 옛 오페라에서 맡아온 역할들을 보면 대개 ‘지혜’와 ‘야심’이 두드러진다. 다른사람들이 허둥지둥할 때도 계획이 있고, 계획을 잘 실천해서 목적한 바를 이루는 여주인공들이다.
그는 “우선 캐스팅할 때 목소리와 신체가 나와 잘 맞기 때문일것”이라고 말한다. 경묘한 목소리와 서구인에 비해 무대에서 날렵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아담한 키가 있다. “배역에 나 같은면이 있으면 맞아서 재미있고, 다르면 나와 다른 면을 무대에서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죠.” 어떨 때는 ‘착하지 않은역’을 할 때 속이 뻥 뚫리기도 한다. “이왕 멍석을 깔아놨으니, 실제 삶에서 못하는 걸 뻔뻔스럽게 펼쳐내는 거죠.”
가장 공감이 가는 역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다. “백작부인을 보면서 상처가 안 되게 조심조심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동참해 주고, 어려워 보일 때 마음이 움직이죠. 그러면서도 명랑하고. 저 같지 않나요?”
어려운 이들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는 그는 가톨릭 신앙인이다. 레퍼토리 중심에 바흐와 헨델 등의 교회음악 핵심 레퍼토리가 들어 있어 축복일 것이다.
그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말한다. 한 세대 전에 유럽에 온동양인에게는 바흐나 브람스의 교회음악이 좀처럼 주어지지않았다. 대부분 자국 가수들이었다. 그런 벽이 깨진 시대에 유럽에 진출해 행운이었다.
한 동료의 말은 그의 마음에 상처도 남겼지만 깊이 생각할 거리도 남겼다. “너는 여기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네 노래를 들으면 뭔가 느껴지네. 너는 잘 따라 하는 ‘앵무새’니?”
과연 그럴까. 스스로 해답을 얻기 전에 답을 들려준 사람도 야콥스였다. 그는 “유럽인은 이 곡들이 쓰일 당시의 영성靈性을 잃었다. 그런데 너는 그 영성을 들려줬다.”고 말했다. 요즘은 유럽에서 “너는 신자니까 교회음악을 잘 해석하는 거지?”라며 반대 측면의 선입견을 얘기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 그리고 그 후

임선혜는 고음악에 ‘갇힌’ 소프라노가 아니다. 벨칸토 시대의 도니체티, 20세기로 접어드는 말러의 곡도 노래했다. 그래도 최근 발매한 20세기 작곡가 슐호프의 가곡집은 얼마간 새롭게 느껴진다. 그의 날렵한 음색에 잘라 맞춘 듯 들어맞는다.
“슐호프를 탐구하던 음악학자로부터 메시지가 왔어요. 슐호프가곡 음반을 만들려 하는데 저를 쓰고 싶다고. 놀랐어요. 그동안 독일어로 된 가곡 음반을 낸 적이 없었으니까요.”
첫 만남에서 악보를 처음 읽으며 40여 곡을 부르면서 색다른 매력을 느꼈다. “제가 처음 녹음하니까, 제가 ‘레퍼런스’가 되는 거죠. 슈베르트의 음반을 만든다면 기존의 명연들을 의식하게 되지만 이건 그런 게 없잖아요?”
3월 서울시향과 협연한 브리튼 <일뤼미나시옹>은 지휘자 최수열이 처음부터 임선혜를 염두에 두고 선곡했다. 제안을 받자마자 “평소 하고 싶은 곡이었다”라고 말했다. 브리튼의 작품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다.
종잡을 수 없는 상징들로 가득한 랭보의 가사는 프랑스인들조차 파악이 쉽지 않기로 유명하다. 서점에서 랭보 해석의 전문서를 발견하고는 ‘심봤다’며 손뼉을 쳤다. “책을 안 봤으면 해석이 안드로메다로 갈 뻔했죠. 20세기 이후 음악에는 역시 고음악처럼 흥분되는 순간이 많아요.”
한편으로, 대중에게 그는 ‘클래식 성악가’보다 <팬텀>의 ‘크리스틴’으로 더 낯익다. 2015년 이 작품 한국 초연 때 이후 올해 세 번째다. 다르게 느껴지는 영역에 어떻게 이끌리게 됐을까.
“어릴 때 가요도 잘 따라 불렀지만 성악을 하게 된 뒤에는 잊었어요. ‘전혀 다른 끼가 있어야 돼. 아무나 못 해’라는 얘기를 들었고 그렇게 생각했죠. 성악을 전공한 친구 몇몇이 그쪽으로 진출하는 걸 보고 ‘저쪽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섭외는 <팬텀> 미국 연출가로부터 들어왔다. 유튜브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연락했다고 한다. 두 시간만 주면 설득할 수 있다고. 그의 말대로 설득당했다.
해보니 ‘한 살이라도 어린 지금 안 했으면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예술에 대해 흔히 평가절하하는 말들이 있죠.
이 세계에 참여해 보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열하더군요. 한 치도 오차가 없도록 매번 다시 연습하는 모습에 반성이 되는 면이 적잖았어요.”
욕심이 나는 뮤지컬도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은 “우리가 알아온 뮤지컬 이상”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번스타인의 <원더풀 타운>을 한번 해보고 싶다. “금관의 빵빵한 연주가 많이 나오는데, 천재적 작품이에요.”
욕심이 드는 새로운 영역은 또 있다. 소프라노 실비아 맥네어가 앙드레 프레빈 반주로 낸 재즈 음반을 듣고 ‘저런 멋진 음반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네어는 프레빈과 했지만 나는 누구와 하지?’ 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클래시컬한 재즈 음반을 꼭 내고 싶어요. 바로크와 재즈는 공통점이 많죠. 즉흥 연주가 많이 들어가고, 연주자들이 정말로 긴밀하게 소통해야 해요.”
호기심 넘치는 그의 봄날은 언제까지일까. 그와 수많은 작업을 함께한 음반사 하모니아 문디의 아티스트 담당 디렉터 에바 쿠타즈는 평소 그에게 “너는 늘 좋아지고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엔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계속 미흡한 부분이있다는 얘기인 줄 알았죠. 마흔 살이 넘으면서 비로소 ‘그 말이 칭찬이었구나’ 알게 됐어요.”
올해 초 쿠타즈가 사망한 뒤 슬픔에 잠겨 메조소프라노 베르나르다 핑크에게 이메일을 썼다. 핑크는 답신에서 평소 쿠타즈가 “나는 선혜가 엄청나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곤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소프라노는 전성기가 빨리 저물죠. 어떨 때는 5년만 더 해야지 싶다가도, 어느 날 연주를 마치고 나면 15년은 더 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쿠타즈의 말처럼 ‘어떤 면에서 더 좋아질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내려올 때 서운하지 않도록, 즐겁고 의미 있는 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 후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음악방송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그는 넌지시 귀띔했다. 그의 풍부한 지식과 통통튀는 말솜씨가 어울리면 어떤 폭발력을 낼지 알 수 없다. 5년또는 15년 뒤의 음악방송 진행자들은 긴장할지어다.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 사진 제공 EMK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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