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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믿음과 현실이 불일치하고 어긋날 때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시절을 준비하기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어찌 보면 우리 삶의 많은 믿음이 무너졌다. 아마 누구도 쉽게 상상해 본 적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면전에서 침을 튀기며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 수업을 듣고, 떠나고 싶을 때면 저비용항공 티켓을 끊어 동남아로 여행가는 일이 하루아침에 불가능해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매일 일정한 손님 들이 드나들며 생계를 이어가게 해줬던 가게 영업이라든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일도 어느 날 불가능에 가까워질 거라고는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난해 이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믿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전까지 지녀왔던 삶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후, 어떤 믿음 혹은 희망을 새로이 가지고 살아낼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세상이 멈춰버리자, 유동하는 자금은 온통 재테크 시장으로 빠져 들어갔다. 누군가는 부동산이나 주식,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벼락거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엄청난 희비가 교차하는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지가 너무도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사회 전체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지 절실히 알게된 시절이기도 하다. 사회가 닫히면 내 삶도 닫히고, 사회가 폭주하면 내 삶도 폭주한다. 아무리 자기만의 삶을 일구어나가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어도, 세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쉽지않다. 자기만의 소소한 행복,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더라도, 사회가 그 소확행조차 틀어막아 버릴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삶의 문제, 혹은 믿음의 문제라는 건 삶을 어떻게 버텨낼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삶이 세상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그시간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달리 말해, 나의믿음과 현실이 불일치하고 어긋날 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살아가면서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도,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이 드물 것이다. 다만, 지난해에는 전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의 삶이 휩쓸려 갔을 뿐, 실제 인생에서 나의 믿음과 현실이 불일치하는 일도 수시로 일어난다. 원하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 간절히 붙잡고 싶은 연인이 떠나가는 일, 사업이 원하는 대로 잘되지 않거나, 꼭 붙고 싶은 시험에서 떨어지는 일들이 인생에 상존한다.

믿음에 배반당하며 성장하기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배반당하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기술을 익혀야만 한다. 모든 삶에는 그런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종교의 힘으로 이겨낸다. 누군가는 십년지기 친구와 마음을 터놓으며 버텨낸다. 누군가는 자기만의 골방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매일 산책을 나서며, 누군가는 자신이 할수 있는 노동에 더 집중한다. 삶이 잘 흘러가기만 한다면, 인생에는 그리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기술은 마치 폭풍우가 그친 후 가뭄이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 삶에 찾아오는 ‘배반당한 믿음’의 시절을 위해 필요하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팬데믹도 조금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인다. 차례로 백신이 공급되고 있고, 아마 언젠가는 신종플루의 경우처럼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도 나올 법하다. 우리가 뜻하지 않게 잃었던 일상은 또 어느 날 갑작스레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다시 저녁마다 모여 서로 마주 보고 술 마시며 떠들고, 줌ZOOM 화상회의가 추억 속 일이 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홍대 거리와 캠퍼스는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다시 주어질 새로운 시절을 준비하면서, 삶 속에 새로운 믿음을, 더 잘 견뎌내는 방법을, 삶의 기술을 만들어가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믿음이 배반당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끝나지 않을 줄 알았던 청춘 시절도 끝나고, 영원히 곁에 있을 줄 알았던 부모님도 언젠가 세상을 떠나고, 영원할 것같은 호시절과 영광의 기억도 사라지곤 한다. 어느 날은 이유 없이 우울하고, 세상이 온통 적대적으로 느껴지며, 벗어날 수 없는 짜증이 오랜시간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구명조끼처럼 꺼내 입을 또 다른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시절은 그런 믿음을 쌓기에 참으로 좋은 때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믿음이 무너진 곳은 또 다른 믿음이 피어오를 토양이 돼주곤 할 것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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