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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가락으로 기억하는
명인의 일생

지난 3월 20일,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아쟁산조 보유자 박종선 선생이 타계했다. 박종선류 아쟁산조의 창시자이자 걸출한 한국음악계 예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온오프라인 기사를 통틀어 그의 부고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발인 날, 국악방송 ‘구술 프로젝트,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2014년 2월 16일에 제작한 방송을 재구성한 특집을 내보냈을 뿐이다. 무명의 배우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도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은 물론이고 온라인 저널에도 기사가 몇 건씩 뜨는 세상에, 한국음악계 한 축을 담당하던 예인이 떠난 일에 세상이 너무 조용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와 그의 음악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박종선은 1941년 4월 17일, 걸출한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박영실 명창의 아들이자 박동실·공기남·공기준 명창의 조카였으며 임방울의 스승이던 공창식의 손주였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소리를 사사하진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세 살부터 백부 슬하에 살다가 14세에 ‘화랑 여성창극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한국음악 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극단의 10년 선배이자 스승이던 한일섭을 만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바야흐로 국극단이 성하던 시절이었고, 그 시류에 맞춰 ‘임춘앵 여성국극단’, ‘햇님국극단’ 등 여러 국극단을 전전하며 기량을 다졌다. 그리고 그 끝에 음악적 정수를 모아 탄생한 것이 바로 박종선류 아쟁산조다.

산조아쟁은 정악아쟁을 개량해 만든 것이다. 악기 개량이 유행처럼 번지던 1930년대, 국극이 성하던 시절에 반주악기의 필요가 맞닿으면서 신선한 시너지를 냈다. 산조아쟁과 정악아쟁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크기다. 개나리활대를 사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산조아쟁은 정악아쟁에 비해 몸집이 작은 만큼 줄과 줄 사이도 좁고, 음역도 높다. 활대의 굵기와 길이도 정악아쟁에 비해 짧고 가늘어 비교적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산조아쟁은 작은 몸집으로 날렵하게 중저음 소리를 담당하며 여러 극에서 반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1960년대 TV·라디오를 통해 새로운 문화 양식이 확산하면서 국극에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자 창극은 쇠퇴기를 맞았고, 이를 기점으로 반주악기로 활약하던 산조아쟁은 ‘산조’라는 형식의 기악곡 연주 악기로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박종선 역시 이러한 분기점에 맞춰 극단에서 음률을 고르던 그의 손끝에 음악적 정수를 모아 새로운 유파의 아쟁산조를 만들었다.

박종선류 아쟁산조는 스승인 한일섭의 가락에 박종선의 선율을 더해 완성된 것이다. 즉, 한일섭의 가락이 기본 골자가 되며, 그보다 곡이 길다. 여기서 그 스승의 음악 이력을 살짝 짚어보자면, 한일섭은 본래 소년 명창으로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다. 하지만 변성기를 겪으면서 연기와 기예 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2년 국악사 악사장으로 재직하며 아쟁 연주를 시작한 끝에 여러 방면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아쟁산조를 창안했다.

박종선류 아쟁산조는 느린 진양조장단으로 시작해 중모리장단-중중모리장단-자진모리장단으로 이어지는 30분 길이의 기악 독주곡이다. 8줄의 아쟁 줄에서 2현부터 8현까지인 7줄을 주로 사용하고, 첫 번째 줄은 중중모리장단에서 단 한 번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잔농현과 기교의 완급 조절이 눈에 띄는 중모리장단의 선율 구조를 자진모리장단까지 이어 연주한다. 단, 자진모리장단에서는 산조의 최고 음역인 3옥타브 음높이까지 선율을 진행했다가 무장단으로 하행 선율을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박종선은 스승과 같이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60년대부터 광주시립국악원 강사로 악기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1981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으로 이직하고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면서 제자에게 가락을 전승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거기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2대 예술감독까지 역임하며 민속악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빛을 발했을까. 2009년, 그의 아쟁산조가 서울특별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박종선은 시도무형유산 예능보유자가 됐다.

현재 아쟁산조는 한일섭류·박종선류·윤윤석류·박대성류·정철호류·김일구류가 전승되고 있다. 이 중에선 박종선류 아쟁산조가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유일한 유파다. 그리고 그 유파의 창시자가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젖어 지난 시기를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유독 자연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인 만큼, 자연 속에서 담담하게 한 예인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그가 남긴 묵직한 음악의 길고 짧은 음률이 함께한다면 더 진한 감동이 있을 거라 믿는다.

글 칼럼니스트 김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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