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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떠오른 '예술가가 된 할머니들'담담하게 펼쳐내는 진솔한 이야기의 힘
2019년 2월 극장가에 때 아닌 '할매' 바람이 불었다. 이종은 감독의 <시인 할매>와 김재환 감독의 <칠곡 가시나들>이 연달아 개봉하면서다. 두 영화는 각각 전남 곡성군 서봉마을 길작은도서관과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배움학교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이라 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젊)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_영화 <칠곡 가시나들> 중 박월선 할머니의 시 <사랑>

공교롭게도 두 감독은 비슷한 시기에 할머니들의 시를 우연히 접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이종은 감독은 2016년 길작은도서관 할머니들의 시를 모은 책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보고 연출을 결심했다. 김재환 감독은 출근길에 시인 김사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칠곡 할머니가 낭송하는 시를 듣고 <칠곡 가시나들>을 기획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경량 패딩을 입은 독특한 배우가 여럿 등장하는 이 영화들은 스크린 안팎으로 화제였다. 시사회 현장에서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출연 소감을 밝히는 할머니들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에서는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적은 진솔한 시들이 티 없이 맑은 감동을 안겨줬다.

'나이브 아트'가 주는 감동

약 100년 전 영국 콘월의 '땅끝마을' 세인트 아이브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외딴 시골 마을의 어부 알프레드 월리스는 67살이 되던 해 아내와 사별했다. 평생 어부로 일하며 살았던 그는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월리스는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오랜 세월 자신의 눈에 담았던 세인트 아이브스의 풍경을 그림 속에 풀어놓을 뿐이었다. 먼 바다로 나갈 때 탔던 커다란 배, 육지로 오목하게 들어온 세인트 아이브스의 천연 항구 '마우스홀', 수십 년을 살았던 빨간 대문이 있는 자신의 작은 집….
월리스가 73살이 되던 해인 1928년, 런던의 유명 미술학교인 슬레이드 스쿨을 졸업한 화가 벤 니콜슨이 우연히 세인트 아이브스를 찾았다. 그리고 월리스의 순진한 표현에 감동을 받아 그의 그림을 런던에 소개했다. 니콜슨은 월리스의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월리스에게 그림은 예술가가 하는 작품이 아니라, 한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불필요한 기교가 없는 월리스의 그림에선 사람 냄새가 났다. 교육을 받지 않은 덕분에 삶에서 배어나온 이야기가 필터없이 그대로 그림에 녹아났다. 일상의 풍경을 진솔하게 담아낸 그림은 보는 사람을 절로 미소 짓게 했다.
이처럼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작품을 시각예술에서는 '나이브 아트'라고 한다. 한국어로 하면 말 그대로 '순진한 예술'. 피카소가 극찬했던 앙리 루소의 작품 역시 나이브 아트에 속한다. 두 영화감독이 칠곡과 곡성의 '할매'들의 시에서 받은 감정도 결국 '나이브 아트'가 주는 감동일 것이다. 정해진 형식과 공식을 따르거나 비틀고 또 파괴하는 복잡한 프로의 세계. '아는 사람만 알아듣는' 그들만의 세계를 벗어난 예술. 있는 그대로의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그런 예술의 감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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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더피플 제공)

2 <시인 할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다른 세대에 대한 오해의 반성

한국적 상황에서 할매들의 시가 전해주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바로 우리가 기존 문화예술 콘텐츠에서 접하지 못한 지역사회와 노년의 삶을 접하면서 느끼는 일종의 반성 같은 것이다. 김재환 감독도 <칠곡 가시나들>을 연출하며 "지금까지 대중문화에 비친 노인의 모습은 왜곡된 듯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대중에게는 노인을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선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과거를 먹고사는 회고적 존재, 다른 하나는 죽음을 바라보는 존재. 그러나 실제 노인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분들에게도 욕망이 있고 오늘이 있다."
한글을 평생 배우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았으며, '개인'이라는 개념이 낯선 할매들의 삶. 이러한 삶의 맥락을 들여다보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노년층의 이해 못할 행동들은 다 저만의 사연 있는 일이 된다. 영화는 그런 맥락을 제공함으로써 노인을 타자화했던 시선을 거두라고 이야기한다.
또 할매들의 시가 주는 감정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박막례 할머니의 눈치 보지 않는 '사이다' 발언, 오랜 세월 자식들을 홀로 키워온 경험에서 배어나오는 지혜가 '반전' 웃음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갑작스럽게 맞은 핵가족 문화에 젊은 세대들은 노인들을 이해할 기회가 없었다. 막연히 무섭고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노인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 어린 시청자들은 신선함을 느낀다.
이런 영화는 앞으로 더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노인을 그저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건 그들을 또다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중문화에서 말해지지 않은 세대의 목소리가 '나이브 아트'를 넘어 더 다양하게 전해지길 기대한다.

글 김민_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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