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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문예지 공모전, 생존을 위한 수단인가?한국 문학계의 오랜 관행, 혹은 불행
최근 한 문예지가 예비 작가들에게 일명 '등단비'를 요구한 사례가 드러나 논란이 됐다. 문예지가 등단비를 요구하는 관행은 오랜 세월 '등단 장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문학의 질 저하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였다. 문학을 획일화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등단 제도가 존속한 건 문턱을 높여 한국 작가군의 역량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명분 덕분이었다. 등단 장사는 그 명분을 문예지 스스로 허무는 관행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제 살 깎아 먹기란 것이다. 그런데도 왜 등단 장사는 계속되는 걸까. 대개 문예지의 답변은 하나로 모아진다. 등단 장사는 곧 '생존 수단' 이라는 것이다.

문예지의 생존 수단에 대한 고민

예를 하나 들어보자. 10년 넘게 발행 중인 A문예지는 격월간으로 공모전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 문예지는 지난 1월 말 공모전 당선자들에게 등단 비용으로 76만 원을 입금하라는 안내문을 보냈다. 그 서류에 명시된 내역을 보면 작가협회 가입비 60만 원, 1년 치 작가협회 회비 선납분 10만 원, 1년 정기구독료 6만 원 등이었다. 이 문예지는 공모전과 별개로 개별 심사도 운영하고 있다. 공모전 당선자가 내는 등단 비용에 심사비 10만 원, 심사평 의뢰 비용 30만 원, 등단 책자 30권 구입비 30만 원, 작가협회 발전기금 30만 원 등 총 100만 원을 추가 납부하면 공모전을 거치지 않고 등단이 가능하다. 이 문예지의 관계자는 "등단 비용은 사무실 임대료, 문예지 출판 비용, 공모전 당선자 축하행사 등 꼭 필요한 데만 쓰일 뿐 수익을 남기지 않는 형태로 운용된다"라고 했다. 문예지 운영을 위한 최소 비 용이라는 해명이다.
이건 A문예지만의 사정이 아니다. 현 출판시장에서, 일명 '1급 문예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예지들이 등단비로 문예지 전체 운영 비용을 충당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예지 관계자는 "정기구독자가 100명 넘는 곳이 드무니 문예지 발행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각 문예지마다 등단 작가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작가협회에서 회비가 들어오지만, 협회 운영에 대부분 쓰이는 데다 기존 회원의 회비 납부율도 점차 떨어지니 등단비에 의존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문예지 발행만으론 비용조차 건질 수 없는 시장 상황이 등단 장사라는 관행을 연명케 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문예지 시장은 '공갈빵' 구조다. 수요는 빠르게 주는데 공급은 여전히 비대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펴낸 <문예연감 2017>에 따르면 문예지는 2016년 기준 670종이다. 이들이 발행하는 문예지 권수는 1,853권에 이른다. 이 수치대로라면, 문학 독자 자체가 줄어든 데다 웹, 모바일 등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해 종이책 형태인 문예지의 독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여전히 월 평균 150권 이상씩 문예지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사정 속에서 그나마 내실 있게 운영되던 유명 문예지는 최근 경영상의 이유로 잇따라 휴·종간 결단을 내리는 중이다. 22년에 걸쳐 운영된 계간 <21세기 문학>은 지난해 말 겨울호를 끝으로 종간했다. 한 해 1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에 대한 부담이 그 이유였다. 40년 역사의 <문예중앙>도 2017년 여름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30년 가까이 발행된 <작가세계> 또한 같은 해 휴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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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중앙>, <21세기 문학>, <작가세계>는 경영상의 이유로 휴간하거나 종간했다.

독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문예지가 현재 한국 문학 작가 발굴의 주요 창구인 만큼 정부가 나서 매년 지원하고 있지만 전체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특히 사정이 어려운 소규모 문예지에게 정부지원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 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 지원하기로 한 문예지는 총 47종에 그쳤다.
이런 재정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속이 텅 빈 문예지 시장에 수요를 채워 넣는 게 최선이다. 가능성이 낮더라도, 문예지 독자를 양성하는 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0년도 예산을 신청한 '문예지 검색포털' 개발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개별 문예지에 무상으로 웹페이지를 할당해 작품을 게재하도록 하는 건데, 일반 문학 독자가 문예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 문학계는 팔짱 끼고 기다리면 되는 걸까. 국내 최대 규모 문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등단 장사에 대해 "각 문예지가 사적 자치 형태로 운용하는 것이기에 옳다, 그르다를 평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했다. 문예지와 예비 작가 간 합의하에 이뤄지는 거래이니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다. 여기에 빠진 건 독자에 대한 고려다. 암암리에 이뤄지는 등단 장사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문예지가 부여한 작가라는 이름에 신뢰를 가지고 작품을 읽을 사람들 말이다.
우리 문학계가 등단 장사에 너무 관대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최소한 이것 하나는 잊지 말아야 한다. 등단 장사라는 말이 떠돈다는 것 자체가 한국 문학계의 불행이라는 사실 말이다.

글 김승환_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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