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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전시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와 <조선, 병풍의 나라>조선의 마지막 그림들
조선 말기, 고종(재위 1863∼1907)과 순종(재위 1907∼1910) 시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랫동안 싸늘했다. 부패와 분열로 흔들리던 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서야 조선 말기의 역사 인식이 점차 균형을 찾고 있다. 1920∼1940년대 근대미술 연구에 치중해왔던 미술계에서도 소외된 조선 말기 미술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이 시기의 미술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공예와 병풍 같은 주목받지 못한 주제를 다뤘다는 것 또한 공통점이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미술품이 대거 공개되었으니 챙겨 보면 좋겠다.

‘근대미술의 맹아’를 발견하다<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11. 15∼2019. 2. 6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조선 말기를 전통이 급격히 퇴조하는 가운데 외래 양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시기가 아니라 ‘근대미술사의 기점’으로 바라보는 전시다. 이 시기에 궁중화는 전통과 외래 요소를 절충하려 애썼고, 사진을 받아들이면서 시각·기록 문화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수공업은 산업과 예술로 분화했고, 화가들은 예술가로서 위상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이는 모두 근대미술의 맹아에 해당하는 것들로 일제 식민정책이 작용한 부분도 있지만, 그 변화의 기반 및 뿌리, 나아가 큰 방향은 대한제국기와 그 이전에 이미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즉 대한제국기는 근대미술의 토대가 놓인,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유의미한 시대”라면서 “이 시기를 실제 작품으로 살펴보는 것은 근대미술의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보여주는 당대 회화와 사진, 자수, 도자, 금속공예 등 200여 점이 전시에 나왔다. 호놀룰루미술관으로부터 어렵사리 대여한 <해학반도도>는 조선시대의 궁중장식화다. 금박 장식이나 화법, 안료 등에서는 일본을 포함한 외국의 영향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신원사가 소장한 불화 <신중도>에는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를 떠올리게 하는, 신식 군복 차림의 호법신이 등장한다.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과 태극 문양 장식이 눈길을 끈다. 이 시기 미술에서는 사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880년대 초 황철이 서울 종로(옛 대안동)에 첫 사진관을 연 이후 어진이나 기록화 같은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을 사진이 대체했기 때문이다. 전시된 궁중회화에서는 사진의 사실성에 자극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교사회에서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의 초상이 사진으로 제작된 점도 특기할 만한 변화다.김규진이 1905년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고종을 촬영한 <대한황제 초상>은 국내에서 처음 전시된다. 조선의 왕을 뜻하는 오봉병(五峯屛) 병풍 대신 갈대와 국화, 수선화 등을 담은 일본의 화조 자수 병풍이 놓인 것을 두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전통적 상징 체계상에도 와해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 시기에는 도화서의 해체로 다양한 궁 밖 화가가 궁중회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화가의 위상도 달라졌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겼던 과거의 화원과는 달리 예술가로서 자의식을 느꼈고, 창조적인 작업을 펼쳤다. 창덕궁 대조전, 희정당 등의 벽화로 제작된 그림들에는 이러한 상황이 반영돼 있다. 대한제국의 황궁이자 고종의 꿈이 서린 덕수궁(옛 경운궁)에서 열리는 전시라 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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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대한황제 초상>, 채색 사진, 22.9×33cm, 1905년 추정,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Gift of the estate of Mrs. Edward Henry Hariman, 1934)

‘종합예술의 꽃’ 병풍을 불러내다<조선, 병풍의 나라> 10. 3∼12. 23,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병풍은 오랫동안 ‘병풍’으로서만 존재했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쓰는 가림막 정도로 인식됐다. 올해 개관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2번째 기획전에서는 병풍을 그림과 글씨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자 가장 큰 규모의 조선 회화로 전면에 내세웠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문필 학예2팀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천 년 이상 병풍을 사용했는데도 정작 병풍을 제대로 소개하는 전시는 거의 없었다”면서 “고미술 회화전의 자리 한편을 묵묵히 지켰던 병풍을 이번에 한데 모았다”고 설명했다.
자체 소장품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등 10여 개 기관과 개인으로부터 대여한 출품작 76점은 조선 후기에 집중돼 있다. 영조 이후부터 병풍을 활발하게 제작, 사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로 추정되는 <해상군선도10폭병풍>은 고종이 1908년 독일로 돌아간 기업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하사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해외 문화재 환수를 통해 2013년 국내에 돌아온 이 병풍을 16개월간의 보존 처리를 거쳐 전시에 내놓았다.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은 1902년 11월 고종의 망육순(51세)과 즉위 40년을 축하하고자 덕수궁에서 열린 조선의 마지막 궁중연향을 담았다. 병풍을 통해 1904년 불탔다가 단층으로 중건된 중화전의 원형을 알 수 있다. 서양식 제복을 입은 채 도열한 신식 군대와 한쪽에서 나부끼는 태극기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다음 병풍에 고종과 황태자의 자리만 그려진 것은, 7년 전 시해된 명성황후의 부재를 암시한다.
이 밖에 보물 제733-2호인 <헌종가례진하도8폭병풍>, 보물 제1199호 <홍백매도8폭병풍>,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70호 <전이한철필 어해도10폭병풍>,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6호 <기성도8폭병풍> 등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들을 두루 볼 수 있다. 고전소설 <춘향전>을 이야기 순서대로 그린 <춘향전도8폭병풍> 등 완성도는 조금 부족해도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병풍들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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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도8폭병풍>(春香傳圖八幅屛風), 종이에 채색, 전체 182.4×367.3cm, 화면 각 93×35.9cm, 20세기, 국립민속박물관.

글 정아란 연합뉴스 기자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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