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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라움트포스트하이퍼살롱을 지향하다
서교동 대로변, 최규하 대통령 가옥과 담을 나란히 하고 있는 단독주택 앞에 범상치 않은 간판이 세워져 있다. ‘라움트’(LAUMT). 미디어 콜렉티브 라움트의 프로젝트 하우스인 이곳은 지난해 8월 문규철과 황선정 두 예술가가 주축이 되어 문을 연 살롱 콘셉트의 문화공간이다. 연말을 수놓은 트렌드 책의 주제로 등장할 만큼 ‘살롱’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힙한 동네 서교동에 남들보다 한발 먼저 과감히 출사표를 던진 라움트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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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로변에서 바라본 라움트 입구.

2 라움트 마당.

21세기 문화살롱

단순히 복고의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살롱’이 지닌 문화적 맥락은 넓고 깊다. 17~19세기 유럽의 살롱과 20세기 중반까지 존재했던 우리 식의 살롱인 ‘다방’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아지트이자 실험실이었다. 급변하는 사회 정치적 맥락 속에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뜻을 모으고 실험을 추구하던 공간. 이곳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문화예술계 사조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고, 시대를 선도하는 예술가 집단을 형성하기도 했다. 라움트는 이러한 즉흥적 사건의 물리적 배경이 된 ‘살롱’의 미래 버전을 지향한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놀면서 새로운 실험을 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붙인 라움트의 수식어는 ‘포스트-하이퍼-살롱’(post-hyper-salon)이다. 이들은 현재 홍대 앞의 문화가 1세대 때의 분위기와 달리 끼리끼리 배타적인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으면서도 정작 접점이 없었던 예술인들을 연결하는 거점 공간을 표방한다.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던 건물을 동료들과 함께 직접 리모델링하여 완성한 라움트는 마당이 딸린 2층 주택 공간 전체를 사용한다. 3개의 방과 홀처럼 쓸 수 있는 넓은 거실이 있는 1층은 전시, 파티, 공연, 강연 등 다양한 이벤트 공간으로 쓰인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사무실과 강의실, 아티스트들의 개인 작업실 등이 한데 모여 있다. 옥탑은 서교동에서 우연히 연을 맺은 사운드아티스트 그룹에 작업실로 지원하고 있다. 건물 입구와 연결된 너른 마당은 행사나 교육 세미나 등 필요에 맞춰 가변적으로 사용한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지하에는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는 암실인 ‘람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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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움트에서 열린 제5회 ‘less and more’.

4 “라움트 우주피스의 날 :: 마더 텅” 행사에 맞춰 모국어를 주제로 열린 <우주피스 공화국> 대담 모습.

5 에어비앤비 제주 트립 론칭 프로그램.

문학과 디제잉, 전시와 파티가 어우러지는 공간

공간 운영과 기획을 담당한 문규철과 황선정. 라움트의 살림을 맡은 두 사람의 조합 역시 신선하다. 전자음악 프로듀싱과 사운드를 활용한 미디어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문규철, 대학 시절 밴드에서 음악을 하다 비주얼코딩과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황선정의 인연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영크리에이티브코리아 2016> 전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전시 부분 작가로 참여했던 그들은 전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살롱에 대한 구상을 키웠다. 이때 함께 기획했던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디제잉과 미디어 작업을 아우르는 파티 콘셉트의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 페스티벌의 타이틀은 ‘less and more’. 이 행사가 라움트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두 사람은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포스트-하이퍼-살롱’이라는 개념이 보다 명확해졌다고 한다. 지난 6월 라움트에서 열린 ‘less and more’에는 황선정이 작가로 참여하여 미디어아트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1980년대의 고즈넉한 주택을 배경으로 한편에서는 빛을 발산하는 미디어 전시가, 다른 한편에서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발산하는 디제잉파티가 공존하는 모습은 다양한 장르를 뒤섞는 라움트의 실험정신이 돋보인 현장이었다.
라움트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난 행사를 꼽으라면, 지난 5월 12일 열린 리투아니아의 국민 시인 코르넬리우스의 낭독회를 들 수 있다. “라움트 우주피스의 날 :: 마더 텅”(Uzupio Respublika_Laumt :: Mother Tongue)이라는 제목을 단 이 행사에서 세 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은 자신의 시를 직접 낭독하고 모국어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한국에서는 시인 황유원이, 미국에서는 시인이자 비교문학과 교수인 제이크 레빈이 참여하여 오묘한 조합을 선사했다. 낭독 이후 진행된 강연과 토론은 1층 강의실 곳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고, 같은 주제를 다룬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이 함께 전시되었는데, 사람들은 방과 방 사이를 기웃하며 자유롭게 라움트 안팎을 누볐다. 자유낭독에 이어 행사 말미에는 시인 제이크 레빈이 디제잉에 참여하는 즉석 디제잉파티가 열렸다. 날선 경계를 허물고, 나이도 국적도 잊은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어울리고 즐기면서 라움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21세기 살롱 풍경을 연출했다.

일상으로 파고드는 문화공간을 꿈꾸며
운영 2년차에 접어든 라움트는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주변의 문화공간들과 소통하면서 ‘지역과의 상생’에 시선을 돌린 것이다. 이웃한 주민들이 예술을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는가 하면, 동네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작당을 준비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서울문화재단의 생활문화지원센터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제는 디제잉이 울려 퍼지는 파티장이었다가, 오늘은 어린이 대상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내일은 동네 어르신들이 마실 나오는 문화공간. 처음 ‘라움트’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일상과 예술, 과거와 현재, 생산과 잉여,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교차하는 공공연한 집’을 꿈꾸었다던 두 사람은 창작자를 넘어 문화기획자로서 진화하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라움트가 지역 주민들의 예술적 감각을 깨우는 공간이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융복합 실험예술의 장으로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글 방유경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
사진 제공 라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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