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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영화 <콜럼버스>와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자연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조화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는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다. 프랑스의 부르고뉴는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콜럼버스>와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건축과 와인을 소재로, 지금의 자신을 길러낸 가족과 도시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건축과 와인은 자연과 사람과 시간이 조화를 이뤄야만 완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 조화의 예술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두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 콜럼버스

영화 <콜럼버스>.

영상으로 읽는 도시 에세이코고나다 감독의 <콜럼버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모더니즘 건축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 콜럼버스 건축 투어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밀러 하우스가 <콜럼버스>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공간이다. 밀러 하우스는 예술품 수집가였던 밀러 부부가 건축가 에로 사리넨과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에게 의뢰해 만든 집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모던한 거실과 단정한 정원을 품고 있는 밀러 하우스의 이곳저곳을 비춘다. 관객은 더불어 그 공간을 지긋이 응시하게 된다. 코고나다 감독의 <콜럼버스>는 카메라가 응시하는 대상 혹은 주인공이 바라보는 대상을 함께 감상하고 감응하자고 말을 건다.
주인공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 역시 자신이 콜럼버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물인 엘리엘 사리넨의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를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그러곤 화자도 없이 혼잣말을 한다. “사리넨의 건축엔 비대칭 속의 균형이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콜럼버스에서 살아온 케이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사서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었다. 케이시는 힘들었던 10대 시절 우연히 건축에서 위로를 받았다. 건축은 실용성이 중시되는 예술이지만 때론 그것을 바라보거나 그곳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예술이다. 남몰래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워온 케이시는 우연히 유명 건축학 교수를 아버지로 둔 진(존 조)을 만난다. 자식보다 건축에만 애정을 쏟아온 아버지를 원망하며 산 진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콜럼버스로 향한 참이다. 케이시는 그런 진을 반갑게 대하며 콜럼버스의 이방인에게 자신의 건축에 대한 애정과 삶의 고민을 꺼내 보인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케이시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진. 건축을 통해 꿈을 키우는 케이시와 건축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려는진. 두 사람은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어윈 컨퍼런스 센터, 데보라버크의 어윈 유니언 뱅크, 제임스 폴 의 콜럼버스 지역병원 정신과 병동 등을 함께 둘러보며 자신들도 모르는 새 치유와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때론 사람이 배경이고 콜럼버스라는 도시가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 <콜럼버스>는 영상으로 읽는 도시 에세이 같기도 하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이번엔 와인을 음미하러 프랑스 부르고뉴로 떠날 차례다. <콜럼버스>가 시각예술을 통해 영감을 주는 사색적인 영화라면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시각은 물론 후각과 미각과 촉각을 일깨워 인생의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최상의 풍미를 가진 와인이 탄생하는 것처럼,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면서 더욱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는 관계가 있다. 대개 가족과의 관계가 그렇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와이너리를 물려받은 세 남매가 함께 와인을 만들며 관계의 회복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첫째 장(피오 마르마이)은 고향을 떠나 10년이 넘게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장남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아버지가 싫었고 더 큰 세상이 보고 싶었다. 그러다 둘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으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집을 찾는다. 어려서부터 와인 테이스팅 실력이 뛰어났고 와인에 대한 애정이 컸던 줄리엣은 장이 집을 비운 사이 가업을 물려받아 와이너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셋째 제레미(프랑수아 시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조차 나타나지 않은 형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형이 돌아와 반갑다. 제레미는 일찍 결혼을 했고,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처가댁에 얹혀살면서 장인어른의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뿌리를 내린 세 남매의 삶을 다시 한데 모으는 건 아버지의 죽음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유산으로 남긴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세 남매가 공동 소유하게끔 했다. 거액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포도밭을 팔지 와이너리를 팔지 세 남매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포도송이는 익어간다.
매일이 똑같은 풍경처럼 보여도 오차 없이 똑같은 풍경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시간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는 늘 새롭다. 아니 새로워질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도, 사랑하는 여인의 소중함도 뒤늦게 깨닫는 장을 보면서, 혹은 사계절을 꿋꿋이 버티며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다는 포도나무를 보면서, 그 포도송이가 익어 향기로운 와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게 하나 있다.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글 이주현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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