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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함께 살아가는 장터 ‘상생장’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공생을 도모하다
혼밥, 혼술, 혼놀, 그야말로 ‘혼’이 유행하는 요즘 시대에 재래시장에서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청년들이 있다. ‘함께 살아가는 장터’를 의미하는 상생장은 시장 상인과 손님, 동대문 지역 주민, 청년, 아티스트, 모든 이와의 상생을 꿈꾼다. 2008년 문전성시(門傳成市)*라는 이름으로 전통시장에 문화를 접목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비어 있던 상점에 청년들이 들어가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대부분 시장도 살리고 청년들의 일자리도 창출하기 위한 정부 주도형 사업이었다. 상생장은 누군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시장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청년 창업의 어려움을 나누다

평일 한낮, 경동시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침체된 재래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북적북적하고 넓은 시장, 수많은 상점 사이에 비밀의 문이 숨어 있다(힌트는 붉은 벽돌과 과일가게). 좁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법에 걸린 듯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 가운데에는 수제맥주협동조합과 카운터가, 오른쪽에는 전시장 겸 메인홀, 왼쪽에는 미트볼·치킨·장어덮밥 등을 파는 푸드코트가 자리 잡고 있다. 3층 옥상은 말 그대로 도심 속 낙원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많지 않아 시야가 탁 트여 있다.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하얀 플라스틱 박스를 쌓아올리면 테이블이 되고 걸터앉으면 스툴이 된다. 깨끗하게 보수해놓은 화장실도 매력이 넘친다. 할머니방 장롱에서 떼어낸 듯한 자개문짝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쪽 벽면에 ‘재래시장 활성화’라는 문구가 써 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정부 부처나 지자체 후원 로고는 없다. “많이들 그렇게 오해하고 물어보시는데요. 이렇게 개인이 직접 빌려서 창업한 사례는 아직 없을 거예요.”
상생장을 운영하는 나영규 대표는 2003년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을 시작으로 픽시(fixie: fixed gear bike) 자전거숍, 도심 속 캠핑 콘셉트의 식당 등 젊은 시절부터 여러 분야에서 창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청년사업가 출신이다. 소자본 창업자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13년 정도 지나고 나니 자본이 많거나 특허를 갖고 있거나 힘이 있지 않으면 청년 창업시장에서 오래가기 어렵다는 생각에 허탈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2016년 2월, 시장에 장을 보러 왔다가 이 공간을 우연히 발견했다. 원래 이곳은 1층 상인들을 위한 창고였다. 점포의 월세가 워낙 비싸다 보니 건물주가 창고로 쓰라고 내준 것인데, 상인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였다. 창고 외에는 해볼 만한 아이템도 없었다던 건물주는 20년 만에 사업계획서라는 것을 처음 받아보고는 임대를 결정했다. 취지가 좋고 주변 상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 흔쾌히 승낙했다고. 단순한 푸드코트가 아니라 그동안 창업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을 해보겠다는 야심만만한 사업계획이었다. 지난 6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8월15일 전시공간을 먼저 오픈하고, SNS와 지인들을 통해 청년들을 모아 10월 21일 푸드코트를 열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수많은 상점 사이에 숨어있는 상생장 입구.
2 2층 메인홀은 전시, 모임, 작업, 소규모 결혼식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다.

뭐든지 가능한 공간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3 12월 초에는 백패커들이 모여 옥상에서 캠핑을 했다.

2층 메인홀의 첫 전시는 ‘N/S PROJECT’ 멤버들의 작품으로 채웠다. N/S PROJECT는 나 대표를 포함해 아티스트 30여 명이 속해 있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2009년 4월 ‘MAGNET’展을 시작으로 2010년 2월에는 KT&G상상마당, 2013년 9월에는 복합문화공간 NEMO(네모)에서 전시를 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멤버 중 한 명이 재래시장에 공간을 만들었으니 ‘상생’이라는 의미로 작품을 내보자며 다시 한 번 뭉쳤다. 상생장에 걸려 있는 작품이나 상품들은 시장에서 파는 물건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한쪽에는 아트 체어가 놓여 있고, 한쪽 벽에는 자전거가 걸려 있는 식이다. 회화, 사진, 일러스트, 가구, 조명, 그래피티 등 소속 아티스트들의 전방위적인 활동 분야가 반영된 결과다. 앞으로 ‘N/S PROJECT’ 외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전시뿐만 아니라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매번 다른 주제로 플리마켓(flea market)이 열린다. 11월에는 소규모 결혼식을 했고, 12월 초에는 백패커들이 모여 옥상에 텐트를 치고 캠핑도 했다. 서울문화재단 TA 47명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TA의 날’ 행사도 이곳에서 열었다. 앞으로도 뜨개질 강좌, 애견 동호인 정모 등 각종 모임과 행사로 예약이 꽉 차 있다. “공간이 있으니 어떤 콘텐츠든지 기획해서 해볼 수 있어요. 무료로 전시하다가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고요. 같이 만들어가는 공간입니다.”
청년, 아티스트와의 ‘상생 도모’는 확인되었는데, 1층 상인들과도 상생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일단 식재료 대부분을 시장에서 직접 구입한다. 상인들은 행사가 있을 때 올라와보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장사하느라 너무 바빠서 어울릴 시간이 없단다.
“시장 상인들은 어르신이 많아요. 인사 잘하고 나쁜 모습 보이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 보이면 시간이 자연적으로 해결해줄 거예요.” 그래도 시장 손님들이 화장실이나 먹거리를 찾으면 2층으로 올려 보내주신다고.
“재래시장에 젊은 사람이 많이 찾아와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현지인이 많이 오면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겁니다. 젊은 친구들과 시장을 이용하시는 어머님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있는 재래시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복잡한 청과물시장 한 켠,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그려나가는 함께 살아가는 미래. 상생장의 행보에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문화+서울

* 문전성시(門傳成市):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 시작한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상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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