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1월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살아 있는 지금, 나만의 것
아티스트 전제덕에 대해 ‘한국의 독보적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라는 수식어는 전혀 과하지 않다. 교육용 또는 포크 뮤지션이 간주에 이용하는 보조 악기라고 흔히 생각하던 하모니카를 음악의 중심에 둔 그는 서정적인 곡과 연주로 대중의 호응과 음악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비롯해 대중음악 뮤지션, 다양한 연주자와의 협업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그는 지난 11월에는 하모니카 제작사 호너(HOHNER)가 선정하는 ‘호너 아티스트’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됐다. 침체된 한국 음악 신(scene)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뮤지션 전제덕을 만났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의 이름 앞에는 항상 국내 유일, 국내 최초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 국내 최초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 앨범 <우리 젊은 날>(2004)을 발표했고, 이후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거의 유일한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다. 한눈파는 일 없이 같은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라면 조금쯤 으쓱해질 만도 한 평가지만, 전제덕은 언제 어디서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이 고정된 수식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고 했다. 최초나 유일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반복되는 똑같은 레퍼토리가 지루하다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도 그런 그의 단호함이 ‘전제덕은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업계 내의 소문을 만들지 않았을까. 실제로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만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다만 이제 제 지난 시간이 가진 스토리텔링은 한계를 맞이한 것 같다고 할까요. 새로운 공연이나 새로운 이슈에 대한 얘기라면 얼마든지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제가 제 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인지가 협업에서 중요해요.
제 소리가 소중하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디든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선구자 전제덕

하모니카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우선 적어도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이라면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모르기가 어렵다. 입을 대고 부는 것만으로 어떻게든 소리가 나게 되어 있는 간단한 주법과 작고 가벼운 몸체 덕에 리코더와 함께 교육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악기가 바로 하모니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가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하모니카와 우리 사이는 갑작스레 멀어진다. 하모니카가 중심이 되는 대중음악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데다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들에 비해 전문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탓이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는) 내가 큰 역할을 했다”며 크게 웃었다.
“제가 첫 앨범을 냈을 때하고만 비교해봐도 상황이 훨씬 좋아졌죠. 하모니카를 하는 친구들이 음반도 많이 내고, 학생들도 많이 들어요. 요즘은 하모니카로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간다고 하더라고요. 딱히 눈에 띄는 연주자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하모니카로 대학 갔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제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뿌듯한 게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초’나 ‘유일’ 같은 수식어가 붙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재차 묻자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하는 표정을 짓는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하모니카를 많이 했잖아요. 자신만의 창작 음악을 하거나 정식 연주 음반을 낸다기보다는 동요 같은 것을 녹음해서 내놓거나 공연하는 경우가 흔했죠. 그런 과거의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저같은 사람이 나와서 하모니카로 재즈를 연주한다고 하니 신기해하던 사람들 반응도 이해는 가요. 솔직히 하모니카와 관련된 대부분의 분야에서 제가 최초라는 게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초라는 말을 딱히 싫어하지도 않고요. 그런 말을 누가 싫어하겠어요(웃음).”
그런 그의 독자적인 면모는 각종 수상과의 굳건한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장고 끝에 발표한 데뷔 앨범은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 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2013년에는 한국 땅에서 대중예술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영예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른바 ‘상복’은 계속 이어졌다. 2016년 11월, 전제덕은 독일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하모니카 브랜드 호너가 선정하는 ‘호너(HOHNER)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우상이자 벨기에의 전설적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 1922~2016)과 클래식 하모니카의 전설 토미레일리를 비롯해 밥 딜런, 존 레넌 등 역사적인 팝스타가 받은 상으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축하한다는 인사에 “글쎄, 피부로 와 닿는 건 없어서 잘 모르겠다”라는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실제로 데뷔 앨범 발표 이후 호너사의 ‘멜로우톤’을 자주 사용하며 국내에 ‘호너 붐’을 불러온 당사자라는 걸 떠올리면 더욱 그랬다.
“딱히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호너’라는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주로 하모니카나 아코디언을 만드는 회사거든요. 제가 호너를 18년째 써요. 그런데 아직도 악기상에서 1대 1 다이렉트로 수입해와요. 정식으로 수입하는 업체도 없고요. 한창 하모니카 음반 잘 팔리고 그럴 때 그쪽에서 미리 시장조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웃음). 제가 이 상에 선정된 걸로 조금이라도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서 정식으로 저렴하게 좋은 제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음악, 하모니카

높은 연주 완성도와 활발한 활동 탓에 전제덕을 재즈 하모니카 외길만을 걸어온 연주자로 짐작하는 이가 많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데뷔 앨범이 나온 게 그의 나이 서른, 처음 하모니카를 잡은 것도 스물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전에는 사물놀이패에서 장구를 쳤어요.” 왜 장구에서 하모니카로 종목을 바꾸었냐는 질문에 다소 장난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일단 장구는 너무 힘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웃음).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에요. 기타나 색소폰도 마찬가지예요. 많이 듣고 친숙한 악기이긴 한데, 이미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제가 그 나이에 그걸 해서는 답이 안나올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동시에 필드에도 꼭 서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악기가 좋을까 이리저리 고민하다 운명처럼 투츠 틸레망의 연주를 만난 거죠. 그런데 솔직히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는 하모니카가 이렇게 어려운 악기인 줄 몰랐어요.” 전제덕은 독학으로 재즈 하모니카를 마스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선천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멜로디에서 공간감까지 노래 한 곡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방법을 택했고, 그 덕에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저는 항상 하모니카의 제일 좋은 점이 일단 불면 소리가 나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기타는 익숙해질 때까지 손만 아프고 소리도 제대로 안 나잖아요. 색소폰이나 트럼펫도 처음 불면 아무 소리 안 나거든요. 그런데 하모니카는 도는 숨을 내쉬고 레는 들이마시는 주법만 잘 익히면, 센스 있는 분의 경우 하모니카를 처음 만진다고 해도 10~20분 정도만 연습하면 동요 한 곡을 연주할 수 있어요. 세상에 이런 악기가 어디 있어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200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한 전제덕의 데뷔 앨범 <우리 젊은 날>(2004).
2 왈츠, 라틴, 발라드 등으로 연주의 폭을 넓힌 정규 3집 앨범 <댄싱 버드(Dancing Bird)>.

나만의 것, 나만의 소리

접근성이 좋은 보급형, 교육용 악기라는 이미지는 사람들이

하모니카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들었지만, 그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제덕이 본격적으로 필드에 등장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창작 앨범이나 정식으로 하모니카를 연주한 연주자 한 명을 찾기 힘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연구해 심지어 ‘재즈’를 연주하는 하모니카 연주자라니. 전제덕의 등장은 아직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한국 음악계가 문득 받아 든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건 해외 사정도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해외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아주 많지는 않아요. 대중이 알고 있는 건 밥 딜런이나 스티비 원더 같은 유명 팝 스타들이 연주하는 보조 악기로서의 하모니카가 전부죠.” 그는 씁쓸함을 삼킨 채 담담하게 말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도 마냥 낙관할 수도 없는 현실 속 전제덕이 처음 하모니카를 택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를 잡아준 건 단 한 사람, 투츠 틸레망이다.
“하모니카는 기본적으로 생소리가 굉장히 날카로운 악기입니다. 작은 크기에 비해서 시끄러울 정도로 데시벨이 높죠. 미국인들은 보통 블루스에 하모니카를 활용하고 그 생소리를 자연스럽게 살려 연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가끔 듣다 보면 귀가 아프기도 하죠. 투츠 틸레망은 달라요. 하모니카를 처음 시작한 20여 년 전쯤 처음 듣자마자 느꼈어요. 아, 이 사람은 다르다. 단순한 하모니카 연주자가 아니라 소리 자체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에요. 물론 연주도 잘하지만, 잘 불고 못 불고로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예요. 소리의 이미지 메이킹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타입이라고 할까요. 60년 넘게 하모니카를 불었으니 당연히 모노며 초기 스테레오 사운드까지 쭉 들어오며 연구했을 테고, 마이크나 믹싱 방식 같은 디테일 하나 허투루 한 게 없어요. 그 모든 게 모여서 특유의 따뜻한 소리를 만드는 거예요.” 투츠 틸레망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전제덕의 얼굴은 인터뷰의 그 어떤 순간보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가 얼마나 이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아끼는지가 단번에 전해졌다. 2004년 투츠 틸레망이 내한했을 때 직접 대기실을 찾아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는 그는 “그때 사람이 너무 많아 길게 이야기를 못 나눴다. 따로 수업을 좀 받았어야 하는데…”라며 농담 섞인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가 하모니카 음악을 시작할 때 길잡이가 되어준 분이거든요. 워낙 다양한 시도를 해온 연주자라 연주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음악 구성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후기로 갈수록 따스한 소리를 내는 작품을 발표한 점도 앞으로 제가 꼭 따르고 싶은 부분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 소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줘요.”
그는 인터뷰 내내 ‘내 소리’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만이 낼 수 있는 소리, 나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향한 욕심과 자신감이 자연스레 묻어 나왔다. “세션 활동을 줄인 지 꽤 됐어요. 첫 앨범을 낸 직후엔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제 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거절할 때는 욕도 많이 먹었어요. 뜨고 나니 변한 거냐며(웃음). 특히 가요 작업을 하다 보면 악기를 너무 기능적으로 쓰다 보니 소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꾸만 생기거든요. 이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의 서운함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내야만 하는 전제덕만의 ‘소리’는 무얼까 무척 궁금 해졌다. 세션 활동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바비킴, BMK, 박주원, 정원영, 인피니트 플로우 같은 다양한 장르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꾸준히 이어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해 전제덕은 “모든 게 다 내 음악이나 음반으로 들어오면 재미있는 거고, 반대면 지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선 제가 제 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예요. 제 소리가 소중하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그렇게 자신의 소리에 대한 확신이 생긴 그가 최근 가장 신경 쓰는 존재는 다름 아닌 ‘대중’이다. 실제로 3집 <Dancing Bird>(2014)는 다른 무엇보다도 ‘대중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세운 앨범이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가요 곡들을 연주한 스페셜 앨범 <Another Story-한국사람>(2008)을 발표하기도 한 그다. “대중은 어렵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대중음악이나 재즈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이 열려야 한다. 편견이 심한 사람들은 나중에 자기 편견에 빠져버리는 수가 생긴다”며 계속해서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 아마 제가 나이를 좀 먹은 후에 음악을 시작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어쨌든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죠. 지금은 소리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어요. 전체를 봤을 때 내 소리가 각종 악기와 얼마만큼 조화되고 있는지, 내 소리를 어떤 스타일로 메이킹해서 내놓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같이 연주하는 아티스트, 관객, 대중과의 호흡 같은 것을 중시하게 된 거죠. 좀 더 어릴 때 입문해서 음악을 시작했으면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많이 달랐을 거예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지난 12월 열린 전제덕의 하모니카 콘서트 <BYE, TOOTS>는 그가 음악의 길잡이로 삼은 아티스트 투츠 틸레망을 기리는 헌정 공연이었다.

이 땅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

보다 많은 이들과의 호흡과 대중과의 접점을 고민하는 그에게 최근 음악 시장에 대해 묻자 “처참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끔 음반과 소리에 대한 욕심을 내는 것 자체가 무안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몇 년을 고생해 만든 앨범이 인터넷에 통째로 올라오고, 각종 공연 동영상이 실시간으로 업로드 되는데 음악가들 사기가 꺾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조회 수 몇 천 몇 만 같은 숫자는 해당 사이트나 홍보하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거죠. 물론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 걸 저 혼자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다들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공연은 여전히 더없이 즐거운 경험이라고 했다. “공연은 공격과 수비를 같이 하는 거고, 음반은 수비다. 뭐든 공격을 해야 재미있다”는 그는 “공연을 하다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듣고 있다가 순서를 까먹고 못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홀로 꾸미는 단독 공연을 자주 열 수 없는 공연 시장의 현실은 여전히 뼈아프지만, BMK나 바비킴 같은 대중가수와의 공연부터 오랜 파트너인 박주원 등 연주자들과 무대 위에서 악기로 한 판 싸움을 벌이는 격정적인 공연까지 새로운 공연 소식을 꾸준히 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중음악, 그 가운데서도 재즈, 또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이 ‘처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음악을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궁금해졌다.
“저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꾸 준히 뭔가를 해나갈 원동력은 필요한데 현실은 이렇고(웃음). 아마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저만의 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요. 끊임없이 좋은 음악을 찾고, 또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기본적으로 옛날부터 해온 게 변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년 즈음에는 좋아하는 팝이나 외국 음악을 하모니카로 재해석한 앨범을 하나 내볼까 싶어요. 예전에 낸 가요 버전 앨범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거든요. 이번이라고 완벽하다는 법은 없지만 한번 재미있게 해봐야죠. 그것밖에 없어요, 이젠.”문화+서울

글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사진 김창제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