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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1월호

문화기획자의 지역 생존서울을 바꾸는 예술

문화예술 활동에서 ‘지역’은 이미 중요한 키워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거시적인 관점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내 이웃과 함께 내가 사는 지역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전환을 모색하고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이 늘고 있다. 목표의 달성과 성과보다 어떻게 문제를 극복하고 삶을 지속할 지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활동이 동네의 풍경,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표정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들과 함께 그러한 변화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진실 혹은 대담 관련 이미지

사회 |
오진이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본부장
토론 |
김현승동대문옥상낙원(DRP) 공동운영자
박도빈동네형들 공동대표
유다원플러스마이너스1도씨 공동대표
황윤호9Road 공동대표
일시 |
2016. 12. 15(목) 14:00~16:00
장소 |
서울문화재단 1층 책다방

2017년 정유년은 IMF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개인적으로 2017년에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지역에서 문화활동을 하며 만들어온 사회적 자본을 본격적인 어젠다로 끌어다놓고 할 수 있는 때가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런 변화를 꿈꾸면서 2017년 첫 호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4개 단체 대표님들을 모셨습니다. 먼저 단체를 소개해주시고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죠.

유다원 저희는 원래 공공미술을 하던 사람들인데요. 5년 정도 이 지역 저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니, 국가 정책에 의해 진행되는 사업이라 끝나면 활동하던 지역에서 나와야 하는 거예요. 거기 사는 분들과 친해지면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반복되었고, 우리가 나가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 고민들을 가지고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살면 좋겠다, 삶과 일이 일치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일을 다 그만두고 동네(목2동)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카페 겸 작업실(숙영원)로 시작했고요. 집값이 싼 줄 알고 갔는데 비싼 동네더라고요. 5층 이하의 낮은 빌라촌이어서 아기자기하고 뒤에 산이 있고 가까이에 천도 있는 지역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카페 겸 작업실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공간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어요. 억지로 기획해서 만나고 싶지는 않아서 1년 동안은 카페만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자영업자로 지낸 그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해볼까 하고 축제를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동네에 훌륭한 분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이 잘 풀려온 것 같아요. 사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바꿔야 하는데 외부에서 전문가라는 분들이 와서 지역을 바꾸고 떠나는 방식의 작업에 대해 의문이 많았어요. 사는 사람들이 그 일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저희는 예술이라는 매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현승 제가 활동하는 곳은 동대문 옥상낙원 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인데요. DDP가 생길 때 대항마로 만들었지만 좀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2014년에 DDP가 생기면 동대문에 문화적인 변화가 생기고 전체적인 지형이 달라질 텐데, 예술가나 청년들이 거기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리서치가 2013년 말에 진행됐어요. 그때 박찬국 작가가 디렉터 역할을 해주면서 다양한 예술가, 청년들과 만나게 되었고요. 저도 기존에는 그림을 그리다 화이트 큐브 안에서 한계를 느끼면서 공공미술 형태의 활동을 해오다가 결합하게 되었어요. 리서치 활동을 2개월간 하면서 동대문이 갖고 있는 여전한 장벽을 느꼈지만 그 안에서 몇 가지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그중 하나가 옥상이라는 공간이었어요. 동대문은 지대가 비싸고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고 24시간 멈추지 않는 곳인 데 반해, 옥상은 주목하지 않는 공간이고 비어 있는 공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시스템의 빈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옥상이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낙원을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사실 어떤 활동을 하냐고 물어보면 저희도 정체를 모르겠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낙원의 조건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 같아요. 공간에 얽매인다기보다 어떤 공간이 하나의 매개가 되는 조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도빈 저희도 비슷한데요. 멤버들은 5~6년 전 안산 원곡동의 리트머스라는 곳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만났어요. 1년 정도 같이 수업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한 것 같아요. 각자 한곳에 적을 두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기존의 조직이나 단체, 기반 안에서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려면 동네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도 강북구로 온 데는 집값이 싼 이유가 가장 컸어요. 다 다른 곳에 살다가 이사를 왔고 2년 정도 주민을 만나면서 준비했고, 공간(동네공터)을 잡고 운영한 것은 올해 3년째인데요. 조직은 처음에 하나의 미션을 갖고 시작하잖아요. 저희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여기서 하자. 그동안 해보니 세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문화예술 교육은 기본으로 하는데 저희의 주 수입원이죠. 밖에서 돈을 벌면서 동네에서 활동하는 것이 있고 청년들을 계속 만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저희는 그림을 잘 그리거나 노래를 잘하는 재능이 없어요. 교육이건 워크숍이건 가장 못하는 사람에 맞춰서 하다 보니 좀 더 확장되는 것 같아요.
황윤호 저희는 내년이면 3년차인데요. 9road(나인로드)는 ‘하나의 삶, 여러 개의 길, 수많은 인연’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운영합니다. 특이하게 공동운영자 두 명 다 비문화계 출신이에요. 저희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전에 있던 공간에서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는데요. 그때 그 느낌이 무엇인지 계속 얘기하면서 비슷한 것은 찾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가끔 어머님들이 오히려 생판 모르는 아주머님들과 만나서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하시잖아요. 나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얘기했을 때 더 진지하게 받아준다는 그런 느낌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그래서 예술 활동으로 무언가 같이 만드는 것보다는 주로 함께 밥을 먹습니다. 같이 한다는 것을 통해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밥을 먹는 행위를 같이 해볼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지금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이 사람이 나랑 친한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 밑에 깔리게 되는 것 같아요.
황윤호 9Road 공동대표

저희가 있는 곳은 굉장히 느린 동네예요. 소심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고 네트워크도 느릿느릿하지만 밀도 있는 관계망 때문에 7년 만에 동네에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유다원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공동대표

저희는 크게 희열을 느끼거나 낙담하지 않아요. 모든 기준이 저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기존의 지역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공동체 경험이 없는 세대도 지역에 와서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겠죠.
박도빈 동네형들 공동대표

다들 소셜 다이닝을 하고 있는데, 밥의 힘이 얼마나 큰지 궁금합니다.

박도빈 가장 일상적인 행위잖아요. 똑같이 먹는 밥이지만 그 안에서도 빈부차가 커요. 동네 청년들은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거든요. 동네에 혼자 사는 청년들이랑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 있는 공간은 마을카페 안에 있어서 부엌을 운영하는 분이 있는데, 직거래로 제철 재료를 사서 조미료를 안 쓰고 음식을 해주시거든요. 길게 하는 프로그램에는 음식 때문에 오시는 분도 많아요. 모든 행사의 가장 큰 성공 요소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제는 중국집을 하나 빌려서 워크숍을 했는데, 50명이 와 비좁아서 움직일 수도 없고 시간 관리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다들 만족하고 돌아갔어요. 그런 공간에서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훨씬 더 일상적일 수 있고 그냥 회의실에서 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죠.
황윤호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밥을 먹는 행위를 같이 해볼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약간 홀리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지금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이 사람이 나랑 친한 사람이다’가 밑에 깔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이 콘텐츠 자체가 특출하지 않기 때문에 식사에 대한 만족감을 키우기 위해 모임에 항상 밥을 끼워 넣어요.
유다원 저희는 인문학 강의가 끝나면 무조건 다 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원래 처음에는 쓸데없는 겉치레 이야기를 하잖아요. 술을 마시면 속에 있는 이야기도 하고 지역에 대한 고민도 나와요. 그러면서 엄청 친해졌고 술자리를 통해 일이 많이 생겼어요. 네트워킹이 왜 중요하냐면 저희는 사실 굉장히 느린 동네예요. 단 한 명도 진취적인 사람이 없어서 이것이 확대되거나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요. 소심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고, 네트워크도 느릿느릿하지만 밀도 있는 관계망 때문에 7년 만에 동네에서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공동주택도 만들고 마을기금도 모으고 축제도 8,000명이 오는 규모이고요. 느린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여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느림에 대해서 행정적인 부분에서 여유 있게 봐주면 그게 오히려 나중에 힘이 되지 않을까요.
오진이 중요한 얘깁니다. 공공기관 등 기금을 지원하는 곳에서는 성과가 빨리빨리 나오기를 기대하는데요. 오히려 7년의 긴 걸음 끝에 공동주택을 만들고, 기금을 모을 수 있는 걸 보면 지역 생존에서든 문화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긴 호흡이 절실하고, 그것의 바탕엔 같이 밥을 먹는 시간과 경험의 공유가 중요해 보입니다.
김현승 저는 개인적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음식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더 나아가서 같이 요리를 해먹고 필요한 재료를 재배하는 과정을 같이 하다 보니, 단순하게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서울혁신파크에서 ‘전봇대집’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콘셉트 중 하나가 ‘키친팜’이에요. 식당이 있고 주변에 작물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만나서 같이 재배하고 요리하고 나눠 먹고 하는 과정이 우리가 관계를 맺어가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억지로 식사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심사에 따라 모이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조건이 발생하게 되고요. 보통 겉으로 드러나는 완성된 부분에만 관심을 갖는데, 그 과정을 같이 하면 좀 더 친한 친구가 된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에서 음식을 같이 먹는 것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진실 혹은 대담 관련 이미지동대문 신발도매상가 B동에 자리한 동대문옥상낙원(DRP).

재단 대표께서 최근 ‘예술가나 청년, 기획자의 겉에서 돌지 말고 곁으로 가라’는 말씀을 하신 바 있는데요. 보통 동네에 같이 살아도 잘 모르는데, 여러분이 서로 간에 디테일하게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희망을 느꼈다거나 혹은 반대로 절망을 느꼈을 때를 공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다원 동네로 들어오기 전에 큰 고민 중 하나가 개인의 일상이 없어지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위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질문하게 되었어요. 지역에 돌아와서는 첫 번째 모토부터 ‘우리가 행복한 일을 하자’였어요. 동네에서의 활동은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드웨어를 바꾸는 작업은 줄어들었지만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뀐 거 같지는 않아요.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저희가 행복해지는 일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활동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까 질문하게 되잖아요. 이렇게 살다 보면 다 없어 질 거 같은 거예요. 1년 사이에 전세가 1억 원 정도 올라 주거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지역에서 같이 활동하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도 늘어났는데요.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려다 보니 마을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일거리도 해결해갔어요. 그것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활동비가 생겼어요. 주거 문제는 돈이 없으니까 공부라도 한번 해볼까 해서 시작했는데 7가구가 모여서 집이 된 거예요. 누군가를 위한 일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었어요. 새로 지은 것은 아니고 마치 운명처럼 좋은 집이 있었어요. 작년에 시작해서 올해 1년 만에 입주했어요. 꿈 같은 일이 동네에서 항상 일어나요.
오진이 단체들이 꿈꾸는 시민 자산화를 이미 이루셨습니다. 전혀 느리지 않은 것 같은데요(웃음).
유다원 원래는 엄청 느린데 작년에 속도가 한번 붙은 거예요. 공간을 어떻게 지속할지 고민하면서 알아보다가 작년에 공공 공간 하나를 받았어요. 용왕산에 있는데 2017년에 들어가려고 리모델링 중이에요. 만약 우리만 있었으면 안 되었을 거예요. 지역에 여러 분이 있고 같이 이야기해서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오진이 보통 지역의 자원인 분들은 숨어 있는데, 카페를 하면 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인가요?유다원 저희 공간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이 오셨어요. 1년 동안은 ‘아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듣고만 있었어요.
박도빈 같은 고민이지만 다른 과정인 것 같은데요. 저희도 각자의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었어요. 지역 활동을 이렇게 해야하고, 모든 주민을 만나야 한다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고요. 저희는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매일 보는데 같이 살기까지 하면 새로운 것이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아서요. 저희는 그래서 1월에는 일을 안 해요. 그런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처음 청년들이 들어오면 누구든 응원해주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립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지역의 자원을 건드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경쟁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여기에서 돈을 벌려고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번 돈으로 동네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정치적인 상황 안에서 정치적이지 않기 위해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크게 희열을 느끼거나 낙담하거나 하지 않아요. 왜냐면 모든 기준이 저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기존의 지역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공동체 경험이 없는 2030세대들도 들어와서 지역에서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황윤호 저희는 아직 지역적으로 깊게 뿌리내린 것은 없어요. 예로 들 것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방향을 트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희 공간에 오신 분 중 한 분이 35세였는데요.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은퇴 준비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고 하시더니 저희 집에 오신 지 1년 반 만에 고깃집을 차렸어요. 마음 맞는 분을 저희 공간에서 만난 거예요. 지금도 내가 고깃집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저희가 그렇게 만들어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실 때 너무 기분이 좋은 거죠. 다른 한 분은 아기 아빠인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꿨어요. 괜찮을까 했는데 지금 제주도로 내려가셨거든요. 저희 공간에서 경험한 것을 제주에서 나누고 싶어 하셔서 그런 것이 조금씩 퍼져나간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진실 혹은 대담 관련 이미지동네형들이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술 철가방’.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계시네요. 평소에 공공기관과 일하거나 활동 하면서 느낀 한계는 무엇일까요? 과연 공공기관이 여러분의 좋은 파트너가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도빈 재단에서 파트너로 여겨지는 현장의 공간이나 단체가 있어요?
오진이 ‘복작복작 예술로’같은 경우 담당자와 교감이 잘되는 예술단체가 있더라고요. ‘서울댄스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많은 안무가와 오늘 오신 DRP 또한 좋은 파트너입니다. 재단 담당자와 사업을 만드는 분들 간에 사업 목적에 공감하고 서로 뜻이 잘 맞으면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는데, 서로 숙제처럼 영혼 없이 하게 되면 일회적으로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황윤호 활동하는 분들은 트렌드를 좇아가지 않는데 공공기관 분들은 트렌드를 좇아가는 것 같아요. 플러스마이너스1도씨가 지역문화 때문에 가서 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공공기관들은 지역문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거든요. 지역 문화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와서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건데 거기에 맞춰주어야 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죠.
오진이 대부분 사업 계획에 정책 트렌드를 반영하고 성과 목표가 설정되다 보니, 지역에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해마다 트렌드에 따라 변할 필요는 없는데 보여주기식의 성과 중심인 현실에서는 정책 소모율이 지나치게 높은 편입니다.
김현승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실패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성과지표가 굉장히 딱딱한 구조로 되어 있잖아요. 양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이야기가 오간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중간 조직은 재원이 나오는 쪽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데요. 성과를 같이 내자는 것보다는 같이 고민하자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지원 조직에서는 관계의 상하구조가 발생하잖아요. 이런 것들을 해소하는게 중요해요.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얘기하는 부분이 필요하고요. 프로젝트 기간 안에 성과가 나오는 것보다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실패가 있었고 그다음 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의 성과처럼 해석되어야 합니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성과지표가 굉장히 딱딱한 구조로 되어 있잖아요. 양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김현승 동대문옥상낙원(DRP) 공동운영자

재단도 이제 14년차인데 더 이상 비대해지지 말고 우리가 파트너로 하고 있는지 그냥 형식적으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으로 여겨집니다.
오진이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본부장

공공기관과 지역 문화단체가 파트너가 되느냐 아니냐는 서로 과정을 공유했느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것 같네요. 새해 첫 호인 만큼 계획에 대해 한말씀 들어볼까요.


유다원 2017년에는 다시 작아지고 싶어요. 작년과 올해 너무 많이 팽창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우리가 없어지는 상황이 왔어요. 마을축제를 가보면 작은 축제일수록 더 감동스럽더라고요. 우리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도 제일 작은 축제였어요. 그래서 다시 작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끼리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을에 여러 작은 끼리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동네에도 끼리 문화가 이제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무척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산에 올라가 지내게 될 테니 좀 더 산에 파묻혀서 작업하고요. 교육 프로그램은 10회, 20회로 하고 몇 명 이상 모집하라고 되어 있잖아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아이들 불러서 놀고, 일상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오진이 작아져야 한다는 것은 저한테도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재단도 이제 14년 차거든요. 더 이상은 비대해지지 말고 예술가 또는 시민과 우리가 파트너의 관계인지, 형식적인 관계인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으로 여겨집니다
김현승 저희는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기보다는 어떤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이 연쇄작용처럼 계속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편이에요. 2016년의 활동을 고민해보면서 2017년의 활동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주체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가끔 불가피하게 일이 계속 연결되기도 해요. 그런 것들에 대한 힘 조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좀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최근 ‘2016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아서 쿠바에 답사를 가게 되었어요. 가서 멤버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어보려고 해요. 한 번쯤 활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어떻게 활동할지 길게 얘기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도빈 매년 똑같은데, 2017년에도 버티는 거예요. 포럼 같은데 나오면 잘한 거만 얘기하는데 막상 공간으로 돌아가면 풀리지 않는 내부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것 같아서 그 갭을 줄이는 것이 제일 큰 목표예요. 운영을 위해 운영하고, 망하지않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문 닫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고요. 이외에 구체적인 계획은 1월에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황윤호 저희도 다시 공간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1년차에 다져놓아서 약간 높아진 담을 2년차에 터보았더니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딱 몇 가지만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좀 더 나아가려면 다시 한 번 다지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숨 고르기를 위한 해네요. 지역에서 체인지 메이커로서 활동하고 있어서 큰 역할의 고민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다운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 제일 중요한 지점으로 다가옵니다. 이 책을 보시는 분들도 다른 지역에 앞서 ‘나’라는 지역부터 제대로 살필 수 있었으면 합니다.문화+서울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최영진
자료 사진 각 단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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