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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류연웅 작 경찰의 고깃집
* <10분 희곡 릴레이>는 젊은 작가 혹은 지망생들의 재기발랄한 10분 단막극입니다.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人에 가시면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webzine.e-stc.or.kr)
등장인물
경찰, 박사, 후배경찰, 정윤, 취객, 복면
무대
오른편에 테이블, 그리고 의자 두 개.

불이 켜지면 의자에 경찰과 박사가 앉아 있다.

경찰
학생 흡연율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낮출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박사
경찰서에서 담배를 팔면 됩니다.
경찰
학생 음주율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건 또 어떻게 낮춰야 할까요?
박사
경찰서에서 술을 팔면 됩니다.
경찰
잠깐! 그러면 고깃집의 술은 어떻게 하란 소리지? 담배는 몰라도 술을 파는 곳은 편의점 말고도 굉장히 많은데?
박사
경찰서에서 고기도 팔면 되죠. 돼지고기를 경찰서에서 파는 겁니다. 동시에 술도 팔고. 그러면 애들이 절대 술을 못 뚫겠죠.
경찰
(객석을 바라보며) 그래서 경찰서를 고깃집으로 위장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죠.

경찰과 박사, 일어난다. 웃으면서 앞치마를 두른다.
문이 열리고 후배 경찰과 정윤이 들어온다.

경찰,박사
어서오세요!
후배경찰
선배님! 이 중딩 꼬맹이가 겁도 없이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길래 잡아왔습니다!
박사
그러면 이제 이놈을 어떻게 하면 되지?
후배경찰
교육법상으로는 우선 해당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를 한 후에 보호관찰소로 넘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찰
좋아! 이 녀석 부모에게 어서 전화를 걸자고! 하하!

문이 열리고 취객이 들어온다.

경찰, 후배경찰, 박사
어서오세요!
취객
삼겹살 1인분이랑 소주 2병만 주세요.
경찰
네. (후배경찰을 쳐다본다)
후배경찰
제가 가요?
경찰
그럼 내가 가냐? 네가 후밴데?
후배경찰
빌어먹을 계급사회.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경찰
자, 우리는 하던 일을 마저 합시다. 야, 엄마 번호 말해.
박사
잠깐!
경찰
엉?
박사
이보게 경찰. 우리가 마침 학생들의 일탈행위, 즉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서 고깃집을 차린 거 아닌가. 이 녀석을 취조하면서 그 해결 방안을 더 구체적으로 찾아보자고!
경찰
예리하군요. 역시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들었지, 이 골초 꼬맹아. 그러면 일단 음, 뭐 먼저 물어보는 게 좋을까. 그래. 일단 너 몇 살이야.
정윤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경찰
닥쳐. 묵비권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 박 경찰! 이 녀석 지갑 취조해.
후배경찰
(무대 뒤에서 불판을 들고 등장한다) 고기 좀 나르고요.
경찰
인정한다. 언제나 손님이 왕이야.

후배경찰, 취객의 식탁에 고기와 소주를 세팅한 다음 자리로 돌아온다.

경찰
(정윤에게 삿대질하며) 이봐, 어떻게 하면 너 같은 놈들이 줄어들…, 아니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몰라요 한 대, 이상한 말 두 대, 대드는 말 석 대, 묵비권 넉 대. 자 시간은 딱 10초 주겠다. 10, 8, 6, 4….
취객
여기 소주 한 병 더 줘.
경찰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취객
(소주병을 던지며) 지금 당장 소주 가져오라고!

취객이 흐느끼며 소주병을 던진다. 모두 멀뚱히 그를 쳐다본다.

경찰
어쨌거나….
정윤
지금 고기 시킬게요.
경찰
응?
정윤
고기 1인분만 가져다 주세요. 아까 손님이 왕이라면서요. 지금은 배가 고프니까 고기를 먹고 대답하든지 말든지 할게요.
박사
너 응용력이 참 대단하구나? 사회탐구 만점이니?
취객
에라이 시발, 개 같은 세상!
경찰
이봐요 아저씨. 조용히 좀 합시다. 세상 혼자 사시우?
취객
뭐, 시발 놈들아. 니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경찰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고기 가져다 줬잖아 새끼야!
취객
뭐라고? 새끼? 너 방금 나한테 욕했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들었어. 너, 기다려, 두고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고깃집에 전화벨이 울린다. 경찰이 받는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기, 무슨 정의로운 고깃집인가로, 빨리 와주세요.
경찰
(남자 앞에 서서) 안녕하세요?
남자
오, 벌써 왔네. 역시 대한민국 경찰 좋아.
경찰
이 자식 묶어.
후배경찰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선배님, 이분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손님인데요? 손님을 괴롭히면 영업법상 3개월 영업정지를 당하거나 1000만 원의 벌금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경찰
이건 경찰 신분으로 하는 일이잖아!
후배경찰
저는 지금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데요?
취객
이런 개 같은 새끼들. 경찰들도 다 썩었어.
경찰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가 이빨이냐? 어? 고기 잘 먹고 술 잘 먹고 난동을 부리고 있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박 경찰! 이 새끼 어서 묶으라니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경찰
아 이 씨바 또 누구야. 영업 끝났어요!
복면
(총을 들고 등장하며) 영업은 다시 시작됐다.

경찰, 박사, 정윤, 후배경찰, 깜짝 놀라서 손을 들고 벽에 붙는다.
취객은 소주를 마신다.

박사
에이씨, 그냥 평범하게 살걸. 오픈 첫날부터 이게 뭐야.
경찰
선생님, 여긴 은행이 아니에요. 번지수 잘못 찾으신 거 같은데 못 본 척해줄 테니까 그냥 가세요.
복면
이거도 물총이 아니다. 죽기 싫으면 고기 담아라.
후배경찰
고기를 담으라고요?
박사
왜요?
복면
돈을 훔치는 건 나쁜 짓이니까 하지 않는다.
경찰
새로 오픈한 고깃집 거덜내러 온 거면서 정의로운 척하지 마요.
복면
(사이)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 고기나 써는 놈들이지만 최소한의 교양은 있을 거라 믿는다. 페리 로시라는 작가가 쓴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라는 소설이 있다. 집에 가서 읽어보라. 결국 삶을 쓸모없는 것들로부터 지탱받는다고, 나는 해석했지. 돈이나 고기, 명예, 전부 쓸모없는….
정윤
그러니까 결국엔 고기 담으라는 거 아니에요? 뭘 그렇게 돌려 말해요.
복면
한때는 쓸모 있는 모든 것을 탐닉했다.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 하지만 산다는 게 녹록지만은 않더라.
복면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너무도 한심하다. 하지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현실은 흉해도 인간은 아 름다운 거다.
경찰
아 씨바 그래서 담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복면, 천장에 총을 발사한다. 경찰, 박사, 후배경찰, 정윤.
열심히 고기를 담는다. 복면은 팔짱을 끼고 묵묵히 바라본다.

취객
술 더 가져와… 술… 개 같은 세상…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경찰
이봐요 아저씨, 조용히 좀 합시다.
박사
지금 고기 다 털리는 거 안 보이시오? 기분 안 좋거든요?
취객
으으… 싹 다 가져가는 세상… 더러운 세상….
정윤
아, 진짜. 조용히 좀 해요! 아저씨가 담을래요?
남자
내 얘기 좀 들어봐…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나 어제도 우울했는데….
복면
항정살은 안 담아도 돼.
후배경찰
고맙습니다!
경찰
미친놈아. 고맙냐?
남자
내 얘기를 들어줘! (소리 지르면서 굽고 있던 고기를 강도의 얼굴에 던진다)
강도
으악!

멍하니 서 있는 경찰, 박사, 후배경찰, 정윤.

경찰
이때다!

경찰, 박사, 후배경찰, 정윤.
“에잇!”을 연발하며 쓰러진 복면을 밟는다.
복면이 꿈틀거리자 다시 “에잇!”을 연발하면서 밟는다.

후배경찰
기… 기절했는데 어떻게 하죠?
경찰
몰… 몰라 일단 문제가 일어났으면 숨겨야지. 다들 그렇게 하니까.
정윤
저 집에 가도 돼요?

경찰들, 정윤의 말을 무시하고 자루에 복면을 담기 시작.
그때 박사가 취객에게 가서 손을 내민다.

박사
당신이 우리를 구했소.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오.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흡연, 음주율을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소. 생각해보면 이건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소. 사는 게 너무 힘들어지고 있는 듯하군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알고 계신가요? 남자 (긴 침묵 후에) 그럼 일단 내 얘기를 들어주시오.문화+서울
작가소개
<경찰의 고깃집>을 쓴 류연웅 작가는 극한의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중산층이 무너지던 어두운 시대에 태어난 ‘IMF둥이’다. 아침이면 풀 냄새 나는 인천의 가정동에서 자랐으며, 일곱 살 때부터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인생을 바꾼 노래는 에픽하이의 ‘I remember’. 그리하여 인간의 심오함과 세상의 이치만큼이나 라임의 법칙과 국어의 창조적 파괴 또한 중요한 현대를 살고 있다.
2013년 국립극단 예술가 창작벨트에 뮤지컬 <북치기 박치기>가 당선되면서 극작을 시작했으며, 전교 1등부터 5등까지에게만 점심시간마다 팝콘을 튀겨주는 교장에게 분노한 학생들이 팝콘 기계를 사서 파이프를 연결하고 팝콘 총알로 세계를 정복하는 소설 <팝콘 전쟁>으로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을 수상했다. 글쓰기란, ‘잘 살자’는 얘기를 재밌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류연웅 작가는 독자와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소설과 희곡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 10분 희곡 릴레이 역사상 최초로 10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게 돼 영광이다. 문천(文天) 류연웅 작가가 보여줄 22세기적 ‘문장’ 에 다들 동참하시라!
소개글 정진세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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