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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12년 만에 개인전 연 미술가 김정헌 그림, 조용히 내뱉은
‘지금, 여기, 우리’의 기록
김정헌 작가는 1980년대 오윤, 임옥상 등과 함께 현실 참여적 작품을 선보인 민중미술 1세대 작가다. 직설적이기보다 위트와 여백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문화운동과 환경운동, 예술행정 등 틀에 갇히지 않고 ‘잡다하게’ 활동해온 그의 궤적과도 통한다. 그가 12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장소는 종로구에 위치한 대안공간. 한 발짝 떨어져서 한 템포 늦게, 캔버스에 조곤조곤 기록해온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그는 청소년, 대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관객에게 풀어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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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아와 여는 12년 만의 개인전

그때 그는 창밖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월간 일정표에는 표시된 일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에게 보고를 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를 만나는 사람은 보고되었다. 그에게 하라는 일은 없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록되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되고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또한 기록했다.
그는 도심 한복판에 ‘위리안치’되어 있었다. 법원 판결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위원장으로 복귀했지만 직원들은 아무도 그를 위원장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딘가로 보고되고 있었다. 2010년 김정헌 당시 위원장을 찾아갔을 때의 풍경이다. ‘문화 유배자’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문체부 산하단체 기관장들을 자기 사람으로 앉힐 때 민중미술협의회 출신인 그는 첫 번째 교체 대상이었다. 해임된 후 법원에 해임처분효력정지 신청을 하고 복직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지위는 있되 업무 권한은 없는 위원장’으로 별관에 ‘수용’ 되었다. 대신 그는 예술위의 잘못된 예술 행정에 대해 사과했다. 나중에 그는 이것을 ‘행정 미술’이라고 불렀다.
1980년 오윤?임옥상 등과 함께 현실 참여 작가들의 동인인 ‘현실과 발언’을 만든 김 전 위원장은 한국 민중미술의 1세대 작가다. 작품에 여백과 위트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과 결이 좀 다르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3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그림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가 12년 만에 여는 개인전 <생각의 그림?그림의 생각: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그냥 명작전>(2016. 3. 17~4. 24, 서울 종로구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1970~80년대 대표작들과 최신작 30여 점이 이번에 전시 되었다.

한발 떨어져서 ‘그림으로 그린 사회사’

김 전 위원장은 흔히 홍성담 작가와 비교된다. 광주비엔날레에서 철거돼 이슈가 된 <세월오월>을 그린 홍 작가가 좀 더 직접적으로 현실을 고발하고 발언한다면, 그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되 한발 떨어져서 보고 한 템포 늦춰서 발언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런 관조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무책임한 위정자를 빗댄 <‘아몰랑’ 구름이 떠 있는 수상한 옥상>이나 세월호 참사를 검은 바다 위에 밝은 창이 잠겨 있는 형태로 그린 <희망도 슬프다>를 보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 내세우지 않고 천천히 유추하도록 하는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이번 전시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림으로 그린 사회사’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970년대 도시빈민 문제부터 1980년대 독재의 문제 그리고 1990년대 소비물신주의에 대해서 그림을 통해 끝없이 발언했던 그는 여전히 이슈의 현장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부터 한인 징용자들에 대한 고려 없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하시마 섬(군함도) 문제, 그리고 최근 횡행하는 ‘꼰대’ 남성들의 ‘여혐 현상’까지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그렸다.
또 하나 인상적인 모습은 전성기의 그림에 다시 덧칠을 한 점이다. 그것도 아주 장난스럽게 했다. 잘 팔릴 것 같은, 뭔가 대단해 보이는 작품에 마치 낙서를 하듯 덧칠했다. 중년의 김정헌에게 노년의 김정헌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장난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전시회 이름에 ‘명작전’을 내건 것도 그런 장난기의 연장으로 보였다. 그림으로 세상을 희화화한 그의 마지막 희화화 대상은 바로 그런 그림을 그리는 자기 자신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를 만나 그의 그림과 그의 인생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전시회에 대한 주변의 평은 어떤가요?

최진욱 작가가 내 전시를 보고 가서 실망했다는 글을 블로그에 썼다고 누가 나에게 고자질을 했다. 기대한 것이 안 나타났다는 것이다. 맥락이 단절되어 있다고, 지속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표현 방식이 작품마다 다른데 그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때 가장 표현하기 좋은 방식을 찾아서 썼다. ‘시대적 과제물’에 가장 적당한 말을 찾았다. 잡다한 생각을 표현할 잡다한 방법을 구한 것이다.

대가로 인정받는 작가들은 보통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작가의 패턴을 이해하면서 그 작가를 이해하기도 합니다.

일관성과 패턴에 대한 집착이 우리나라 미술에서 특히 심하다. 모노크롬(단색화) 추상화 계통에서 자기복제가 만연하다. 점 하나냐 두 개냐로 유형을 구분하기도 하고. 나는 그런 것에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렇게 자기 라벨을 만드는 것이 작품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까 싶다. 그것은 세상과 단절된 태도다. 혼자만의 밀실에서 자기만족을 위해 표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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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고정된 틀에 갇히는 걸 경계한 것 같습니다.

클리셰를 피하고 싶었다. 대가라는 사람들이 진부한 표현 방식을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방식이 못마땅했다. 모노크롬 작품들이 옥션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가격에 팔리고, 그 그림을 찾아 사람들이 또 킁킁거리고 다니는 것이 싫었다. 어떤 면에서는 작품 가치가 인정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런 장난을 친 것일 수도 있다. 12년 만에 하는 전시라 부산을 좀 떨었다. 옛날 작품을 죄다 끄집어내서 다시 보았다. 그릴 때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달라진 것에는 덧칠을 하며 바뀐 생각을 그려넣었다.

잡다한 시대를 담다 보니 잡다한 표현 방식을 쓰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활동도 ‘잡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대학에서 미술 교육도 하고 시민단체에서 문화운동, 환경운동도 했고 제도권에서 예술 행정을 하고 마을 만들기도 했다(김정헌 작가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도 역임했다). 한 가지만 계속한 삶이 존경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처럼 잡다하게 산 사람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12년 만의 개인전인데 대안공간에서 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젊은 사람들 공간에 전시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나에게 젊은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하자센터 학생들이나 성공회대 대학생들이 왔을 때 그림 설명을 해줬는데 무척 재미있어했다. 작가에게는 젊은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뭔가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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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화예술인이 전시회를 보고 갔습니다. 전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던가요?

신경림 시인이 ‘왜 이렇게 말이 많고 중얼거리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림은 단순한데 글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림이 단순하다고 해서 담긴 생각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다. 그림이 그려지기까지 복잡한 형상화 과정이 있다. 관객들이 그림을 볼 때 그런 과정을 유추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씨를 넣었다.
내 그림의 글씨는 그림의 내용을 풀어주는 기능을 한다. 그림의 완성은 관객들 몫인 것인데, 조금이나마 힌트를 주고 싶었다.

선생님 그림에는 왜 늘 글씨가 들어갑니까?

화가에게 그림이란 세상을 향한 끝없는 지껄임이다. 나는 말을 못 참는다.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줄거리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서사적 인격’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한 인간의 삶이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다. 문학적 표현을 시각적 예술과 융합하는 깊이 있는 표현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싶은데, 생각을 앞세우면서도 표현력은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은근한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박찬경이 그러더라. 글씨가 없었으면 참 좋은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맞받아쳤다. 글씨 때문에 그림이 좋아지는 거라고. ‘쓸데없는 친절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글이 그림과 관객 사이에 소통 역할을 한다고 본다. 나에게는 잡스러움이 필연이다. 앉아 있으면 버릇처럼 끄적거리게 된다. 붓이나 연필에 손이 가서 뭘 그리거나 뭘 쓰게 된다.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과는 다르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1980년대 초 소그룹 활동을 할 때 주변 작가들 그림은 ‘토해내기’였다. 억압된 상태에서 그림을 통해서 분출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 싫었다. 자기 자신을 속시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나는 빠져나갈 구멍을 둔다. 멀어지지도 않고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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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이 이슈의 현장을 오래 지키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은근히 끈질긴 면이 있는 것 같다. ‘쇠심줄 같은 형님’이라는 후배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절되기도, 포기하기도, 건너뛰기도, 요령을 피우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뚜벅뚜벅 한길을 걸어왔다. 최소한 일관성은 있는 것 같다.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난 뒤로는 한동안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을은 최소 단위의 사회다. 마을이 살아야 더 큰 덩어리인 사회가 산다. 여기가 주저앉으면 사회 전체가 무너진다. 제천의 폐교를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를 시도했다. 4년 동안 했는데 결국 포기했다. 거리가 멀어서 힘들기도 해서 결국 문을 닫았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웃더라. 나도 헛웃음이 나왔다. 모든 걸 걸고 해야 했는데 아마추어 수준으로 덤볐던 것 같다. 그래도 부끄럽지는 않다. 시도해보길 잘했다.

미술계 원로로서 지금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예술가에 대한 지원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날 때도 그 부분을 늘 강조한다. 청년수당처럼 예술가들을 별도로 지원할 방법이 없을지 모색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그들을 위해 어떤 기회를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문화+서울

글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사진 김창제
작품 사진 제공 아트 스페이스 풀(www.altpoo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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