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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누구든 만나고 어디로든 통하는 '열린 미로'
5월, 중간고사를 끝낸 대학 캠퍼스는 축제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시험기간에 도서관의 불빛이 늦게까지 유난히 밝았다면 이맘때쯤 가장 불 밝고 시끌벅적한 곳은 학생회관이다. 동아리방과 휴게시설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은 대학교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2011년 새롭게 준공된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은 이동과 만남이 잦고 누구든 편안하게 오가는 학생회관의 특성을 살리고 경사가 심한 지형적 특성을 극복해 학생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많은 출입구와 계단 등 연결 통로로 각 층과 공간이 이어진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의 내부.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2, 3 정문에서 학생회관의 입구(사진2)를 바라보면 2층짜리 건물로 보이지만 뒤편 운동장쪽 (사진3)과의 단차가 12m나 돼 독특한 구조와 특유의 경사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급격한 단차와 빈번한 ‘만남’의 의미를 살린 공간

숭실대학교 학생회관은 참 묘하다. 캠퍼스 정문에서 보면 고작해야 2층짜리 건물로 보이지만, 정문 쪽 입구로 들어서면 이미 4층이다. 뒤쪽 운동장 쪽으로 3개 층이나 더 내려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대부분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앞쪽에 운동장을 두고 경사지를 깎아 관중석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숭실대의 경우 캠퍼스 입구 쪽이 높아 운동장이 뒤쪽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캠퍼스 입구 쪽과 운동장은 무려 12m 이상 단차가 생기는데, 학생회관은 절묘하게 그 사이에 자리 잡아, 학생들의 휴식 공간뿐 아니라 운동 경기를 바라볼 수 있는 관중석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쪽 입구가 4층이라면 저쪽 입구는 5층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반대쪽으로 걸으면 어느새 3층에 서 있게 된다. 별도의 계단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중정을 끼고 돌면 널찍한 카페테리아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잠시 머물러 있을라치면 카페테리아의 기울어진 천장은 나를 다시 한쪽으로 밀어내고, 경사로를 타고 내려가면 교직원 식당과 카페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도 잠시 밖에서 비추는 환한 빛은 또 다른 공간으로 이끌려, 어느새 시원하게 운동장이 보이는 야외 테라스에 도착하게 된다. 나무 데크가 깔려 있는 이곳엔 잠시 휴식을 찾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고, 다시 뒤쪽 교육관과 벤처중소기업센터로 길이 이어진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이번에는 교직원 식당?카페를 왼쪽에 끼고 돌아가면, 갑자기 거대한 옹벽이 고대의 성곽처럼 버티고서 있는 골짜기같이 깊은 중정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기존 캠퍼스와 운동장의 단차가 얼마나 심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렇게 건물이 경사지에 박혀 있지 않고 살짝 물러서 있는 것은 내부에 빛을 들이기 위함인데, 일일이 긁어내 만들어진 거친 표면은 위쪽에서 쏟아지는 햇볕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또한 덩굴 식물들이 감아 올라간 수많은 줄은 지나가는 바람에 거대한 하프처럼 묘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누군가 줄 사이사이 걸어놓은 빨래들은 심지어 깃발을 연상시키기조차 한다.
다시 건물로 들어와 왼쪽 입구로 들어가면 어느새 동아리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긴 공간이 나온다. 위쪽으로 갈수록 투명해지는 유리벽을 통해 빛이 가득한 동아리 방 내부가 어렴풋이 보인다. 물론 아예 볼 수 없게 신문지로 유리벽을 모두 가린 방도 있지만, 반투명한 유리벽은 가운데 복도를 빛으로 가득 채우고, 학생들은 동아리방에 들어가고 나가면서 끊임없이 서로 만나고 또 이야기하게 된다.

어쩌면 강의실에서보다 많은 꿈을 꾸는 곳

건물을 빠져나와 운동장 끝에 서서 건물을 사진에 담아보려 하지만 만만치 않다. 건물이 주변 건물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숭실대 학생회관의 건축가 최문규는 인사동 쌈지길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쌈지길의 경사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는 느낌인 것처럼, 숭실대 학생회관도 하나의 건물이기보다는 캠퍼스를 연결하는 골목길에 가깝다.
다시 건물로 들어와 위층의 또 다른 동아리 방들을 지나치면, 오른쪽의 거대한 옹벽을 넘어가는 다리들이 또 다른 입구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곳곳에 테라스가 있고, 곳곳에 입구가 있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나가고 들어가며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진다.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은 없고,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의 만남만 있다. 입구도 많고, 사람도 많고, 어떻게 보면 참 관리하기 어려운 건물이다.
캠퍼스에는 관리하기 편한 건물이 몇 개 있다. 보통 교수 연구실이 있는 건물이거나 본부 건물일 확률이 높다. 솔직히 학창시절에 교수 연구실이나 본부 건물을 찾아간 기억이 없다. 건물의 형태도 종종 권위적이었지만, 공간의 기능도 명쾌해서 특별히 용무가 있지 않는 한 갈 필요가 없는 공간이었다. 또한 강의실에서 배운 것도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심지어 그 수업을 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오래된 교과서를 보고서야 알고 쓴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오히려 지금도 기억에 남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선후배와 같이 어울리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고, 학생회관도 그런 공간 중 하나였다. 특별히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열린 공간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나만의 꿈을 키워갈 수 있다. 누군가 정해주지 않는 그런 꿈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The Logic of Sense, 1990)>에서, 진정한 의미의 생성은 다양한 관계가 끊임없이 만나는 ‘사건의 평면’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떤 초월적인 권위를 강요하지 않고, 특정한 프로그램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사 람들의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곳에서 진정한 대학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문화+서울

글 조한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한디자인(HAHN Design) 대표로 건축·철학·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공간’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건축가 조한의 서울탐구> (돌베개, 2013)가 있다.
사진 제공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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