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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책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와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온전히 나의 속도로 삶을 사는 법
올해의 마지막 달이 왔다. 한 해를 마감하고 앞으로의 한 해를 살아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달이다. 그렇지만 보통은 연말 결산 업무를 하고 각종 송년회에 참석하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다가올 해를 맞이하게 된다. 정신없이 바쁜 현대인의 속도는 연말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도시의 속도보다 조금 천천히 걸어가는 삶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현대인의 속도가 아니라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내는 삶, 그 속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여유를 누리고 싶어서다. 저자가 자신의 속도로 온전히 살아내는 시간을 담은 두 권의 책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를 통해 우리 삶의 속도와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느림의 미학’으로 한옥을 짓다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황우섭 사진, 이현화 지음, 혜화1117

저자는 베테랑 편집자였다. 책을 만드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10년 후’에도 책을 만들 수 있을지, 책 만드는 걸 좋아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그는 책을 중심에 둔 또 다른 업종, 서점을 떠올린다. 임대료를 낼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그는 집의 일부를 서점으로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그는 10년 후 서점을 하며 살 집을 알아보러 전국의 오래된 골목들을 누빈다. 원하는 집과 가진 돈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비로소 서울 혜화동에서 1936년에 지어진 한옥을 만난다.
저자는 오래된 한옥을 부수고 다시 짓는다. 기둥과 들보 등을 제외하면 집의 모든 것이 해체됐다가 다시 조합됐다. 가급적 집에 있던 것들은 집에 두고 새로운 ‘쓸모’를 찾겠다는 그의 생각에 따라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을 고르기 위해 옛 기와는 바닥으로 내려진다. 옛날에 만들어진,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구름 문양의 유리는 창이 아닌 다른 곳에 예쁘게 자리 잡는다. 그 과정은 지난했고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한계에 전전긍긍하기도 여러 날이었다.
그렇게 한옥을 부수고 짓는 과정은 블로그로 독자들을 만났고 도시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느림의 미학이 호평을 받아 책으로 탄생하기까지 이른다.
한옥이 새 꼴을 갖추는 동안, 저자 역시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집을 만나는 순간, 저자는 “이 집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는 집 주소를 이름으로 해 출판사를 등록한다. 그가 1인 출판사를 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이 집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집들보다 창을 많이 내 좁지만 넓은 집, 무엇을 하다가도 대청에 ‘철퍼덕’ 주저앉아 마당을 바라보면 기와에 깃든 하늘로 인해 행복해지는 집에서 그는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한옥의 그것과도 같은 여백의 미다. 편집자로 황우섭 사진작가와 인연이 있던 그는 한옥을 수선하는 과정을 황 작가의 사진으로 기록한다. 수많은 사진과 글은 저자이기 이전에 편집자였던 그의 여문 손끝에서 제자리를 찾아 사진과 글, 여백이 속삭이는 책으로 탄생했다.

느긋한 시간 속에 만난 ‘이웃이라는 우주’<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김효경 지음, 남해의봄날

우울증을 앓던 저자는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알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전세를 살기 위해 받은 대출이 버거워질 무렵 저자는 서울 근교로 이사를 결심했다. 처음엔 별다른 정보 없이 도착한 곳이었다. ‘맹모라면 가지 않을 마을’에 있는, 전세를 얻어야 하는 조립식 주택은 한눈에도 성의 없이 지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저자는 비로소 도시의 삶 속에 있던 경쟁을 지우고 텃밭 가꾸기 따위의 비효율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줄 알게 됐다. 그리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는 ‘이웃이라는 우주’를 만나 관계 맺는 즐거움을 배웠다.
옆집 할아버지는 꼭 심으라며 저자에게 열무씨를 쥐어줬다. 누가 키워도 잘 자라는 열무의 생명력에 그는 장미며 목화, 토마토를 심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에 누구네 집에 들르면 왁자지껄한 환영을 받았고 마을에서 사는 데 필요한 정보는 물론,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한 번에 꿰뚫을 수 있었다. 각자는 저마다의 재주가 있어 영어, 바느질 등 장기들을 이웃과 품앗이했다. 단지 교외로 이사를 왔을 뿐인데 저자는 ‘이상하게’ 행복했고 잘 웃게 됐다.
그 비밀은 마을 도서관에 있었다. 하굣길의 아이들은 도서관에 책가방을 던지고 나가 뛰어놀았고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뗐다. 엄마 아빠들은 도서관에서 크고 작은 모임을 가지며 마을 음악회와 영화제를 계획하고 생태교실을 열었다. 소박한 도서관 프로그램들은 1년 내내 계속됐고 누구든 환영했다. 이 모든 건 자신을 헌신한 한 교회 목사 덕이었다. 그는 도서관 건립을 제안했고 사택을 내놓았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저마다 책을 기증하고 페인트를 칠하며 도서관을 짓는 데 손을 보탰다. 책의 부제인 ‘반자본의 마음, 모두의 삶을 바꾸다’의 시작이었다.
아쉽게도 저자는 이곳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남편의 전근으로 인해 도시로 이사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여유로운 삶의 속도가 가진 힘을 경험한 터. 이제 그는 도시에서도 자신의 삶의 속도를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송현경_내일신문 기자
사진 혜화1117, 남해의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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