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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전시 <바바라 크루거: Forever>와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 글자, 예술이 되다
글자는 형상이자 의미다.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삼라만상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글자는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소중한 글자, 그러나 도구로 다뤄지다 금세 잊히곤 하던 글자. 매일 보는 글자,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글자가 이제 미(美)의 주권을 회복한다. 두 거장의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글자가 해석을 기다린다.

1 바바라 크루거, <Untitled(Forever)>, Digital print on vinyl wallpaper, 2017.

어떤 글자는 총알이다 <바바라 크루거: Forever> 6. 27~12. 29,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미국의 현대미술 거장 바바라 크루거는 ‘글자야말로 가장 강력한 그림’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은 그가 나열한 몇 개의 글자에 시선을 빼앗긴다. 거장의 생애 첫 한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최신작 <충·분·하·면·만·족·하·라>는 가로 21m, 세로 6m 크기의 벽면을 이 여덟 글자로만 채웠다. <제·발·웃·어·제·발·울·어> 역시 글자만으로 의식을 선동한다. 이 밖에도 포스터처럼 도발적인 활자를 전면에 부각해 관람객의 내적 질문을 유도하는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단순명료한 폰트와 네모 칸 속 글자, 그것은 흉부를 뚫고 들어와 내면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일종의 총알과 같다. 바바라는 지난 7월 조선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영상의 시대로 바뀐 지 오래라지만 트위터에는 지금도 셀 수 없을 정도의 텍스트가 넘쳐나고 있다”고 했다. 글자는 끝나지 않았다.
“질문이야말로 내 작업 방식 그 자체”라는 설명처럼, 그의 글자는 묻고 있다. 대표작 <Forever>(2017)는 이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장 (575m2) 전체를 채운다. 벽면의 거대한 볼록 거울 이미지 속에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두 배 확대해 비추는 마력의 거울 역할을 해왔음을 당신은 알고 있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글이다. 바닥엔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발췌한 것이다. 여성주의 운동가로도 유명한 그는 “나는 모든 예술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며 “권력·성·사랑·증오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려 한다”고 했다. 첫 한국 개인전을 맞아 한글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았다. “한글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조형적 관점에서도 매우 매력적인 글자다.”

2 남관, <음영>, Oil on canvas, 1984.

글자에 떠오르는 추상의 얼굴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 11. 6~11. 30, 현대화랑

남관(1911~1990)의 그림을 응시하면, 그림이 대화를 청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화면 위로 글자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판독할 수 없으나, 그 의미는 직역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 남관은 갑골문(甲骨文) 등 고대 상형문자에서 무의식의 밀어를 길어 올린 화가다. 이른바 문자추상이다. 이를테면 유화 <원형질 공간>(1973)을 채운 건 국적 불명의 기호이나, 엉뚱하게도 한글처럼 읽힌다. 읽는 이에 따라 ‘문명의 기원’이나 ‘문명의 비원’처럼 보일 것이다.
내년 30주기를 앞당겨 시기별 대표작 6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을 시작한 남관은 자색 계열의 물감을 통해 황폐한 터, 오래된 유적의 잔해처럼 녹슬고 부식한 표면을 화면에 드러낸다. 이 시기에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를 떠올리는 형상을 도입한다. 동양의 발묵(潑墨)이나 물감 뿌리기, 신문지·은박지·천을 화면에 붙이는 콜라주부터, 덧댄 사물을 뗀 자 리에 남은 공터를 다시 물감으로 채우는 데콜라주(decollage)까지 각종 화법 실험도 볼거리인데, 그로 인한 그림의 두께가 보석의 색과 함께 묘한 입체감을 부여한다.
남관은 흔히 ‘한국 1세대 추상화가’로 소개되는데, 한국 추상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부산 피란 시절 해군종군화가단에서 처음 만났고, 1951년 대한미술가협회 전시미술전람회 공모전에서 남관이 1등, 김환기가 2등을 했다. 이듬해 두 사람의 2인전이 부산 뉴서울다방에서 열렸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에서 딴 제목인데, 남관의 두 번째 아내가 바로 김광섭의 딸인 소설가 김진옥이다.
그의 글자를 자세히 살피면 눈·코·입이 보인다. 이것은 자연히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추상에 가까운 <삐에로> 연작부터 <구각된 상>(1988)처럼 매우 구체적인 얼굴도 있다. 남관의 이 ‘얼굴’은 전쟁의 기억에서 온 것이다. 남관은 1973년 조선일보에 이렇게 밝혔다.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얼굴, 얼굴들을 나는 길 가다가 땅 위에 구르는 이끼 낀 돌 위에서도 보고 고궁의 퇴색한 돌담에서도 본다… 내가 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얼굴이다.”

글 정상혁_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조선일보 DB,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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