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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라시내, 유지영, 차진엽과의 대화 춤추는 비거니즘

춤을 만들거나 몸을 매체로 삼는 예술가들과 함께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먹는 문제에서 시작해 윤리적 고민, 삶의 태도와 작업의 형식, 그리고 욕망을 거스르지 않고 춤추며 즐기는 비거니즘에 대한 논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무용인들과 함께 꾸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이 지면의 원고는 웹진 [춤in]에 실린 대담의 일부를 축약해 옮긴 것이다.

왼쪽부터 유지영, 라시내, 권태현, 차진엽

라시내

흔히들 채식은 욕망의 절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스스로 인생에 제약을 건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나는 채식을 하는 것이지 금욕을 하는 것이 아니다’예요. 만약에 주체할 수 없이 뭔가가 먹고 싶다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설령 자신이 정한 어떤 선을 어기더라도 죄책감에 휩싸이기보다는 그 경험으로부터 앞으로 더 잘 실천해 나갈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가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것이지 내가 나의 통제자가 돼서 나를 억압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비건으로 사는 것의 어려운 점보다 비건으로 사는 것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그리고 더 자유롭게 됐는지.

권태현

꼭 필요한 이야기네요. 도를 닦으려고 비건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실 어떤 해방을 위해서,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 비거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유지영

최근 들어 삶의 태도와 작업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하루 종일 고민하는데 사실 내 작업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평소에 진짜로 가지고 있는 문제를 작업에 가시화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제 작업 중에서 특히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되기도 한다〉는 순환하는 몸의 문제를 다루는데요. 저는 지금 인간이지만 제가 결국 죽으면 땅으로 가든 불태워지든 다른 물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다른 존재와의 연결성을 작업에서도 다뤄보고 싶었어요.

권태현

비거니즘을 몸과 물질의 문제까지 확장해 접근하시는 것으로 보이네요.

차진엽

저는 삶의 어떤 실천이 작업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먹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2012년에 ‘collective A’를 처음 창단했을 때 시작한 작업부터 환경 전반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일이 쓰레기를 굉장히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거든요. 일회성으로 쓰이고 마구 버려지는 무대세트를 보면서 본질적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괴로워하기도 했어요. 지구는 아파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단 하루 무대에서 빛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것들이 대체 뭘 위한 것일까. 물론 무대 위에 오른 사람들과 관객은 가져갈 것이 있겠지만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작업에도 포함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메시지로 담기보다 그냥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권태현

맞아요. 어떤 작업이든 정치적 문제를 명료한 메시지로 제시하면 공허한 구호만 남아버릴 수 있지요. 그것보다 정치적인 것을 작업의 기반에 두는 태도가 오히려 어떤 정치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시내

제가 공연이라는 형식을 좋아하는 것은 남김없이 다 펼쳐져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왜 펼쳐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냐면 일상의 시간은 자꾸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희생됩니다. 미래에 완전하게 실현될 영광을 위해서 오늘의 나는 희생을 해야 하지요. 정치적으로도 그렇고요. 저는 그 시간을 펼치고 싶어요, 지금 당장. “나중에”라고 하면 언제까지 유예해야 하나요? 일상의 시간을 펼치는 것은 너무도 지난하고 정치적인 힘까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형식은 그것을 펼쳐볼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펼쳐진 시간을 다 같이 감각하고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공연을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것들을 예술의 힘을 빌려 가능하다고 믿고, 또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기에 비거니즘에서도 제게 가장 중요한 원리는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다고 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여기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실천을 펼쳐내!”라는 것입니다.

권태현

맞아요. 최선은 항상 유예되기 마련이지요. 예전에 성소수자들에게 외쳤다는 “나중에”라는 구호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만큼 정치적인 말이 또 없다고 느껴지네요. 오늘 정말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소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큐레이터 권태현_춤in 편집위원
좌담 참여자 라시내_연출가, 유지영_안무가, 차진엽_안무가

권태현_춤in 편집위원, 큐레이터 | 사진 오창동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춤: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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