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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멘MEN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낳으시고, 낳으시고…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멘>(2022) | 감독 알렉스 가랜드 | 출연 제시 버클리(하퍼), 로리 키니어(남자들)

마태복음 1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이라는 문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남자들이 남자를 낳고, 또 낳고, 또 낳았다는 기록이다. 역사의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생명 탄생의 핵심인 여성을 지우고 아버지와 아들로만 이어지는 남자들의 연대기만 기록하다니, 우리 그래도 괜찮은 걸까?

어떤 남자들

하퍼(제시 버클리)는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분명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다. 마주친 남편의 눈빛, 훼손된 남편 시신이 남긴 잔상은 계속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여유롭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마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묘하게 습하고 음침하다. 그녀는 누군가 계속 지켜보는 것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2022년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 〈멘MEN〉은 남성과 여성 사이, 무의식을 지배하는 공포의 근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남자들’이라는 제목과 달리 영화는, 남자들은 주변부에 있고 하퍼라는 여성 주인공이 이끌어 간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데뷔작 〈엑스 마키나Ex Machina〉로 시작해 〈서던 리치: 소멸의 땅〉, 개봉을 앞둔 또 다른 작품 〈시빌 워Civil War〉까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영화 속 남자들은 나이, 인종, 외모와 관계없이 모두 폭력적이다. 하퍼는 오롯이 자신으로 살겠다며 남편을 자신의 인생에서 밀어내려 하지만 남편의 집착은 결국 폭력으로 돌아온다. 낯선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휴식을 위해 찾아온 시골 마을의 남자들은 민들레 꽃씨처럼 하퍼의 공간으로 불쑥 날아 들어와 제멋대로 그녀의 공간과 시간을 침범한다.

그리고 한 여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지만 영화의 정서가 깔고 있는 것은 오늘날 여성들이 살면서 남성이라는 존재로부터 느끼는 막연하고 일상적인 공포다. 〈멘〉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남성이 등장하지만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그 모든 남자를 한 사람이 연기하게 한다. 그래서 남성성의 스펙트럼 안에서 알게 모르게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가 더 구체적이고 단일한 속성으로 드러난다.
〈멘〉은 드러내놓고 남성을 일반화한다. 그래서 남성의 유형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의 유형도 전형적이다. 남성들은 자신의 나체를 아무렇지 않게 전시하며 동의받지 않은 스킨십을 하거나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폭력으로 힘을 과시한다. 그리고 여성을 정의하고 탓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신체 변형 시퀀스에서는 결국 남자들이 남자를 낳고, 또 낳고, 낳아 대를 이어온 젠더 집합체임을 강조한다. 시간을 거슬러도 파괴되고 소멸되고, 다시 태어나도 처음 모습 그대로인 아담의 모습이다. 가부장적 남성성이라는 그 변함없고 지독한 순환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사과를 먹은 탓인지 하퍼는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일반적 공포 서사와 달리 하퍼라는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남성이라는 침입자에 맞서기로 작정한 하퍼는 폭력으로는 결단코 자신의 몸이건 마음이건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듯 단단히 두 발로 버틴다.
마지막 장면. 영상으로 소통하던 친구가 하퍼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소동이 끝난 저택에 도착하는데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다. 맞다. 모든 출산은 여성이 주체다. 이 당연한 전제 조건을 바로잡으려면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을 소환해서 고쳐야 한다. 오래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삭을 낳았다. 그리고….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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