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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슬픔이나 냉소보다 중요한 것

〈쓰다〉 57호 포스터

매년 9월부터 해를 마감하기까지 장르별 특집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57호는 ‘비인간’을 주제로 시 특집을 꾸렸습니다. 인간성의 상실을 상상할 수도, 인간 아닌 존재에 이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인의 상상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까지 가닿습니다. 기획의 말을 통해 하재연 편집위원은 “인간의 살이를 위해 소거되거나 폐기되는 비인간 존재의 꿈을 그려내는 것이 시의 언어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많은 인간이 존재하는 지구상에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곳은 폐허이거나 천국일 것입니다.
이원 시인의 두 편의 시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혀 소개합니다. 시인은 인간이 사라진 지구를 상상할 때, 혹은 풀이나 고양이나 새와 같은 비인간 존재의 위치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이 세계가 얼마나 낯설어지는지 보여줍니다. 저로서는 실로 상상해본 적 없고 노력한다고 해도 그려보기 어려웠을 세상을 시의 언어를 통해 엿보았습니다.

사람 없는 여기 풀 흔들리는 소리 가득 차오르는 여기 말라가는 심장 모양 돌들 많다 비대해진 바위 많다 거짓말 같지만 고양이는 모두 노란색이다 여기 고양이는 모두 오로라라고 부르던 사람들 없다 뭉텅뭉텅 구덩이 많다 빈 항아리 많다 여기 새들은 같은 말을 한다 새들이 떼어내는 발들 항아리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원, 〈희귀한 지구 방정식〉 중

해결하려는 노력도, 보호의 책임도 잊고 어느 날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구는 너무나 많은 우연 과 그 우연이 빚어낸 인과로 인해 엄청난 규모의 생태계를 자기 안에 품게 됐습니다. 태양계 다른 행성의 경우와 비교해 봤을 때, 지 구라는 적당한 환경을 누리는 인간의 삶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은 것이죠.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명체는 지구에서 일어난 엄청 난 확률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발생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인간의 삶’이라는 사건이 모종의 이유로 문득 지워진다면? 이때 이원 시인의 상상력은, 인간이 존재하는 편이 낫다 혹은 인간 같은 건 사라지는 편이 좋겠다 같은 이분법적 사고 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사건이 삭제된 지구가 품게 될 무성해지는 풀, 한가한 빛, 아무렇게나 놓인 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가 슬프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역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없는 풍경 곳곳에는 슬 픔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우리가 인간이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뭉텅뭉텅 구덩이’와 ‘빈 항아리’에서 인간의 빈자리 를 느끼게 됩니다.

비로소 작은 수업이 시작된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크기가 줄어들면 훨씬 보기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쪽. 비로소 작은 예감이 켜진 듯하다. 빛은 식물들이 새들이 잊지 않고 꼭꼭 물고 오는 쪽지라고 믿는 편. 빛의 시작이나 빛의 끝을 마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빛은 여기를 통과하는 인간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편. (중략) 가까스로 매달린 손도끼 그림자처럼 비로소 작은 수업이 시작된 듯해. 쪽지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인간은 팔 다리 몸통 머리 이렇게 분류할 때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편.
이원, 〈생물권〉 중

두 번째 시에서 인간은 다시 지구라는 공간에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위의 시가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 역시 우리가 익히 아는 지배하는 인류, 세상 곳곳에 넘쳐나는 인류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그러니까 환경과 주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인류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식물이나 새가 ‘빛이라는 쪽지’를 물고 오는 풍경을 바라보거나, 그러한 사소하고 무해한 존재의 시선에 아무렇지 않게 노출된 채 살아갑니다.
앞선 시는 인간이 사라진 풍경이라서 어쩐지 슬픕니다. 다음 시는 인간을 비인간처럼 그려서 조금 냉소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원 시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냉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제가 새삼 느낀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인간을 지구의 주인으로 여기는 일에 너무나도 거리낌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시인이 우리에게 권하는 읽기 또한 그러한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슬픔과 냉소를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말 것, 그러한 슬픔과 냉소가 발생하는 까닭이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도 인간’이기 때문은 아닌지 고민해 볼 것.

김잔디_[비유]편집자 | 사진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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