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0월호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 공연 〈백년의 서사〉 2022년 가을로 소환한 판소리 5명창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서울의 배우는 크게 구파와 신파로 갈렸다. 조선의 전통 공연을 하는 구파 배우는 주로 광무대와 단성사에서 공연했다. 신파 또는 신파극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의 신파극은 일본풍 연극이 조선풍으로 토착화하는 과정이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장한몽〉은 전형적 신파극이다. 신파극의 특징은 과장된 연기다.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백년의 서사〉에서 우도 콜렉티브의 공연 장면

젊은 아티스트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구파 배우 5명창

조선의 구파극 중 가장 인기를 끌면서 성장한 것은 판소리에서 출발한 창극이다. 김창환金昌煥, 1854~1927, 송만갑宋萬甲, 1865~1939, 이동백李東伯, 1867~1950, 김창룡金昌龍, 1872~1935, 정정렬丁貞烈, 1876~1938이렇게 판소리 5명창에 의해 구파극(창극)은 발전하게 된다.
9월 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2022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막 공연은 〈백년의 서사〉였다. 100년 전, 이 땅에서 유명했던 구파 배우 5명창을 지금 이곳으로 소환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5명창이지만 디지털영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그들이 지금 이 시대의 젊은 아티스트와 공존하는 듯했다.
판소리 5명창은 유성기 음반을 남겼다. 그동안 5명창의 디지털 음반화 작업도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한 복원 연주도 있었다. 5명창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지만 고제古制 판소리의 복원 연주는 한계가 있었다.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 개막 공연 〈백년의 서사〉는 달랐다. 5명창의 소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모두 5명창의 음색으로 살려냈다. 여기에 젊은 아티스트인 소리극단 도채비가 컬래버하는 방식이었다. 도채비의 젊은 소리꾼 5인이 각각 5명창이 됐다.
하지만 판소리 명창은 ‘구파 배우’인데 도채비의 대사와 움직임은 너무도 ‘신파조’였다. 그들은 마치 신파 배우처럼 구파 배우 5명창을 소개했다. 도채비의 대사와 움직임은 ‘판소리의 아니리’보다는 ‘신파극의 변사’에 가까웠다. 연기에 대한 부분이 나로서는 안타까웠다.
정정렬 명창과 우도 콜렉티브의 만남은 재미있었다. 정정렬 소리에 브리지bridge처럼 설장구1가 들어갔다. 정정렬 명창과 설장구도 모두 ‘복잡한 가락’에 의미를 뒀는데 둘 사이의 예술적 공약수는 ‘호흡’이다. 이것은 악보를 매개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불가하다.
김창환 명창과 만난 이아람(대금), 황민왕(퍼커션), 오정수(기타)의 연주는 꽤 세련됐다. 판소리 음원을 토대로 재즈풍의 월드뮤직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성시영(피리, 태평소)이 더해지자 음악적 에너지는 활화산처럼 솟아올랐다. ‘더늠2’ 이 고도의 수련 과정을 통해 자기화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들이 그러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소수의 마니아에게 깊게 파고드는 축제로 거듭나길

가장 흥미로웠던 연주는 김창룡 명창과 만난 디지털 시나위였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상적 결합 형태인 ‘디지로그’라고 하겠다. 새로움과 익숙함의 적정선이 살아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비밀을 밝혀낸 손녀와 손자라고나 할까? 예술적 과장과 놀이적 흥미를 지향하고 있었다.
송만갑 명창과 만난 천하제일탈공작소의 공연도 좋았다. 1938년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열흘간 서울의 한복판에서 향토연예대회가 열렸다. 부민관에서는 판소리 명창이 공연하고 인근의 가설무대에서는 탈춤과 재담이 펼쳐졌는데 마치 그 시절을 압축해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동백 명창과 만난 두 배우(박현욱&이창현)의 연기는 어설프게 다가왔다. 소리극단 도채비와 같은 과장에서 거부감이 느껴졌다. 또한 객석에 관객처럼 앉아 있다가 불쑥 등장해 갑작스럽게 소리를 하는 ‘페스티벌 소리 합창단’과 ‘소리천사’의 연출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막 공연 〈백년의 서사〉는 개인적 취향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유성기 음반 속 대표 구파 배우 5명창을 새롭게 다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대한민국에서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축제 중 가장 안정적이고 품격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성장해 왔다. 20년을 지난 지금, ‘믿고 보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아직도 구태舊態가 남아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신파적 과장’이다.
소리축제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인해전술人海戰術’이 있다. 음악적, 축제적 의미에서라기보다 ‘기네스 기록적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보여 안타깝다. 또한 개막 공연이나 폐막 공연에서는 동어반복이 많다. 이번 개막 공연 마지막 노래에서 ‘광대’라는 말은 얼마나 많이 반복됐는가! 그것은 단어(개념)의 반복이기도 하지만 표현(방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꽃을 꽃이라고 불렀을 때 꽃이라는 대상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꽃이라는 존재를 정말 귀하게 여긴다면 꽃이라는 이름을 결코 마구 반복할 수 없다. 반복적 과장은 현대의 전통예술 축제가 결별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전주세계소리축제 역시 멀티플렉스처럼 흥미를 주로 추구하는 복합상영관이 아니기를 바란다. 소수의 마니아에게 깊게 파고드는 시네마테크와 같은 진중함이 더욱더 보강되길 바란다.

1. 일어서서 어깨에 걸어 메고 치는 장구를 말한다.
2. 판소리 명창이 독창적으로 소리와 사설 및 발림을 짜 연행한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그 명창의 장기로 인정되고 또 다른 창자에 의해 널리 연행돼 후대에 전승되는 것을 말한다. ‘더 넣다’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백년의 서사〉에서 천하제일탈공작소의 공연 장면

윤중강_국악 평론가 | 사진 제공 윤중강

※해당 기사는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