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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문학 공모전 표절 논란문학작품 표절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

표절보단 도용에 가까운 일이었다. 최근 A 씨가 기존 문학상 수상작을 베껴 5개 문학상을 수상한 사건 얘기다. A 씨는 “사과를 받아주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찾아가서 무릎꿇겠다”고 했지만 사건은 잠잠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문학작품 표절에 대한 개인의 윤리 의식이 낮았다는 것. 표절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아진 만큼 문학계 내부에서도 각 개인이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수밖에 없다.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건 두 번째다. 이번 사건이 표절을 거를 수 없는 문학 공모전의 구조적 문제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학 공모전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 ‘엽서시문학공모전’에 게시된 공모전 수는 836건에 달할 정도로 난립한 상황이다. 규모가 작거나 새로 생긴 공모전 운영 업체는 예산 부족으로 표절을 걸러낼 시스템이 사실상 없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그동안 운영을자율에 맡긴 문학 공모전에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울타리인가, 올가미인가

먼저 문화체육관광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학 공모전에 ‘표절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전국에서 열리는 문학 공모전 실태를 조사하고, 이에 맞춰 표절을 적발하는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부작가 단체도 문학작품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해 표절 여부를 검토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직 작가들은 비판적이다. 한 소설가는 “문장과 표현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문학작품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다른 소설가는 “문학작품은 논문과 다르다. 표절 방지를 위한 울타리가 아닌, 창작을 제한하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최근 가수 홍진영, 스타 강사 설민석의 논문은 인공지능으로 표절 여부를 검토하는 ‘카피 킬러’를 통해 표절임이 밝혀졌지만 문학작품은 이와 달리 표절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 작가가 쓴 문학작품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15년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지만 문학계에선 표절 여부를 두고 의견이 아직도 분분하다. “표현에 유사성이 있지만 창작의 일부”라는 의견과 “사실상 베낀 것과 다름없다”는 반박이 6년 가까이 이어지며 문단의 상처도 깊어졌다. 지금도 문학작품의 표절 여부를 제대로 심사하는 사이트는 없다.
결국 작가 스스로 표절을 인정해야만 논란이 종결되곤한다. 소설가 박민규는 2015년 장편소설 데뷔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단편 《낮잠》이 각각 인터넷 게시판 글과 일본 만화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직면했다. 박 씨는 처음에는 “혼자 동굴에 앉아서 완전한 창조를 한다고 해도 우연한 일치가 일어날 수 있다”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논란이 이어지자 “명백한 도용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사과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어떻게 검토할 것인가

문학작품은 표절 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더라도 공모전에선 현실적으로 표절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 특히 유명 작가가 아닌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라면 표절을 검토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A 씨 도용 사건의 경우엔 ‘구글링’만 했어도 표절임을 알수 있었는데 최소한의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사 과정에서 “모든 당선 작품은 검색 엔진을 통해 표절 여부를 검토해 보자”는 말만 나왔더라도 이번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최소한의 기준을 만든다면 문체부가 2007년 내놓은 ‘영화 및 음악 분야 표절 방지 가이드라인’을 참고해볼 만하다. 당시 문체부는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데 일반인의 시선에 무게를 뒀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표절 여부를 논의하는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작품을 보고 듣는 일반인의 눈높이가 표절의 1차적인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또 각 작품을 접하는 이들이 판단 주체가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린이들이 판단 주체이고, 주 시청자층의 연령대가 높은 드라마는 노인들이 유사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표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독자들이 실망하고 먼저 떠난다. 작가나 평론가들끼리 ‘표절이다’ ‘아니다’를 두고 싸우기보단 일반인의 시선에서 표절 여부를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양질의 문학 공모전이 생기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려는 입시생들과 명함에 시인이나 소설가라고 새기고 싶은 ‘문청’들의 욕망에 따라 문학 공모전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제대로 된 조직 체계도 없었다. 한 작가는 “정부가 제재보단 지원에 초점을 맞춰 문학 공모전을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이호재_《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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