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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변호사 김원영당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무대
1급 지체장애인이자 변호사 김원영은 ‘1인 다역’을 한다. 칼럼니스트·작가·연극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 6월에 펴낸 사회비평 에세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독자의 사랑을 받아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그는 최근에 김초엽 작가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를 펴냈다. 장애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과학기술의 문제를 탐구한 사회과학서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를 이메일로 서면 인터뷰했다.
작은 방에서 넓은 세상으로

여러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지금과 달리, 어린 시절 그는 시골 마을의 작은 방이라는 좁은 무대에 갇혀 있었다. 뼈가 쉽게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이 희귀난치성질환으로 1급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자주 골절상을 입고 10여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어린 시절의 그는 “스무 평 남짓한 시골집을 두 팔로 기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외출이라고는 병원에 갈 때 뿐”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한 그는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방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사춘기가 올 무렵부터 아주 강한 에너지가 있었는데 나의 세계는 너무 좁았어요. 밖에 나가 놀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 월드컵 토너먼트를 운영했어요. 말하자면 FIFA 온라인 같은 게임을 머릿속에서 혼자 구축하고 플레이를 한 거죠. ”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책이 친구였다. “제가 어릴 때 《○○은 왜》 시리즈 만화책이 있었어요. 그중 《우주는 왜》를 자주 읽었어요. 《컴퓨터 길라잡이》라는 책도 좋아했어요. 이 책에 애플의 초기 컴퓨터인 매킨토시 이야기가 나와요. 그걸 읽고 컴퓨터를 직접 써보고 싶었지만 그때 제 주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뒤늦게 초등학교 졸업 인정 검정고시를 본 그는 16세에 경기도의 한 재활원에 입학했다. 재활원은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이다. 처음으로 고향 마을을 떠나 낯선 지역으로 간 그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나 이외의 ‘장애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가 살던 시골 마을에 장애인은 그 혼자였다.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한 그는 집에서 배운 한글 읽고 쓰기, 사칙연산, 다장조 음계와 알파벳 읽기만 할 수 있었다. 재활원에서 영어의 문장 형식을 배우고 수학의 분수를 알아갔다. 배움의 즐거움이 컸다.
새로운 경험도 했다. 재활원에 입학한 첫해 여름, 교회에서 여는 연극의 주연을 맡았다. 작은 방에서만 지내던 그가 사람들 앞에 나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첫 무대에 선 느낌을 책 《희망 대신 욕망》(2010년에 펴낸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개정판)에 이렇게 썼다. “‘도대체, 도대체 당신은 어디 있는 겁니까!’ 무대를 위해 첫 번째 대사를 말하던 저 순간이 가장 분명하고 상세하다. 큰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의 예상치 못한 후련함,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비로소 ‘연극’이라는 특정한 예술의 현장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긴장감, 이 모두가 생생하다.” 이날의 경험은 그를 변화시켰다. 그 이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존경하는 선생님도 만났다. 당시 재활원에서 만난 박현국 영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영어의 문장 형식과 영어 표현을 가르쳤으며, 영문법의 5형식 문형을 알기 위해 애쓰기를 시작하기만 해도, 더 큰 꿈을 꿀 자격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장애인 특수교육기관인 재활원은 안락하고 즐거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안락함과 즐거움에 익숙해진다면, 평생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재활원을 졸업한 뒤 장애인들만 다니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 가려고 결심했다. 그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분이 당시 사회복지사였던 박찬오(현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다. 재활원에 학습 자원봉사를 온 대학생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하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걸 포기하려고 하는 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고등학교를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네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야. 이 껍질을 평생 안고 가느냐 깨고 나가느냐.” 특수학교라는 세계를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힘을 준 ‘용기의 말’이었다. 재활원에 다니던 시절 인연을 맺은 박현국 선생님과 박찬오 소장은 그의 인생 스승이다. “제가 있던 특수학교에 찾아와 저를 일반 고등학교에 가도록 도와준 박찬오 님의 영향이 크지요. 당시 영어 선생님이던 박현국 선생님을 비롯해 특수학교 시절 선생님들 모두 제 삶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면서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한 역량과 기지를 길러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들입니다.”

“이건 고등학교를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네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야.”

자신의 정체성과 장애인 문제를 고민하다
어렵게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그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서울대 로스쿨 1기로 입학했다. 2013년 변호사시험 합격 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장애인 관련 업무를 맡는 조사관으로 변호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졸업 후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장애인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로스쿨에 진학하고 변호사가 된 것이다. 첫 직장인 인권위에서 정신장애로 강제 입원된 분들을 만났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그는 자신이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부당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저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위법한 입원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어요. 그분에게 정신장애 등록을 하면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분은 ‘자기가 정신질환이 없는데 왜 정신장애인 등록을 하느냐’고 답답함을 표하셨어요.” 그 당시 자신의 역할이 가진 한계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 나오는 주인공 K를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체포하고, 판단하는 ‘법’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변호사 업무를 보면서 글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2018년에 펴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장애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과 법학을 결합해 장애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도록 하는 화두를 던졌다. 이 책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편에는 장애, 질병, 가난을 이유로 소외받는 동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좋은 직업, 학벌, 매력적인 외모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동료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진동하듯 살면서, 또 사회학과 법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신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삶’ ‘실격당한 인생’이라 낙인찍힌 이들도 존재 자체로 존엄하고 매력적임을 증명해 보인다. 모든 존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특징과 경험과 선호와 고통을 가진 사람인지 드러낼 무대를 열어준다면, 소수자들 스스로가 ‘인간 실격’이라는 낙인에 맞서 자신을 변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관심사는 사회학과 법학을 넘어 과학으로 뻗어간다. 올해 1월 청각장애인 김초엽 작가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를 펴냈다. 이 책은 출판계에서 ‘믿고 읽는’ 작가로 불리는 둘의 만남으로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김초엽 님을 SNS에서 알게 된 후에 쓰시는 글을 관심 있게 읽었어요. 그러다 SF 작가가 되신 후 펴낸 데뷔작을 읽고 함께 장애나 몸,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마음먹었어요. 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것을 과학기술과 관련해 다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됐지요.”
앞서 그가 과학기술에 관심을 둔 계기는 16년 전 ‘황우석 사건’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학교 정문에서 매일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장애인과 가족들의 모습을 봤다. “당시 황 교수의 연구가 거짓임이 밝혀진 다음에도 끝까지 그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 지지자들이 있었어요. 그들 중에는 장애인 가족과 당사자들이 있었고요.” 이때 그는 ‘장애의 종식’을 예언하는 미래 과학기술의 문제를 목격한다. “장애나 질병을 치료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희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제예요. 하지만 황우석 사건은 비판적 논의 없는 상태에서 과학기술을 향한 희망과 사회적 관심이 쏠려 만든 결과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장애를 교정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비장애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비장애 중심주의는 장애가 없는 ‘비장애 신체성’을 ‘정상’과 ‘표준’의 몸으로 제시하며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몸들을 배제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안에서 장애를 더욱 소외시키고 소비하는 대상으로 만든다. 이 관점에서 벗어나 그는 ‘장애 중심적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정한 기술의 구체적 모습보다는 기술의 도입과 활용 과정에서 장애 중심적 과학기술을 주로 상상합니다. 이를테면 최근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클럽하우스’ 같은 SNS를 생각해 보면요. 음성 중심의 서비스이다 보니 청각장애나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애초에 접근이 배제되지요. 이러한 플랫폼을 설계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초기부터 음성 중심의 이 소셜네트워크가 가진 매력과 특성을 추구하면서도, 어떻게 청력이 낮은 사람들도 가능한 한 쉽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절차·책임감·합의 같은 것이 당연시되면 좋겠습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각자 가진
생생한 고유성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개할
무대와 관객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지닌 개인

그는 연극무대에 올라 사회를 향해 목소리도 내고 있다. 로스쿨에 다닐 때 지인들을 모아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공연하는 예술단체인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저마다의 매력을 살려 즐겁고 의미 있는 공연을 하려고 꾸린 것이다. 연극에도 직접 출연했다. 2019년 7월 서울변방연극제에서 공연한 1인 연극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의 무대에 오르고, 같은 해 극단 ‘애인’과 함께 <인정투쟁:예술가편>에 출연했다.
“연극무대에 처음 선 건 재활원에 있을 때였어요. 그때 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가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움직이고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었어요. 늘 누군가에게 ‘기이하게’ 보이는 존재였다면, 처음으로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나의 행동과 말로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시각예술 전시에도 참여했다. 또 하나의 무대를 만든 것이다. 사진작가 이지양 씨와 협업한 2018년 시각예술 전시 <당신의 각도>와 2019년 <정상궤도>가 그것이다.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이나 춤을 추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촬영해 시각예술로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본업인 변호사로 일하면서 연극을 하고 글을 쓰는 건 삶의 활력소가 된다. “법이나 규범, 언어의 세계와 비언어적이고 정서적 표현이 더 중요한 세계가 각각 서로의 작업 과정에 자극을 줍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무대가 있을 텐데, 저에게는 말 그대로 공연장에서의 무대, 또 책이라는 매체가 그 무대겠지요. 독자분들과 관객들이 계셔서 이 모든 작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세상과 소통하는 무대는 각자 고유성과 매력을 발산하는 곳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각자 가진 생생한 고유성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개할 무대와 관객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무대가 설계되어 진지한 관심을 가진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훨씬 존중을 받으며 매력적인 관계로 진입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보이고자 한다.”(《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중에서)
그에게 몸·매력·욕망 등은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창작의 주제다. “표현이나 창작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이에요. 저는 분명한 색과 고유성을 가진, 말 그대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지닌 개인이 되고 싶었어요.”
올해 그는 “작은 무용 공연을 하고 책을 펴낼” 계획이다. 당장 책 출간 작업 일정이 빠듯하다. “법과 도덕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과 선호, 욕망의 세계에서 (상처 입을 걸 감수하고) 자기를 당당히 드러내고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발명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고 춤을 추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평등이라는 가치와 장애 예술의 관계를 다룬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더불어 글로, 연기로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한편으론 내면을 단단히 다지는 중이다. 앞으로 해나갈 ‘마음속 계획’이다. “저는 모든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비난이나 혐오의 말을 들을까 두렵고, 반대로 혐오나 차별에 맞서기 위해 저를 내세우고 맞서는 과정은 한편으로 장애를 소비하고 저의 소수성을 정치적으로 상품화하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취약한 몸 상태에 있고, 경제적으로는 많은 책임을 지고 있기도 해서 편한 마음으로 잘 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늘 중심이 무겁고, 단단한 인간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좀 귀엽고 웃긴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지하고 재미없는 아저씨가 되고 싶진 않아요.(웃음)”

허윤희_《한겨레》 기자 사진 제공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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