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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떨리는 목소리로 끝까지 부르는 노래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진행된 <이게 나야> 낭독공연 모습

쌀쌀해진 날씨에도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에는 관객들이 옹기종기 앉아 손난로를 만지작대며 조용히 무대 위에 누군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렸다. 누군가가 말을 하고, 말을 들은 관객이 상상하며 함께 완성할 무대. 청량한 종소리가 울리고 창작집단 담이 준비한 <이게 나야> 낭독공연이 시작됐다.

참게이가 십자가 아래에서 준비하는 발칙한 의식

서동민 작가가 쓴 《우아한 연주》는 발랄하게 시작했다. 퀴어를 치료하겠다며 부모님이 십자가를 달아놓은 수민이의 방 안에서 윤성이와 수민이는 화장을 하고 있다. 윤성이는 방학식에서 커밍아웃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무성한 소문에 휩싸여 두려워하기보다는 직접 자기를 밝히는 당당한 게이가 되기로 한다. 스스로를 위한 의식이기에, 아무도 커밍아웃의 의미를 몰라줘도 상관없다. 수민이는 게이라고 밝히는 “그냥 커밍아웃”도 아니고 퍼포먼스까지 하는 “더 커밍아웃”을 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굳이?” 미적지근한 수민의 태도에 윤성이가 따지자, 수민이는 사실 ‘용기 있는’ ‘멋진’ 윤성이 부럽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무엇으로든 인정받는다는 것은 수민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수 있겠다는 단상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지만,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열일곱 윤성과 수민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즐거운 방법으로 선언하고, 인정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자기 발언을 하는 친구들이니까.

이름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것

박주영 작가가 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는 20분 분량의 단막극이지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정의에 대해, 2부는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로 20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한 정윤희 부부장과 30대 중반의 서유리 검사가 논쟁을 펼친다.
흥분하고, 조급하고, 강경한 문경희 배우의 ‘윤희’ 연기에 비해 차분한 김유민 배우의 연기는 ‘유리’라는 캐릭터에 어떤 성격도 부여하지 않는다. 윤희는 자기 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리를 뺏어야 한다는 섭리를 늘어놓으며 여성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기회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강조한다. 그러나 유리는 권력 싸움으로 ‘강하고 정의로운 정윤희’가 사라진 현재를 비판하고, ‘일밖에 모르는’ 윤희처럼 살기 싫다며 가정을 택하고 검사직을 내려놓는다. 혼자 남은 윤희는 유리와 오버랩되는 ‘정심’을 떠올린다. 고교 동창으로 어머니의 삶을 택한 정심에게 편지를 쓰며, 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나긴 독백을 하고, 사라진 이름 ‘정심’을 부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의 내면 갈등을 유리와 정심이라는 인물로 드러내어 보여줬다. 이름을 지키거나 잃어버리거나 양자택일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먹지 않겠다던 젤리의 맛

구하나 작가가 쓴 《파란 돌멩이가 굴러올 때》는 분위기에 취하도록 세팅돼 있다. 술, 펍, 라이브 연주,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12월 31일의 밤, 솔로가 커플이 돼 나간다는 유명한 곳. 그곳에 버려진 돌멩이 같은 은재와 수현. 두 사람은 어색하게 ‘섬싱(something)’을 시도해 본다. 어색한 순간을 자세하게 묘사한 지문의 호흡과 사이사이로 치고 들어오는 두 인물의 토막 난 말을 듣는 묘미가 있었다.
순탄하던 연애 전선에 은재는 ‘흔들다리 효과’일 뿐이라며 분위기 깨는 말을 투척한다. 수현이는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아느냐며 연애를 종용하지만, 은재는 ‘파란 돌멩이’를 보지 않았지만 믿었던 것처럼, 안다고 항변한다. 그러자 수현이는 ‘파란 돌멩이’를 믿은 적 없고, 연락처를 얻고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수단일 뿐이었다고 실토하고는 떠난다. 은재는 혼자 남는다.
그렇게 파란 돌멩이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지려는 찰나, 반짝이는 돌이 은재 눈에 들어온다. 파란 돌멩이는 정말 있었다. 다행이다. 무심결에 안도하고, 낭독이 끝난다. 다행이다. 내가 믿는 무언가는 있다고 토닥여주는, 마지막 작품이었다. 연극도 없는 것을 믿지 않는가.

‘12월 31일’이라는 키워드와 작곡가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의 곡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을 공통 소재로 글을 썼다는 세 작가의 작품은 각자 다른 결로 완성됐다. 즐거운 리코더 소리로, 포효하는 삶의 소리로, 마법 같은 환상의 소리로 들리던 곡. 새초롬하게 “꼭 할 거야!”라고 쏘아붙인 임지훈 배우, 사라진 이름을 부르는 문경희 배우, 파란 돌멩이가 진짜 있다며 아이처럼 기뻐하던 정혜영 배우의 목소리가 인상 깊다. 약한 사람들,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 자신을 계속 부여잡지만 바람에 휘청이기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이게 나야>는 모두 떨리는 심장을 갖고 살아간다며, 추운 날에 손을 꼭 잡아주는 작품이었다.
글 김연재
사진 제공 웹진 [비유]
※웹진 [비유] ‘!하다’의 확장형 프로젝트 <이게 나야>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알고 싶다면 창작집단 담의 <이거 나 아냐> 프로젝트 연재 페이지(rb.gy/s9uy2h)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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