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2월호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날들에 관하여계속하다 보면 계속할 수 있게 된다
매일 조금씩 어떤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 힘이 대단히 탁월해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거나 물질적 성취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하게 맞닥뜨리는 상황이 있다.
매일 조금씩 어떤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에 다른 감각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 그다지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도 백일장이나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그림에 비교적 재능이 있는 편이어서, 미술 관련 상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그조차 대단한 재능은 아니어서, 교내에서나 상을 받는 정도였지, 학교 대표로 구 대회나 시 대회만 나가더라도 특출난 데가 없다는 걸 알게 되곤 했다. 더군다나 글쓰기에 관해서는 특별한 인정이랄 것을 거의 받은 적이 없다.
대학 시절에도 그런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문학상이나 신춘문예 같은 데 꾸준히 지원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경험은 내가 글쓰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꽤나 확실한 증거였으므로 얼마든지 글쓰기를 그만둘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믿음이 있었는지, 혹은 어떤 갈망이나 열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계속 글을 썼다. 나는 나의 20대 혹은 청년 시절에 대한 한 가지 믿음은 지니고 있는데, 내가 누구보다 많은 글을 썼다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 관한 한 타고난 무언가는 별로 없을지언정, 누구보다 많은 글을 썼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
얼마나 글을 썼는지 계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대략 열다섯 살 무렵부터, 그리고 20대 내내, 매달 노트 한두 권 분량의 글을 썼다. 그에 더해 매일같이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하루에 쓴 양이 A4용지로 몇 장은 됐다. 또한 그와 별도로 일주일에 한 편 정도의 단편소설을 쓰던 때가 있었고, 장편소설도 세 편 정도 썼다. 단편소설은 대략 50편쯤 쓴 것 같고, 쓰다 만 장편소설도 여러 편 있다. 20대 중반부터는 책도 쓰고 칼럼도 쓰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항상 쓰고 있다. 20대 후반 무렵이던가, 내가 글을 얼마나 썼는지 대충 계산해 본 적이 있는데 A4 용지로 최소한 몇천 장은 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꾸준히 쓴 일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자부심이니 하는 단계를 넘어서, 아예 아무런 비교 의식도 갖지 않게 되는 시점이 왔다. 누가 무어라 하든, 누가 무엇을 내세우든, 누가 무슨 기준을 들이대든, 나는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쓰는 일에 관한 한, 나는 거의 온전히 나에게 속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나는 그냥 쓴다. 잘났건 못났건, 대단하건 형편없건 그냥 쓴다. 그냥 매일 동네 천(川)을 달리는 사람처럼, 그저 매일 기도하는 사람처럼, 나는 계속 쓸 뿐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글을 쓰다 보니 인정받는 일도 있고, 또 별반 주목받지 못하는 일도 있다. 인정받은 일이라면, 대학 때 쓴 장편소설을 고쳐 공모전에 내고 당선된 것, 내가 쓴 책들이 온라인 서점에서 선정한 ‘오늘의 책’이나 ‘정부 선정 우수도서’ 같은 데 오른 것, 에세이 따위로 상을 받거나 칼럼을 연재한 일 등이 있다. 반대로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책도 있고, 공모전에서 떨어진 일도 수두룩하고, 여전히 나를 한 명의 작가로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게 대단한 영향이랄 것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나는 계속 글을 쓰고, 거기에 어떤 양념 같은 것이 뿌려지든, 그런 건 말 그대로 후춧가루나 파슬리 가루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즐기고 열정을 다하면 결국 ‘이긴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하다 보면, 이길 필요도 없는 어떤 상태가 된다. 굳이 승리하거나, 대단한 인정을 받거나, 비교우위를 얻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계속하다 보면, 계속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계속함으로써 그저 온전할 수 있게 된다. 매일 걷거나 매일 빵을 굽는 사람처럼, 그 온전함이 좋아서 계속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어떤 것을 꾸준히 하면, 과연 그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꾸준한 사람들이 항상 인생에서 어떤 대외적인 두각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심지어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으나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인정받는 예술가도 무척 흔하다. 그러므로 사실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눈에 보이는 성공이나 물질적 성취와 곧장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자기 삶에 다른 감각이 들어선다는 걸 자신만큼은 분명히 알게 되리라 믿는다.
살아가다 보면, 삶에서는 온갖 역경이나 행운, 혹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는 외부적 상황이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삶의 패턴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굴곡을 겪었지만, 적어도 글쓰기 하나만큼은 지난 20여 년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그것은 내 통장에 숫자가 얼마 적혀 있다든지 하는 것보다 어떤 근본적인 위로를 주는 듯 느껴진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내가 파산하고 몰락하거나, 그 외 어떤 변화가 내 삶에 찾아오더라도, 내가 여전히, 죽기 전까지, 10대의 어느 시절과 다르지 않게 타자기를 부여잡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삶 전체에 어떤 희망과 위안을 준다.
나는 쓰는 사람이다. 내 삶은 쓰는 삶이고,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 정지우_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