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2월호

이동은 감독의 <당신의 부탁>엄마, 그리고 진짜 어른의 표정
엄마라는 단어는 참 아득하다. 한참 달아났다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바로 등 뒤에 있는 어떤 것.
아주 멀리 던져버렸다 생각했는데 되돌아오고야 마는 부메랑 같은 어떤 것. 한참을 잊었다 생각했는데 서슬 퍼런 칼날같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어떤 것. 무뎌졌다 싶었던 동글동글한 마음이 갑자기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워지는 어떤 것.
군내 나는 화두인 양 오래 묵었지만, 늘 현재로 되돌아와 진행형이 되는 어떤 것. 고마웠다가 억울했다가 그리웠다가 이내 지긋지긋해지는 어떤 것. 온전한 내 편이라고 믿다가도 가장 힘든 순간에는 오히려 멀리하게 되는 어떤 것.
엄마라는 단어는 그렇게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을 끊임없이 환기하게 한다. 아늑하다가도 아득해진다.

이토록 다채로운 삶 속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효진(임수정)은 절친 미란(이상희)과 동네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무기력증으로 밋밋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시동생으로부터 남편과 그의 전부인 사이에서 생긴 아들 종욱(윤찬영)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는다. 그간 종욱을 돌봐주던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뚜렷한 이유도 대책도 없이 효진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중학생 아들을 집으로 들인다. 효진은 남들에게 자신이 엄마라고 말하며 종욱을 품어보려 하지만 종욱은 매번 집 밖을 배회하면서 거리를 둔다. 그러다 효진은 종욱이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친엄마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동은 감독의 <당신의 부탁>은 기진맥진한 채로 근근이 살아가는 삶 속에 불쑥 찾아든 낯선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효진의 선택과 시간과 마음이 쌓여 만들어진 유대감으로 서서히 가족이 돼가는 종욱의 변화 속으로 관객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어쩌면 영화가 말하는 ‘부탁’은 세상 수많은 엄마가 자식을 키우기로 결정한 순간 버려야 하는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고, 자식을 버리기로 결정한 순간 얻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는 당부일 수도 있다.
효진을 좋아하는 정우는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효진의 심리 상담을 해준다. 부쩍 무기력한 효진에게 그는 “몸 안 좋고 피곤한 거 다 마음의 문제”라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효진은 자신의 무기력증이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갑상선 질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흔히 마음의 질병이라 단정 짓는 무기력증이 지극히 단순하게 몸의 질병 때문에 올 수 있다는 반전 아닌 반전을 통해 영화는 흔한 통념 대신 불가해한 삶의 다양성을 앞서 이야기한다.

이토록 다양한 엄마들

‘당신의 부탁’이라는 은유적인 제목도 좋지만 사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Mothers’가 영화의 이야기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엄마가 등장한다. 효진의 엄마 명자는 늘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사사건건 효진을 비난하는, 딸의 마음을 자주 아프게 하는 엄마다. 종욱의 친구 주미는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부잣집 대리모가 되는 것으로 아이의 미래를 양보하는 엄마다. 여기에 남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꾸며서라도 아이를 가지려 하는 불임의 엄마가 있다. 남의 아이를 키우다 신병이 걸려 제 목숨이 아이보다 소중해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엄마도 있고, 효진처럼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 큰 아들을 마음으로 품어보려는 엄마도 있다.
이동은 감독은 낳은 정과 기른 정, 혹은 모성이라는 예민하고 심각한 소재를 끌어오면서 날 선 화두를 끄집어내기보다, 도저히 말로도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엄마들과 그들의 선택을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 속에서 다양한 ‘엄마’들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인 불가해한 존재다. <당신의 부탁>은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세상의 엄마들에게 모성이 강제돼야 하는 의무라거나 여성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하는 미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듯, 나의 엄마도 당신의 엄마도 자식을 위해 희생할 의무가 없다. 감독은 그 시선으로 엄마인 당신 혹은 당신의 엄마를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신의 부탁> 속 시간은 점프 컷을 하듯 겅중 뛰어넘어 간다. ‘몇 개월 뒤’ 같은 흔한 자막 없이 다음 장면에서 이미 몇 달이 흘러가 있다. 효진과 종욱이 가족이 돼가는 시간 동안 효진의 친구 미란과 종욱의 친구 주미는 아이를 낳는다. 사람들은 계속 가족이 되고, 가족을 버리고, 가족을 만들어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늘 엄마가 있다. 사실 오늘을 겪는다고 인생의 다양한 노릇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부탁>의 주인공들은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것이 어른의 얼굴인 양 제 표정을 숨긴다. 하지만 영화 속 여성들이 진짜 어른의 표정을 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이다.

<당신의 부탁>(2017)
감독 이동은
출연 임수정(효진 역), 윤찬영(종욱 역), 이상희(미란 역), 오미연(명자 역), 서신애(주미 역), 한주완(정우 역)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