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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전시 <탄생 100주년: 박래현, 삼중통역자>와 <온리 슈퍼스티션> 단단히 자신의 세계를 일군 작가들
코로나19와 함께한 2020년은 미술계에서 어느 해보다 당혹스러운 한 해였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준비한 전시를 기약 없이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쏟아졌다. 그렇게 한여름의 미술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동토에서도 씨앗은 움튼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년 내내 해외를 돌았을 세계적인 한국 작가들이 국내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작업실에 자신을 스스로 격리한 작가들이 어느 때보다 집중적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해당 전시 일정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박래현 <영광>(1966~1967)

‘탁월한 화가’ 박래현의 재조명 <탄생 100주년: 박래현, 삼중통역자> | 2020. 9. 24~2021. 1. 3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천재 화가의 부인. ‘청각 잃은 남편의 입과 귀가 되어 시중을’(1962년 잡지 《여원》의 묘사) 들었던, ‘1974년 제6회 신사임당상’에 빛나는 삶. 남편이 지어준 호와 이름 ‘우향(雨鄕) 박래현’이라는 이름으로 산 사람.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화가 운보 김기창의 부인으로 불려온 그를 국립현대미술관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 굴절된 ‘누군가의 부인’이 아닌, ‘선구적 화가 우향 박래현’으로 말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 중인 <탄생 100주년: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에서 1943년부터 1976년까지 박래현이 남긴 회화와 판화, 태피스트리(손이나 기계로 짠 직물) 작품 138점이 공개됐다. 전시를 보기 위해 덕수궁 앞에 선 긴 줄을 보고 미술관 측도 놀랄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박래현은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중 스물셋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단장>으로 최고상(총독상)을 받았고, 광복 후 1956년 대한미협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각각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관전에서 최고 자리에 올랐다. 전시는 이 사실을 강렬히 주지시키려는 듯, 원화 실물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단장(화장)>을 개인 소장자의 협조를 얻어 어렵게 공개했다.
전시의 또 다른 미덕은 박래현이 남긴 작품에 존재하는 곡해, 추측의 와전을 바로잡는 데 힘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대표 사례가 오랫동안 일명 ‘엽전 시리즈’로 불려온 1960년대의 추상화 연작이다. 이 작품들은 실은 박래현이 동남아부터 중남미까지 두루 해외여행을 한 뒤, 이국적 풍경과 문화를 경험하고 제작한 것이었다.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접한 원시 문화에 강력한 영감을 받아 황톳빛으로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동양의 한지에 먹의 진동하는 듯한 번짐의 미학이 절정을 이루는 추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남편 김기창이 기자에게 “엽전을 참조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정답처럼 와전됐다. 전시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엽전 시리즈를 선구적 추상화로 재정립하는 데 집중한다. 전시의 안내대로 그림을 새로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토속적 소재를 표현한 것이 아닌, 시각의 확장, 기법의 혁신, 추상화라는 새로운 국제 경향을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한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마침 33년 역사를 지닌 대표적 화랑이자, 운보·우향 부부와 오랜 인연이 있는 청작화랑도 <우향 박래현 판화전 with 운보 김기창>전을 열어 덕수궁 전시의 감동을 이어가고 싶은 관람객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덕수궁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청작화랑 전시는 12월 5일까지.

윤상윤 <데어 윌 네버 비 어나더 유(There will never be another you)>(2020)

단련된 오른손과 원초적인 왼손의 동행 <온리 슈퍼스티션> | 11. 10~12. 12 | 아틀리에 아키

윤상윤 작가는 오른손으로는 세밀한 묘사력을 뽐내는 구상회화를 그리고, 왼손으로는 한 번에 투박하고 표현주의적 요소가 듬뿍 담긴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는 ‘양손 화가’다. 그가 올해 그린 작품 26점을 개인전 <온리 슈퍼스티션(Only Superstition)>에 내놨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아틀리에 아키에 들어서면, 그의 양손 그림이 만드는 2중주가 흐른다. 마치 서로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면서도, 물감을 완전히 펴 바르지 않고 붓질의 결이 느껴지는 특유의 방법으로 그린 공통점이 모든 그림을 윤상윤만의 톤으로 어우러지게 한다.
그는 오른손으로 실력이 절정에 달한 사람 같지만, 그럼에도 기어코 왼손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어쩌다 양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으니, 내 오른손은 기교를 부릴 줄 알고 단련된 손이다. 왼손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손이다. 우연한 표현을 해보고 싶은 욕망으로 대학원생 시절 왼손 드로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오른손 그림은 금방이라도 찰랑거릴 듯한 물, 화면을 조화롭게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색채, 사람들의 옷깃과 머리칼, 흩날리는 꽃과 나뭇잎과 그림자까지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이 놀랍기만 하다. 무엇보다 극사실적으로 현실을 묘사한 것 같으면서도 잔잔한 물속에 발이 잠긴 모습은 분명히도 판타지여서 신비롭다. 그의 오른손 그림은 그렇게 저마다 소재를 달리하면서도 잔잔한 물, 그 물에 발이 잠긴 사람들, 그 사람들 위의 한 사람이 3개 층으로 구조화돼 있다는 공통점이 특징이다. 이 구조는 초현실적 풍경화가 주는 신비로움의 결정타다.
윤 작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바닥의 물을 인간의 무의식으로, 그룹을 이루는 사람들을 자아로, 그 위 단 한 명의 개인을 초자아로 생각하며 이런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군중 속에 우뚝 서 떠오른 한 사람은 마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한 위대한 개인 같기도, 군중에서 떨어진 외로운 자아 같기도 하다.
왼손 그림에서는 영국 유학 시절 ‘영국 국민’, 즉 국민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살던 히피들의 모습에 그가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혔는지 느껴진다. 왼손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 중 상당수가 히피들의 결혼식, 히피들의 축제다. 오른손 그림의 정돈된 아름다움, 철학적 주제의식과 대비돼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매력이 흘러넘친다. 12월 12일까지.

글 김예진_《세계일보》 기자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아틀리에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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