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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원서동 고희동 미술관옛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미술관
창덕궁 옆 돌담길을 마주한 고즈넉한 길이 사람들을 이끈다. 바로 종로구 원서동이다.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개성 넘치는 카페나 맛집이 군데군데 있지만, 그것이 원서동 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해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통 공방, 오래된 미용실, 전통 한옥 등이 트렌디한 디자이너의 쇼룸과 나란히 있어도 이질감이 없다. 전통을 배려하는 태도가 밴 동네에서 미술관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1 고희동 미술관 전경.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가면 미술관 입구가 나온다.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서울시 종로구 창덕궁5길 40)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곳이자, 41년 동안(1918~1959) 머무른 곳이다. 그래서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직접 방문해 보면 옛 흔적을 간직한 가옥에 들어선다는 느낌이 크다. 현재 미술관 입구로 쓰이는 하늘색 철제 문 앞에는,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라는 표지판과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이라는 안내판이 나란히 서 있다. 고희동 가옥이라는 존재 양식과 미술관이라는 기능이 이곳에서 만난 셈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소담한 앞마당이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앞마당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현판에 고희동 화백의 호를 따 ‘춘곡(春谷)의 집’이라고 적힌 한옥이 한 채 서 있다. 오른쪽으로 난 좁다란 길을 돌아 들어가면 관람객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하게 된다. 오래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11년 복원 및 보수공사를 통해 고희동 화백이 살았던 공간을 거의 비슷하게 재현했다고 하니 그럴 법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천장이 낮아 계단을 조심히 오르내려야 하지만 이 또한 관람객에게 독특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 공간은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절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일제강점기 한옥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재됐다. 등록문화재는 2000년대 초반, 이 가옥이 헐릴 위기에 처했을 때 북촌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보전 운동을 펼쳐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단층 한옥 3개 동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나뉘며 중간에 이 둘을 잇는 복도가 있고, 사랑채의 사랑방을 조금 안쪽으로 들인 ㅁ자 구조에 가깝다. 사랑채는 고희동 화백이 작은 그림을 그리거나 주로 머무른 사랑방과, 손님을 맞이하고 규모가 큰 그림을 그린 화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에서 나와 복도를 지나면 안채를 만날 수 있다. 안채는 가족들이 머무르던 곳으로 지금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특히 복도를 거닐며 유리창 너머로 조그마한 마당을 볼 수 있다. 전통 한옥의 경우 공간을 이동하려면 밖으로 나와 걸어야 하는데, 이곳은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기 편하도록 복도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고희동,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미술행정가

1886년 서울 비파동에서 태어난 고희동 화백은 역관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웠고, 대한제국의 관리가 됐다. 미술 연구 출장 명령을 받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09년 동경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 1915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했다. 고희동 미술관은 그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1918년 직접 설계해 41년간 생활한 곳이다.
고희동 화백의 다양한 작품 탄생지이자 당대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1918년 발족된 우리나라 근대적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 조직 구성에 기여하고, 총무로 선출돼 미술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래서 고희동 미술관에는 당대 함께 활동한 서화협회 회원들의 그림도 전시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화단이 결성돼 15회의 전람회를 개최하고 최초의 미술잡지를 발간하는 한편 미술강습소도 운영했다는 미술사 지식을 이곳에서 자연스레 얻어갈 수 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화백의 모습 너머에, 조선미술협회 회장이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대한미술협회 회장 등 미술행정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낸 면도 있다. 그가 살았던 공간을 방문하는 일은 20세기 초반 한국 미술의 풍경을 엿본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일 것이다.
2 사랑채에 자리한 화실 내부. 고희동 화백이 큰 그림을 그린 곳으로 지금은 컬러링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일석삼조의 미술관
북촌 한옥마을이 가깝게 있어 북촌 쪽에서 계동을 지나 넘어올 수도 있는 이곳 바로 옆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도 있다. 실제로 근처에 방문했다가 미술관에 들르는 이도 많다고. 고희동 미술관은 2019년 5월 종로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재개관 기념전시 <춘곡의 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사랑방과 안채를 개방해, 관람객은 사랑방에도 들어가 보고 화실에서 준비된 채색 도구로 컬러링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온라인으로 신청받아 진행한 ‘사랑방 탐구생활’ 프로그램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지역적·공간적 특성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해 기대된다. 평범한 미술관을 넘어, 근대에 미술의 가치를 높이고자 힘쓴 한 인물의 궤적을 엿보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고택을 둘러보며 심미적 만족감까지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고희동 미술관의 의미는 시민과 만날수록 조금씩 계속 풍성해질 것이다.
글 전은정_객원 기자
사진 제공 고희동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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