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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그렇게 아이들은 자라, 느닷없이 가족이 된다
곁에 있었지만 우리는 늘 아버지가 그리운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 제 역할을 배워본 적이 없던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회적 역할과 가장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갖지 못하고 주춤대다가 가족이라는 구심점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늘 옆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사람이 돼 가족을 잊거나 혹은 잃어갔다. 아버지가 다스베이더의 가면을 쓰고 표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들만 가족을 놓친 것은 아니다. 가장이 된 어머니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식들을 방치하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고아 아닌 고아가 돼버린 아이들은 부모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리고 조용하게 관찰하는 삶

요시다 아카미 작가의 동명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존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15년이나 소식을 끊고 살아온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 자매-사치(아야세 하루카)·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치카(가호)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기억도 추억도 없기에 슬픔도 감흥도 없지만,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는 자매에게 혼란스럽지만 엄연히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가장이나 다름없는 큰언니 사치는 홀로 남겨진 스즈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스즈를 그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줄거리만 보면 혼란과 소동, 격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격정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 같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제나처럼 호들갑을 떠는 법을 모른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오열 대신, 아버지가 사라진 공간에 함께 남은 네 여성의 삶을 감독은 꾸준하고 묵묵하게 바라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사실 한 번도 온전한 가족이었던 적이 없는 네 여성이 비로소 진짜 가족이 돼가는 과정에 과장이 없다. 그렇게 이야기는 줄곧 속삭임처럼 낮고 조용해 더 선명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역할의 경중을 떠나 모든 인물을 보듬어온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해 주인공인 네 자매 각각이 지닌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에 편차가 있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특유의 섬세함과 느림의 미학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일상은 원작 만화의 프레임이 담아내지 못하는 드넓은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사람들은 가족이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는 한결같이 아비가 사라진 후(혹은 제 아비에게 버림받은 후) 살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 있자면 그의 2005년작인,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부모 없는 아이들의 꿋꿋한 성장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고 차분하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던 히로카즈 감독이 2013년 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아버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단 한 번도 가슴으로 아버지를 느껴본 적이 없던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비로소 가슴으로 아버지가 돼가는 성장담은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신파적인 울림도 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덜 자란 아버지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시선에 있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모두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는 관조적인 시선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도 드러난다. 흔히 우리가 악인이라 부르는 인물들-아이를 버린 엄마, 가족을 버린 아빠, 갑자기 등장한 이복동생-조차 그의 영화 속에서는 악인이 아니다. 분노와 슬픔을 쏟아내고 책임을 져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드라마가 더 강해짐에도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에 악인을 만들어 넣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들조차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 사람도 나만큼이나 서툴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토닥토닥 품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줄곧 타인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아도 좋다고, 누군가가 사라져도 내 인생은 살아진다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을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비가 내리면 호수에 여울이 지고, 햇살이 드리우면 젖은 풀이 마르고, 눈이 내리면 더러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덮일 수 있다고 속살거린다. 그렇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처럼 격한 위로 대신 살포시 내 손을 잡아주는 친구 같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6)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나가사와 마사미(코우다 요시노 역)
카호(코우다 치카 역)
히로세 스즈(아사노 스즈 역)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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