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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된 쿠킹과 먹거리왜 만들고 왜 먹냐건, 웃지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SNS 타임라인에 활발하게 등장한 ‘달고나 커피’. 만들기 힘들고 맛은 보장 못 한다는 음료에 많은 이들이 도전해 인증샷(과 푸념)을 공유했다. 이 밖에도 SNS에는 다양(하고 황당)한 노동집약적 레시피들이 떠돌아다니며 우리를 유혹한다. ‘대체 이걸 왜 만들지?!’ 궁금해서 만들어보게 되는 게 레시피의 핵심. 맛보다 경험이 더 중요한 이 괴식들은 음식이라기보다 가성비 높은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달고나 커피… 이걸 왜 만드는 걸까요

400번만 저으면 된다더니, 커피와 설탕을 섞은 검은 물은 도무지 꾸덕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목과 팔뚝이 저리지만, 지금에서야 포기할 수도 없다. 처음엔 맛이 궁금해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커피의 전쟁, 오기로라도 끝까지 해야만 한다. 400번이 아니라 4,000번을 휘저었지만 액체 커피는 도무지 고체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 이제 포기포기. 결국 나는 대망의 거품기를 꺼내 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으로 평일에는 재택근무, 주말에도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각종 놀이가 온라인에서 유행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달고나 커피’다. 베트남 길거리 커피에서 비롯한 달고나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 가루와 설탕을 1대 1 비율로 섞고 소량의 물을 부은 후 미친 듯이 숟가락으로 휘저어 달고나 형태의 크림으로 만들어 우유 위에 부어 먹는 커피다. 단지 따뜻한 물에 커피와 설탕만 섞고 휘저었을 뿐인데 단단한 형태가 되는 과정이 신기해서라도 한번은 따라 해보고 싶어지는 레시피다. ‘달고나 커피 만들기’는 그야말로 시간과 노력의 집약체라(거품기를 쓰더라도 3분 이상은 휘저어야 한다) 가성비를 따져본다면 썩 훌륭한 먹거리는 아니다. 힘든 것에 비해 맛도 그저 그런 이 유행은 글로벌로까지 나아가 영국 BBC에 ‘Dalgona coffee’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비록 레시피는 베트남에서 유래했어도 해당 커피는 ‘The Korean coffee drink’로 소개됐다. 쿠킹 유튜버들 역시 모두 달고나 커피 영상을 제작했는데, 박막례 할머니는 분노의 숟가락질을 하시며 이런 명언을 남겼다. “집에 있응게 별걸 다 해먹네. 한국인들은 일을 안 하믄 못 사는 스타일인가바. 왜 자꾸 일을 만들어. 야 니들은 하지 말어라. 커피는 사 먹는 게 최고야.”
SNS에서 유행한 먹거리는 달고나 커피뿐만이 아니다. 달고나 커피가 커피 물을 400번 이상 휘저어 만드는 거라면 1,000번 이상 휘저어서 만드는 계란말이(거품이 많이 날수록 계란의 식감이 포실해진다), 제티(초콜릿 가루)를 1,400번 저어서 만드는 제티떡, 감자를 채 썰어 만드는 감자전 등등… 팔이 빠지도록 노동을 해야만 뿌듯한 완성작을 만날 수 있는 쿠킹 놀이가 유행한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노동집약적 음식을 자꾸만 해 먹는 것일까. 어떤 요리가 얼마나 더 고생스러운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유튜브와 SNS에 너도나도 인증하는 ‘쿠킹 놀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수라간 상궁조차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뽑는 <대장금>의 후예라 뭐든지 피땀 흘려야만 만족하는 민족인가.

맛없으면 어때, 재미있잖아

맛있다는 돈가스 집에 텐트까지 동원해 줄을 서고, 드디어 그 돈가스를 영접했다며 영상과 사진을 찍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좋아요’와 ‘하트’를 받는 일. 식품의 영역에서 유독 구매와 공유가 활발한 이유는 먹거리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유별나서이기도 하지만 식품은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대가 낮아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야말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며 무조건 대기업의 식료품만 맹종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중은 처음 보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리뷰를 읽어보고 낯선 식료품을 구매하는 데 심리적 문턱이 낮다. 대기업이 아닌 ‘마켓 컬리’ 같은 식료품 구매 사이트가 몇 년 만에 급성장한 것은 편리한 배송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기한 해외 식료품과 지방의 작은 식품 제조사까지 입점시킨 발빠른 머천다이징 시스템이 한몫했다. 서산 감태 캐러멜과 해초 젤리, 네덜란드 마요네즈와 버터 커피, 표고버섯 쌀과자와 타로카드 초콜렛 등… 맛이 상상도 안 되는 특이한 식료품들을 이곳에서는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샀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냐고? 각 상품의 가격은 5,000원에서 1만 원 내외다. 재미 삼아 먹어보고 실패해도 크게 손해 보지 않는 가격이다.
편의점마다 마라맛·흑당맛 등 유행하는 소스로 때마다 신메뉴를 내놓고, 제과업계에서 괴상한 신제품을 내놓는 것 역시 식품 판매에서 ‘재미’와 온라인 마케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롯데제과에서 출시한 아이스바 ‘죠크박’(죠스바+스크류바+수박바)을 보자. 겉포장만 봐도 누가 만우절 농담으로 합성한 것만 같다. 모양은 스크류바인데 색깔은 죠스바이고 안에는 수박바가 들어 있다. 이 ‘죠크박’ 아이스바는 아무리 먹어도 스크류바의 청량함과 죠스바의 상큼함, 수박바의 단맛을 느낄 수 없다. 게다가 특정 편의점에서 일정 수량만 판매하기 때문에 구하기도 무척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희소성이 높고 재미있을수록 발품까지 팔며 구매한 후 SNS에 인증샷과 해시태그를 남긴다. 물론 인증 글에는 이렇게 써 있다. “한번 사먹어 봤으니 됐어. 다음엔 그냥 수박바 사먹어야지.” 이러한 기획상품은 젊은 세대에게 식품 구매가 단순히 먹거리의 차원이 아니라 공유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내다보고 만든 마케팅 상품이다. 맛이 없어도 괜찮다. 어차피 하나에 1,000원 정도인 이런 상품들은 맛이 없어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음식에 관해서 한국인들은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지나갈 거라 여겨졌던 먹방·쿡방이 방송 장르로 자리 잡고, 프랜차이즈 요식업체의 대표인 백종원이 특유의 간편 레시피와 말솜씨로 여러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는 것은 우리 삶에서 식문화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매일 음식을 먹되 마라맛·흑당맛 등 유행하는 식료품이 있으면 그것을 직접 맛보고 개인 SNS에 인증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우리에게 이제 먹기란 일상이면서 일탈이기도 하다.

글 김송희_《빅이슈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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