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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이경자의 서울 반세기, 공간을 더듬다 18시장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제기동 경동시장

내가 ‘며느리’였을 때, 경동시장에 갈 일이 많았다. 오래도록 그렇게 다니다 보니 지하의 수산물 시장에는 단골가게까지 생겼다. ‘제수(祭需)’를 산다며 생선을 좀 까다롭게 고르는 여자로 밉보였을지 모른다. 시댁 쪽의 어떤 분께서 내게 제수의 의미, 그중에서도 제상에 반드시 올려야 할 생선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다. 조상님이 밀어주시는 민어, 도움을 주시는 도미, 그리고 조상님인 조기…. 그 말을 들으면서 허술한 웃음을 웃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내가 경동시장에서 생선을 사 온다는 말을 듣고 “그 정성…” 하면서 대견해하셨다. 사실 이렇게나마 본업을 잊고 경동시장에 갈 기회가 생긴 걸 좋아했다. 마치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버스를 한 번만 타도 갈 수 있는 장점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경동시장은 나만 아는, (아니 누구나 그럴지 모르지만) ‘향기’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코로 스며드는 한약재 냄새는 언제나 메마른 내 마음을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여러 약재가 저마다 뿜어내는 개성적인 향기, 그중에서도 당귀! 밭에서 갓 뽑아 온 당귀의 향기는 내게 추억의 한 시절을 품안에 가득 안겨주곤 했다.
어릴 때 무슨 일만 생기면 남설악 골짜기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곳으로 도망갔더랬다. 학교라는 곳에 정나미가 떨어져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지 않을 때, 고등학교에 가기 싫을 때 등등.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가 있는 집이 싫어졌을 때. 북한 땅에서 남한 땅이 된, 그래서 수복지구라는 이름이 앞에 붙은 양양의 이해 불가한 분위기에 질리면 나는 그곳으로 도망갔다. 걸어서 한나절 걸리는 곳. 경사가 몹시 급해서 ‘빨딱고개’라는 이름이 붙은 고개를 올라가 평지에 올라서면 문득, 다른 세상으로 온, 그런 탈출의 해방감을 맛보곤 했다.
더는 깨끗할 수 없는 바위들이 놓인 개울을 건너 천천히 높아지는 골짜기를 한참이나 올라가면 무언가 벌판이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고 까마귀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외지에서 낯선 사람이 왔다고 온 동네에 알리는 것이었다. 사람과 밭과 나무와 풀과 벌레들, 새들 모두 들으라고 까악까악 노래했다. 높은 나무 위에서 그렇게 노래하면 하늘에 닿고 땅에 퍼졌다. 이런 시절로부터 먼 미래에 해발 2,700미터로 시작되는 평지에서 사는 중국 운남성 소수 민족의 땅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이와 흡사한 발성을 들었다. 그곳의 사람들이 까마귀처럼 노래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들리는 소리.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당귀의 존재를 알았다. 할아버지가 산에 다녀와 망태기를 열면 그곳에서 당귀 냄새가 순수와 청결과 무구함의 향기를 뿜었다. 물론 할아버지의 망태기엔 당귀만 있지 않았다. 산에서 나는 약재들이,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다양한 약재와 갖가지 버섯이 들어 있었다.
사실 당귀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도 있었다. 동남향으로 난 화장실에 앉아서 일을 볼 때, 겨울이 아니라면 닫을 필요도 없는 문짝은 늘 열려 있었다. 나는 우두커니 앉아서 몸이 하는 일은 몸에게 맡겨두고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푸른 당귀 잎을 바라보았다. 나비가 날고 벌이 날고 또 다른 벌레도 많았다. 그런 것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푸른 당귀 잎. 겨울이면 말린 당귀 뿌리를 끓여 고뿔을 낫게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숯불에 달여서 먹여주곤 했다. 가난해서 입 하나 던다고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진 열한 살의 민며느리, 할머니. 시어머니 될 분껜 매를 맞으며 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계산속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던 할머니의 천진무구함! 슬프도록 그리운 모습이다.
당귀 향기는 경동시장이 내게 주는 선물이며 그 향기가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상님’들의 제수를 장만하면서 정작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엔 못 간 나….
유년의 추억을 속절없이 불러온 당귀와 온갖 약재의 향기를 맡고 바라보다가 신호등을 따라 길을 건너면 아, 경동시장이다. 화려하고 안정적이고 부유함마저 느끼게 하는 커다란 인삼가게들. 그 앞에 올망졸망 자리한, 눈치 보이는 자루들을 놓고 파는 상인들. 무슨 단속 같은 것이 뜨면 순식간에 자루나 가방을 들고 뛸 준비가 돼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 골목 저 골목 없는 것이 없는 시장. 도매로 물건을 파는 곳에 가서 나물이나 양념거리를 사서 길가에 앉아 소매로 파는 아주머니 할머니들. 나는 딱히 살 것이 없어도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만약의 경우’를 상상하곤 했다. 소설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저기 저 가게에 가서 마늘을 까게 해달라고, 저 음식점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게 해달라고, 음식을 배달하겠다고, 채소를 다듬겠다고 말해 봐야지, 상상하면서 기웃거릴 때도 있었다. 못할 일은 없었다. 나이와 체력, 그리고 의지가 문제였다.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해서 먹고사는 일이니.
나는 때때로 몸이나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불안정할 때, 소설이 내 뜻대로 잘 안 풀릴 때, 경동시장으로 갔다. 사시사철 그곳에 가기 때문에, 가서도 물건만 사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관찰’했으므로 어느 골목, 어느 길가에 누가 앉아 무엇을 파는지 대충 알았다. 봄과 여름엔 찻길가 비좁은 공간에 나물·과일·채소·밤·대추와 생선을 파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그분들 중 어느 분은 한겨울에도 그곳에 나와 꽁꽁 얼어 비틀어진 갈치·동태·고등어를 팔았다. 한번은 얼마나 버시느냐고 오래도록 망설이다가 여쭤보았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직 집안일을 하실 수 있다면 가사도우미 수입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돌아와서도 내내 왜 할머니가 한겨울에도 언 생선을 팔까, 상상해 봤다. 다른 일을 찾을 수 없어서? 배운 도둑질이라서? 마치 나처럼. 그러다가 불현듯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 할머니도 그 일이 주는 기쁨, 보람을 터득하신 건 아닐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쩌다 단골도 생기고, 같은 일을 하는 동무들과 정도 들고, 비록 흥정이긴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말도 트고, 별별 사람들 다 경험하거나 구경하게 되고….
나처럼. 아무도 내게 소설을 쓰라고 하지 않고, 써도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 이 일. 그런데 안 하면 죽을 것 같고, 사는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이 기분. 소설 속에 빠져서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황홀한 사랑마저 느끼게 되는, 마치 농경사회의 농부 같은 마음을 할머니도 가지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한다.
시장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글 · 사진 이경자_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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