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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뮤지컬 <레드북>과 연극 <미저리> 이런 여자 본 적 있나요?
여전히 무대 위에서 말하는 주체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무대 위의 여성은 주로 아름다운 외모가 강조되거나,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이다. 여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있다. 뮤지컬 <레드북>과 연극 <미저리>는 로맨틱코미디 뮤지컬과 오싹한 스릴러 연극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색다른 캐릭터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련이미지1 뮤지컬 <레드북>.
2 연극 <미저리>.

진정한 자신으로 살고 싶었던 여인 <레드북> 2. 6~3. 30,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난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라고 읊조리며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안나.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19세기 빅토리아시대에 이런 말을 하는 여자 주인공이라니? 이미 관객들은 이 엉뚱하고 유쾌한 설정에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여자라서 일을 시킬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구직활동 중인 안나의 모습은 현실을 옮겨놓은 것 같다. 안나의 글쓰는 재능을 알아본 청년 변호사 브라운은 안나에게 “당신의 글을 써보라”며 응원한다. 안나가 여성들만의 문학회인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갈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로렐라이 언덕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곳이다. 심지어 <레드북>이라는 이름의 잡지까지 낸다. 안나는 이곳에서 자신의 야한 추억들을 소설로 쓰며 스타 작가가 된다. 사람들은 <레드북>을 몰래 사서 읽는다. 그럴수록 <레드북>은 거센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된다. 안나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을 추행하려던 유명 평론가를 폭행해 감옥에 갇힌다.
정신병이 있다는 거짓말로 법정에서 무죄를 받을 것을 권유하는 브라운과 이를 고민하는 안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되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안나는 국내 창작뮤지컬계에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어둠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다. 로렐라이 언덕의 친구들은 “당신은 죄가 없어요. 세상이 잘못된 거고, 그 남자가 나쁜 거예요”라며 안나의 손을 잡는다. <레드북>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무대 배경은 동화책을 펼친 듯하고, 넘버 가사들은 귀에 쏙 박힌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온 성차별은 물론, 문단 내 권력자에 의한 성폭력 등 사회의 여러 단면을 지적한다. 함께 분노하는 동시에 여장남자 로렐라이 등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의 손을 잡고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다.
2016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으로 선정돼 지난해 2주간 관객들을 만난 뒤 올해 본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아이비와 유리아가 안나를, 박은석과 이상이가 브라운을 연기한다.

사랑과 집착 그 사이에 있는 여인 <미저리> 2. 9~4. 15,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베스트셀러 작가 폴 쉘던은 자신의 별장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폴이 눈을 뜬 곳은 낯선 여자 애니 윌킨스의 집. 폴의 ‘넘버원 팬’을 자청하는 애니는 간호사 출신이다. 애니의 헌신적 간호로 폴은 의식을 회복한다. 보통의 작품이었다면 둘의 만남은 새로운 로맨스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애니는 평소 쉽게 보던 캐릭터가 아니다. <미저리>는 작품 속 폴이 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폴은 순애보적인 미저리를 내세운 이 시리즈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다. 미저리는 애니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폴이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에서 몸을 회복하는 동안 애니는 그의 소설을 읽고 격분한다. 폴이 미저리가 죽는 완결편으로 소설 시리즈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폴에게 헌신적이던 애니는 갑자기 돌변해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인다. 애니는 부상당한 폴에게 소설을 새로 쓰도록 강요한다. 살해 위협을 느낀 폴은 어쩔 수 없이 애니의 요구를 들어주려 한다. 애니는 친절과 광기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폴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애니의 끝없는 집착에 폴은 탈출을 포기하지 않는다.
작품의 주인공은 폴이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건 강한 여성 캐릭터 애니다. 애니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강하게 표출하는 여성이다. 다만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좀먹게 하는 방법이지만. 연극 <미저리>는 스티븐 킹 원작의 동명 소설과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번 연극에서 황인뢰 연출가는 집착과 광기에서 오는 긴장감뿐만 아니라 애니의 서툰 사랑에 초점을 맞춰 애틋함까지 살렸다. 국내 초연에서는 배우 길해연, 이지하, 고수희가 새로운 애니를 선보인다. 폴 역은 김상중, 김승우, 이건명이 맡아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연극 <미저리>는 2015년 브로드웨이 초연 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연극 데뷔작이기도 하다.

글 양진하 한국일보 기자
사진 제공 PRM, 스토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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