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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다시 불거진 #문단_내_성폭력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잡으려면
또 한 번의 들불이다.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어놓은 #미투(Me Too: 성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소셜미디어상의 운동) 캠페인에 이어 여성 검사들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이 잊힐 뻔한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시 한 편을 수면 위로 길어 올렸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겨울 한 인문교양 계간지에 발표한 시 <괴물>을 통해 젊은 여성 문인과 편집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과 위계 폭력을 고발했다. 지난 두 달간 버석하게 말라가던 시에 불이 붙었다. 과거의 들불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불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계간지 <황해문화>에 수록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 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 의가 구겨졌다
최 시인은 젊은 여성 시인은 물론 여성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일삼는 한 원로 시인을 정조준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한 시의 파급력은 컸다. 최 시인은 개인이 겪은 사건을 폭로하는 데서 나아가 문단 내 성폭력이 일상화된 이면의 구조를 들춰냈다.
“문단의 메이저 출판사, 잡지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남성 문학 권력의 요구를 거절하면 작가로서 생명이 끝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최 시인이 문제 삼은 것은 “그런 문화를 방조하는 분위기,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관련이미지1.지난 2월 6일 열린‘서지현 검사 사건 이후#미투 운동, 향후 대안마련을 위한 현장 전문가간담회’에서 문화계성폭력 사례와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도이어졌다
2.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사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3. 지난 1월 12일 우롱센텐스가 주최한 ‘문단 내 성폭력 고발 후 1년,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좌담회 모습. (우롱센텐스 제공)

성폭력이 빈번한 집단의 특성, 공고한 위계 질서

성폭력 사건이 반복되는 분야의 공통점은 위계 구조가 공고하고 구태의연하다는 점이다. 검찰, 언론, 문단 등 어느 하나 특정할 것 없이 남성 중심적으로 구획되고 위계화된 한국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집단이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연줄이 힘을 발휘하고 등단 카르텔 속에 중견 문인들이 크고 작은 권력을 누리는 문단은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할 집단 중 하나이며 인간 세상을 벼려 글로 품어내는 공간으로서 가장 먼저 변혁에 나서야 할 책임도 있다.
이 시점에서 떠올릴 만한 사건이 있다. 지난 1991년은 대한민국 문학 역사에 작은 눈금이 새겨진 해다. 그 해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가 출간됐다. 외설, 문학의 타락이라는 빨간 딱지 속에 마광수는 구속됐고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누구에게도 폭력을 가하지 않은 한 문인에게 사회의 처벌은 가혹했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그로부터 27년 후, 문학계에 펼쳐진 논란의 장에 문단의 거목 역할을 했던 고은 시인이 소환됐다. 최 시인의 작품 속 ‘괴물’로 지목된 인물이다. 민주화 투사로서 세상의 불의에 당당히 맞섰던 그의 사과는 단출했다. 그럼에도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감안해 면죄부를 주자는 옹호론이 고개를 든다. 마광수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일탈의 특권이 고은에겐 허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돌고 돌아 문단 권력을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판도라 상자’ 끝의 희망

‘#○○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하고 사계절을 났지만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 회부터 4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작가회의에는 오늘까지도 재발 방지 대책은커녕 성폭력 관련 징계 규정 조차 없다. 여전히 문학계 내 자성의 목소리도 미약하다. 한국시인협회는 과거 성추행 논란을 빚었던 인물을 새 회장으로 추대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누군가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한다. 온갖 재앙과 죄악이 담겼던 이 상자의 끝엔 희망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물론 그 희망은 거저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문단의 위계 질서를 걷어내는 것, 카르텔의 고리를 끊는 것, 크든 작든 일말의 권력을 쥔 이들부터 피해 현장에 눈감지 않는 것, 치열한 토론을 거쳐 가해자 단죄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데서 희망이 피어난다. 우성과 열성이 위아래로 서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해체될 때, 그때 기울어진 저울이 조금은 평형으로 이동할지 모른다.

글 서은영 서울경제신문 기자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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