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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컬트의 제왕, 데이빗 린치의 모든 것
“평화롭더라.”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의 공동 연출자 존 구옌 감독은 데이빗 린치의 집 분위기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린치를 일명 ‘컬트의 제왕’으로 처음 세상에 알린 <이레이저 헤드> (1977)의 충격적 영상을 시작으로 <트윈픽스>(1992), <로스트 하이웨이>(1996),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로 이어진 그의 독특한 작업들을 떠올려볼 때, 그의 일상에 깃든 평화로움이 금방 연상되지 않을 테다. 일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에서 본 화가 데이빗 린치의 ‘휴지 위에 그린’ 수백 장의 그림이 떠오른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내장이 튀어 나오고, 산에는 거대한 눈이 있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충격적이고 끔찍하며 기묘한 스케치들도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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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린치를 만나다

‘린치적’(Lynchian)이라는 형용사의 주인공. 평범함과 섬뜩함이 공존하는,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기괴한 것을 일컫는 말이 그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린치는 독특한 예술가로 통용된다.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화가, 음악가, 작가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일관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해온 그를 두고, 작품만큼 그의 생활도 독특한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을 것 같다는 판단도 적지 않다. 린치는 이에 대한 반론에 가까운 웅변을 창작에 관한 에세이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에서 드러내기도 했는데, ‘분노와 고통이 예술가의 창조력을 지탱한다’는 일반적 통념을 반박하고 나섰다. 이를테면 반 고흐가 불행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했을 거라는 추론.
물론 작품과 별개인 그의 ‘평화로운 작업의 순간’을 엿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술가 린치의 생활을 그림으로써, 독특하고 환상적인 린치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해답을 준다. 착상에서부터 무려 9년, 촬영에만 30개월이 소요됐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린치가 말을 할 준비가 될 때까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옆에서 카메라를 세팅한 채 기다렸다는 구옌 감독은 그 경험을 “데이빗 린치의 동굴에 있다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고 린치의 팬이 된 이후 앞서 린치에 관한 3부작 다큐멘터리 <린치>를 만들기도 했을 정도로, 린치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데 연출가로서의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아이다호의 작은 마을, 자유롭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환경에서 보낸 린치의 유년시절부터, 필라델피아의 예술학교 진학 후 혼란을 겪었던 사춘기, 우연히 만난 화가 부쉬넬 킬러를 통해 화가로서의 자의식이 성장해나갔던 청년기까지를 아우른다. 평범한 소년에서 예술가에 대한 욕망을 품었던 첫 발돋움에 대해 그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언제부터 ‘아트 라이프’란 표현을 썼는지 모르지만 (아트 라이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고 표현한다. 특히 린치의 아버지와의 일화가 재미있다.
창작욕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그림을 연마하던 청년기의 그는 아버지가 정한 통금시간 11시를 맞추지 못하기 일쑤라 아버지와 대립했다는 일화, 작품을 위해 생물을 부패시킨 실험 결과물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자, 아들이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오해한 아버지가 “넌 절대 애를 낳지 말라”고 걱정했다는 일화 등은 훗날 세계적 ‘컬트의 제왕’이 된 그를 떠올려보면 퍽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영화의 틈 관련 이미지

과거의 경험이 창작으로 이어진다

카메라는 시종 할리우드 힐에 있는 화실에서 작업하는 린치를 담아낸다. 존 구옌 감독이 “창작 활동 자체가 그의 일상이라고 봐도 무관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화구들 외에는 담배와 커피가 필요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출한 생활을 꾸린다.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린치가 쉼 없이 작업을 하는 동안 린치의 회상을 토대로 유년기와 청년기의 홈비디오와 사진들을 편집해 보여준다. 또 그의 그림들이 그의 언어를 보충 설명하듯 끊임없이 삽입되며, 린치가 직접 작곡한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긴장을 배가한다.
자신의 성장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린치는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활동은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데, 그때 과거의 경험이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과거를 벗어날 수 없다”며 자신의 생활이 작품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설파한다. 다큐멘터리는 그의 장편 데뷔작인 <이레이저 헤드>가 만들어지기 전, 화가로 활동하던 린치의 시간들을 집중 조명한다. 다큐멘터리 말미에 린치는 기약 없는 작품 활동,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해 우울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레이저 헤드>가 발표됐을 당시, 그는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영상, 어려운 스토리 전개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예술의 길을 가는 데 있어 두려움을 없애라고 충고한다. “너무 절제하거나 마음을 열지 않거나 한계를 정해 놓으면 창의력은 죽는다. 어쩌다 일을 망치거나 큰 실수를 한 후에 간절했던 그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P.S. 영화의 도입부, ‘룰라 린치를 위한 영화’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룰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린치의 딸이다. 존 구옌 감독은 2012년에 태어난 룰라가 ‘10대가 되면 들려줄 이야기’를 해보자고 린치에게 다큐멘터리 출연을 권유했다고 한다. 전 세계 린치의 팬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글 이화정_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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